죽어 마땅한 죄

범규의 관찰기록 1.

다음날, 그 염소 가면을 쓴 기묘한 남자는 제게
부탁 한가지를 했다. 

'연준, 태현, 수빈. 이 세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들의 행동과 말을 이 기록지에 적어주세요. 
 특이사항이 발견되면 그것도 적어주시고요. 
 당신의 임무에 충실하길 바랍니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왜 이런 귀찮은 일까지 
저한테 떠안기는지 이유는 알수없다만. 
범규는 끝이 너덜거리는 기록지를 들고 아침 식사가 
한창인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저기! 같이 아침 먹어요!" 

유독 쩌렁쩌렁한 목소리 때문에 귀가 확 트였다. 
뒤를 돌아보자 연준이 숟가락을 들고 여기 오라며 
손짓하는 게 보인다. 

'꽤 시끄럽고. 넉살이 좋군.' 

범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실실거리고 웃었지만, 
속으로 그의 첫인상을 분석해 평가를 끝냈다. 
솔직히 자신의 취향과는 어긋나는 인간상 중 하나였다. 

'저런 인간들은 너무 가벼워. 말도, 행동도.' 

그 신랄한 평가를 알 리가 없는 연준이 사람좋게 
헤실거렸다. 

"그쪽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내 나이쯤 되보이는데..." 

"몇살이신데요." 

"스물일곱이요." 

"얼추 맞네요. 제가 스물여섯이니까요." 

나이가 동갑인 것도 아닌데 연준은 그 말에 
뛸 듯이 기뻐했다. 진미채 한젓가락을 떠 입에 넣은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음, 어쩐지. 그러면 혹시 지금 하시는 일은?" 

"그냥 공시생입니다." 

"그렇군요. 좋겠다. 나도 공부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하도 운동쪽으로 가라해서... 
 지금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거든요." 

트레이너라. 나름 어울리는 직업같기도 한데. 
그가 한탄을 하든 말든 심드렁한 눈으로 국물을
한입 떠먹었다. 
지금까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는것 같았다. 

"거기, 수빈씨도 오시죠. 같이 식사해요." 

전날 잠을 못잔건지 얼굴이 꺼칠해진 수빈은 힘겹게 
식판을 들어 밥을 담았다. 살짝 비틀거리기도 하는걸
보니 상태가 꽤 나쁘다. 저 상태로 밥을 먹을순 
있을런지. 

"옆에 앉아도되죠?" 

"그럼요!" 

"근데 괜찮으세요? 영 기운이 없어보이셔서." 

수빈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어제 잠을 좀 설쳐서. 걱정마세요." 

"아이구. 이럴 때일수록 먹는걸 잘 챙겨야되는데. 
 어서 드셔요!" 

붙임성 좋은 연준은 식판을 살짝 밀어주곤 눈을 
찡긋거렸다. 뭐, 수빈은 먹을 의욕도 없는듯 했지만. 

"태현씨는 또 어디가셨대." 

"글쎄요? 화장실 갔나." 

그순간 수척한 모습의 태현이 식당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저기 있어요." 

한참 머뭇거리던 그는 한 영양사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식당안에 들어섰다. 그런데 그가 다시 한번 
손을 뿌리친다. 

"얘기 했잖아요? 오늘은 밥 못먹는다고요." 

"식사는 하루 세번 꼭 하셔야합니다." 

"아니 그게... 하. 진짜." 

범규를 포함한 네명이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모두들 숨죽이는 가운데 궁금증을 참지못한 연준이
속삭이듯 물었다. 

"저 분 왜저러는 걸까요?" 

"흠. 혹시 반찬이 맘에 안드는건." 

"범규씨,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이유는..." 

그 사이 태현은 식당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어어. 나갔네." 

자꾸 문 쪽을 흘끗대는 연준과 달리 수빈은 
별거 아니라는 양 바로 시선을 거두고 밥만 열심히 씹었다.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어. 말수도 적고 말이지.
 기운이 없는건... 단지 컨디션 문제만이 아닐지도?' 

범규는 수빈의 첫인상을 마음속으로 정립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더이상 캐낼 정보는 없다. 

"다들 식사 마저하세요. 저는 이만." 

"앗. 네." 

범규는 둘을 빤히 쳐다봤다. 이렇게만 보면 그들 중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어보였다.
그렇지만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있는 모두가 악인 후보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