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마땅한 죄

범규의 관찰기록 2.

아침 일찍 일어나서 씻고 이부자리를 정리한 뒤 
복도로 나왔다. 연구소 시설을 쓴다더니 이건 무슨 
폐쇄 병동이나 다름없는데. 새삼 참 수상쩍은 장소라고 
느껴졌다. 괜히 볼멘 소리나 중얼거리고 있는 범규에게 
수빈이 눈주변을 비비며 말을 걸어온다. 

"범규씨 잘 주무셨어요?" 

"예 뭐 그럭저럭." 

"아아.. 저는 한숨도 못잤네요.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요." 

"무슨 소리요?" 

"남자 비명소리인데,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너무 거슬리더라고요." 

보통 비명소리를 '거슬린다' 고 표현하지는 않지. 
차라리 소름 끼쳐 하거나 두려워 한다면모를까.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과 다르다. 

'하, 이거 쎄하네.' 

범규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수빈은 
구내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 안드실거에요?" 

"가요, 가." 

재촉하기는! 도대체가 생각을 못하게 하는구만. 



식당으로 가보니 벌써 연준이 자신의 자리를 
미리 마련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친해지고 
싶다는 뜻을 대놓고 드러내는게 웃기긴 했었다. 
정작 나는 그럴 맘이 눈곱만큼도 없는데 말이지. 

"연준씨 벌써 와계셨네요?" 

"아, 제가 또 아침은 거르지 않고 제깍 먹는 타입이라서. 
 수빈씨도 여기 앉으세요!" 

연준이 사람좋은 웃음을 흘리며 의자를 당겨줬다. 
그 호의에 기분이 나아졌는지 그는 냉큼 옆을 꿰차고
앉는다. 

'의외로 단순한 건가?' 

일단은 분석하기를 그만두고 연준의 맞은편에 조심스레 
앉았다. 식사자리에서 대화를 먼저 주도하는 사람은
예상대로 연준이었다. 

"다들 간밤에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저는 잘 잤는데, 수빈씨가 잠을 설쳤다네요." 

"에?? 또요?" 

수빈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이러면 안되는데! 어제는 왜 못자셨어." 

"몰라요. 무슨 비명소리 같은게 들렸어요." 

"헉, 진짜요?? 누, 누가 막 험한 짓 당했다거나 
 그런거 아녜요?" 

역시 이게 제대로된 반응이지. 낮은곳에 
떨어져있던 연준의 첫인상을 두단계쯤 끌어올렸다. 

"휴. 아무튼 너무 피곤해요." 

연준이 풀죽은 수빈의 등을 두드려주며 파이팅 넘치는 
목소리로 기운을 북돋는다. 

"괜찮아요! 캠프 관리자한테 얘기하면 되죠. 
 그나저나 좀 무섭네요. 비명소리가 들리질않나." 

"도대체 저희를 데리고서 뭘 하고싶은 걸까요?" 

나는 목소리를 깔고 최대한 심각하게 화제를 꺼냈다. 

"우리들 행동을 관찰하려는거 아닐까요." 

"무슨 이유로요." 

"그건 모르죠. 확실한건 위험한 목적이 있다는 
 거에요."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듯 분위기가 가라 앉았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만.. 

"아이 그래도 뭔 일이야 생기겠어요? 
 인터넷도 잘되고 전화도 되던데." 

"맞아요. 여차하면 신고하면 되잖아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그건 참가자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속임수일 뿐이다. 
평소에는 인터넷도 전화도 할수 있도록 
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전파 방해 시스템을 
가동해 빠져나갈 퇴로를 차단할 것이다. 

'나는 연구팀에서 안전하게 보호될 예정이니깐 뭐.' 

다소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상관없었다. 
인류애와 동정심, 협력 따위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내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범규씨 안색이 왜그래요? 어디 아파요?" 

"아, 아닙니다." 

티내지 말자. 자연스럽게 행동해야지. 
태연하게 젓가락을 들어 식사를 마저 했다. 

"참, 태현씨는 오늘도 밥 거르시는건가." 

"그렇겠죠? 근데 말이예요.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무슨 여기서 음식먹으면 죽기라도 하는것마냥 
 굴잖아요." 

첫날부터 수상한 면이 있었긴했지. 한동안 식당에 
들어오는 꼴도 못봤네.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가려는 순간. 문 밖에서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렸다. 
심상치 않다는 느낌에 바로 뛰쳐나가보았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팀과 관리자들이 한곳에 
뒤엉켜 엉망이 되었다. 

"꺄아악!!" 

"의료팀 불러 빨리!" 

그곳엔 선홍빛 피를 뱉어내고 정신을 잃은 
태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