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뭐야 벌써 한잔했냐? "
슈트 차림의 윤기가 바에 들어서다가 이미 잔을 기울이고 있는 석진을
보고 자리에 앉으며 얘기했다 뭐 때문인지 이미 어느정도 짐작한 윤기
는 아무 말 않고 옆에서 잔을 채우며 들어 줄 준비를 했다
" 여주가 헤어지자고 그러더라. "
" 여태 얘기 안한 게 용했다 "
피식, 그런가 -
또 한잔을 들이킨 석진이 심란한 듯 비워지기 무섭게 잔을 채
운다 헤어진 게 맞았다 아마도 다시 사귀자는 말도 하지 않았고 있었
던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니 헤어진 게 맞는데 어제 일을 생각
하면 그것도 아닌 거 같은 이 어정쩡한 관계가 참 아리송했다
그런 석진을 지켜보던 윤기도 잔을 들이키고 안주로 놓인 과일 한 점
을 입에 집어넣으며 술병을 빼앗아 들었다 저게 죽으려고 작정했나
도수도 꽤 센 술을 물 마시듯 마시면서 갈팡질팡하는 제 친구 놈이 윤
기의 눈에는 참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 너 대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 "
" 여주인 거 알잖냐 "
" 모르는데 지금 니꼴 보면 누구라도 모른다 "
처음 제 앞에 좋아하는 여자라며 여주를 데려와 소개해 줬을 땐 그냥
믿고 두고만 봤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결혼한다며 다른 여자를 끼고 결
혼식장에서 걸어 나오던 석진을 보고서부터 아니,
결혼을 해 놓고도 여주를 만난다는 말을 듣고서 대체 뭐하자는 짓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결혼한 상대도 여주도 두 사람 다 상처받고 아
파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여전히 제 배경과 싸우기는 무서워서 숨으려
고 하는 석진이 답답하고 한심해서 미쳐버릴 거 같은 윤기였다
이제는 정말 제대로 욕 좀 해줘야겠다 너.
그래야 제정신 차리고 거지 같은 배경과 싸우든 이 미친 관계를 정리
하든 할 거 같다 제발 상처 주고 상처받는 관계 좀 끊어내자 이렇게 아
픈 건 연애가 아니잖냐

" 김석진 너 정신 차리고 노선 똑바로 정해 "
" .......... "
" 강혜라 씨도, 여주 씨도 그만 상처주라고 한심한 새끼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