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가 앞에 도착한 석진이 크게 심호흡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 소리가 사그라들고 얼마 안 있어 센서 소리와 함께 커다란 대
문이 열렸고 석진은 망설임 없이 들어섰다
늘 봐 왔던 본가 집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커 보였다
어렸을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 이 집에 들어서던 그날처럼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울고 있는 정확히는 울고 있는 척 중인 혜라와
잔뜩 화가 난 것 같은 석진의 아버지 김 회장이 석진을 보고 있었다
" 앉아라. "
안 봐도 알 거 같은 상황에 석진이 포커페이스를 장착한 채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석진의 뺨을 내려친 김 회장이 석진의
앞에 종이 한 장과 펜을 내밀었다
' 각서 '
안 봐도 뭐라고 쓰여있을지 짐작이 가는 큰 두 글자에 석진이 그대로
종이를 들어 갈기갈기 찢어냈다 그 광경에 김 회장의 얼굴은 더 큰 분
노로 물들어갔고 혜라는 처음 보는 석진의 모습에 당황해 제가 지금
우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잊고 얼어붙어버렸다.
" 뭐 하자는 짓거리야!!! "
" 저 이혼합니다. "
솔직히 김 회장도 속으로는 당황한 상태였다
한 번도 제 뜻을 거스른 적 없고 부정의 표시를 보인 적도 없는 아들이
었다 그러나 지금 석진은 처음으로 자기 의사를 드러내며 반항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그런 석진의 모습이 김 회장은 참 낯설기만 했다
아니 낯설기 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김 회장에게는 혜라의
집안이 가진 힘과 기술력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제 아들이 지금 제 사업에 재를 뿌리고 있다는 이 현실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앉아라 이대로 가면 부자의 인연 끊자는 걸로 알 거다 "
" 아버지, 이건 제 의지입니다 "
김 회장의 연 끊자는 말에도 아랑곳 않은 석진이 본가를 나왔다
보이지 않게 꽉 쥐고 있던 손에는 손톱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지
만 속은 후련했다 나를 주체로 살아간다는 게 이런 것일까
자유롭다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한 번도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난다는 생각
을 해 본 적이 없었고 이제 곧 자신이 누리던 많은 게 당연하지 않게
될 테니까 그래도 지금 이 마음이면 괜찮을 거 같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툭-
여보세요?-
지금 보러 갈게 가면 웃어줄 거지?

" 보고 싶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