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쳤어 진짜. "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 여주가 괜히 석진을 째려봤다
정작 일을 벌인 석진은 싱글벙글하며 여주를 졸졸 쫓기 바빴고 여주만
석진에게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길까 안절부절이었다
대체 어쩌자고 그러고 집을 나온 건지 제가 아는 석진의 아버지라면
절대 제 말을 거스른 아들 놈을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이제까지 계속
아버지 그늘 아래 누려 오던 것들이 전부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정말 괜찮은 걸까 당신은.
" 진짜 여기서 나랑 이러고 살겠다고? "
" 응 그러려고 왜? 안돼? "
말릴 수 없었다 아니 말리지 못했다
정말 자신과 살겠다며 웃어 보이는 그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여서
그리고 정말 진심인 것 같아서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환영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당신이 원하는데 이 정도도 못 해 줄까
" 평범한 인간 김석진으로 살 자신 있는 거지? "
" 물론. "
그래 까짓것 해 보자
이러고 나온 마당에 당신과 나 이제 불륜일 것도 없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우리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하지만 이제 당신은
RJ 그룹 사장이 아니라 그냥 인간 김석진이야 난 왜 그때의 다 가진
당신보다 아무것도 없는 지금의 당신이 더 좋을까
졸졸 쫓아다니는 당신을 테이블에 앉혀 놓고 유자차 한 잔을 앞에
놔주면서 물었다
" 앞으로 어떻게 살 생각이야? "
" 음 생각해 봤는데 공부 더 해서 쇼콜라티에 따려고. "
" 쇼콜라티에? "
응 네 카페에서 커피랑 같이 팔까 해서.
푸스스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어쩐지 왜 그렇게 방실방실 웃나 했더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당신은 내가 탄 커피와 당신이 만든 초콜
릿이 함께 카페 안을 채운다니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서 미치겠다
그날 당신의 정략결혼 상대에게 망설임 없이 던졌던 확신이 결실이
되어 돌아왔다 미안하긴 했지만 사랑은 한 사람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결혼이었으니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며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 사랑해. "
" ...뭐라고? "
" 사랑한다고 석진 오빠. "
사랑해, 사랑한다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당신을 그렇게 지독히 사랑해 왔고 사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내 마음은 현재진행형이다 평생 어떤 순간이 와도 나는 걸을래 당신
곁에서 당신의 세상 속을 함께 그러니까 오빠도 내 손 놓치지 마
더 단단히 잡을 게.
*
*
*
그렇게 막무가내로 석진 오빠가 우리 집에 살림을 차린지도 벌써 3년
이란 시간이 지났다 계속 버틸 줄 알았던 강혜라 씨도 진짜 사랑을 찾
고 싶다며 금방 도장을 찍어주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오빠는 정말로 진심이었는지 그동안 누렸던 모든 것들을 아버
님께 돌려드리고 빈 몸으로 내게 다시 돌아왔다 드디어 나도 불륜녀
딱지를 떼어냈다 아직은 아버님 눈에 안 차는 며느리 감이지만 언제간
인정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참 쇼콜라티에를 따겠다던 오빠는 정말로 쇼콜라티에 자격증을 따 와
서 우리 카페 한편에 당당히 쇼케이스와 기구들을 들여왔다
" 와 진짜 짱이다 자기! "
" 내가 딴 다고 했잖아 오빠 멋있지? "
당신은 항상 멋있었어 나한텐
이제 카페 안에선 쌉싸름한 커피향과 더불어 달콤한 초콜릿 향이 부드
럽게 공존한다 마치 맞지 않던 서로가 드디어 맞아떨어진 것처럼 두
향기는 꽤나 어울렸다 당신과 내가 이렇게 맞닿았듯이
요즘은 매출도 잘 오르고 있다 그게 잘 생긴 내 애인의 외모로부터
나온다는 게 좀 그렇지만 그래도 당신은 나만 사랑하니까 아니 근데
그래도 얼굴 좀 어떻게 하자 꼬리 치는 것들 마음에 안 들어
" ...아 씨 마스크를 씌워도 잘 생겼어 뭐 이래?! "
" 푸흡. 이리와 "
우리는 서로 불륜이었고 불가항력이었으며 전 애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독한 길을 택했어도 우린 결국 다시 함께였다 너 나
할 거 없이 서로의 입술을 찾아든다 서로를 머금는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음을 나는 다시 또 한 번
각인 받는다 그래 나는 여전히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다
" 사랑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