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10) 사건의 마무리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현장에서 잠복근무를 한다던 정국이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질 않았다.
걱정하던 해주는 연수를 듣던 중 정국에게 연락이 오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갔다. 연락이 온 곳은 병원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채 막 진료를 마치고 나오던 정국을 해주는 달려가 안았다. 둘은 잠시동안 포옹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괜찮은 거야..?"
"어, 보다시피.."
자신을 막 살펴보던 해주는 정국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바라본 정국의 얼굴에는 그간의 고생을 알려주듯 작은 생채기들이 가득했고 얼굴도 바싹 야위어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 정국의 서 있는 모습은 반듯했다.
"해주야, 잡았어. 박지민..."
정국은 뿌듯한 표정으로 해주에게 말했다. 그를 잡기 위해 정국은 무단히 애를 썼다. 박지민 까지 잡으면 해주를 위험하게 했던 사람들이 이제 모두 체포되는 거였다. 체포 후에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남아있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국은 홀가분함을 느꼈다.
병원에서 함께 나온 둘은 잠시 벤치에 앉았다.
"폐쇄된 댐 시설이 남은 잔당의 근거지였어."
"정말...?"
"거기서 정말 죽을 뻔했는데, 그 순간 네가 생각나더라...
어떻게든 살아야겠더라고...
해주야,
네가 없었다면 어쩌면 그때 난 살아남지 못 했을지도 몰라."
댐 위의 추격전에서 가까스로 날아오는 총알들을 피하며 뛰어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정국이 말했다.
. . .
"참 어이가 없네...
이렇게 까지 날 목숨 걸고 쫓아오는 이유가 뭐야?"
수많은 조직원들을 해치우고 끝내 댐 위까지 올라온 정국에게 지민이 물었다. 정국은 머릿속으로 수인 납치 사건의 피해자였던 아버지와 함께 해주가 떠올랐다.
정국이 수인들이 납치된 사건들에 대해 열을 올리는 이유에는 분명히 아버지가 있었지만, 박지민은 동시에 해주를 위험에 빠뜨렸던 인물이었기에 정국에게는 그를 붙잡을 이유가 더욱더 강력했다.
대답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대로 정국이 돌격하자, 지민은 피식 웃었다. 지민은 그대로 외현화하여 날아갈 생각이었기에 마음이 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뒤를 도는 순간 정국은 품에서 총을 꺼냈다.
탕!
총알은 외현화한 지민을 정확히 맞췄다. 지민의 행동 패턴은 그동안 영상으로 보며 분석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정국은 그동안 분석한 영상을 토대로 계산해서 연습한 위치에 총을 쏘았고, 덕분에 날아가려고 날개를 펼친 지민은 명중당했다.
"윽...! 이게 뭐지....?"
까마귀로 외현화했던 지민의 몸이 서서히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정국이 쏜 총은 일반 총이 아니었다. 이곳의 수사대와 본국의 수사대가 합동으로 개발한 총으로 외현화를 막는 약물을 쏘는 총이었다. 지민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정국을 보며 자신이 패배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는 일...
그는 정국이 지민에게 수갑을 채우고 무전을 하느라 뒤돌던 그 순간,
퍽..!
지민은 있는 힘을 다해 정국을 그대로 높은 댐 밑으로 밀어버렸다. 정국은 그대로 댐 밑으로 추락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정국은 운 좋게 옷이 나뭇가지 끝에 걸려 매달려있었다. 충격에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긴 하지만, 팔다리에 힘을 줘보니 크게 뼈가 부러지거나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두두두두두두..
댐 위에는 막 헬리콥터가 떠나고 있었다. 아마 현장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에 당국의 경찰들이 지원을 나왔던 것 같았다. 정국은 소리를 질렀지만 헬리콥터 소리에 파묻혀버렸다.
발 아래쪽을 바라보니 폐쇄된 지 오래된 탓에 제멋대로 마구 자라버린 깊고 어두운 숲이 깊게 펼쳐져 있었다. 혹시나 해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지만, 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가 주머니에서 나올리가 없었다. 핸드폰이나 다른 소지품도 떨어지면서 다 흘려버린 건지 주머니가 텅 비어있었다.
이대로라면 살아서 이 숲을 헤쳐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여기서 포기해야 하는 걸까...
나무에 매달린 채로 정국은 생각에 잠겼다. 여러 가지 일들이 정국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리고 해주가 떠올랐다. 아직 청혼도 못 했는데... 정국은 왼쪽 손을 들어 반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녀와 함께 했던 많은 시간이 떠오르자 정국은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뻗어 옷이 걸린 나뭇가지를 잡아 올라가 보려 했다.
으드드득...
나뭇가지가 부러지기 시작했다. 한시가 긴박했다. 왼편에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살짝 몸에 스윙을 준 정국은 그대로 뛰어 큰 나무 둥치로 몸을 던졌다. 가까스로 나무에서 내려오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죽으면 안된다. 정국은 해주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어떻게든 여기서 나가야 한다. 정국은 이를 악물었다. 다행히 빗물 덕분에 정국은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다행히 댐 바깥쪽으로 떨어진 정국은 방향을 체크하며 한없이 한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만약 안쪽으로 떨어졌다면 그대로 댐 시설에 정국은 갖혀버렸을 것이다.
정국이 숲을 지나는 도로에 도착한 것은 그로 부터 사흘뒤였다.
지나가는 차를 겨우 잡아타고 경찰에서 신원조회를 마친 정국은 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영양부족으로 인해 몸이 상한 것 외에 다른 수치들은 다행히 모두 정상이었다. 검은 숲을 지나온 정국은 해주가 밝은 빛처럼 느껴졌다. 해주에게 나는 늘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정국은 사흘 동안 숲속을 걸어가며 자신에게도 해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벤치에서 정국은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해주를 바라보았다.
"해주야,
우리 본국으로 돌아가면, 진짜로 같이 살자.
너 없는 건 이제 생각도 못 하겠어..
숲을 빠져나오는 내내 네 생각만 나더라.."
말하는 정국의 초췌한 얼굴이 해주는 너무 안쓰러웠다. 해주가 정국의 얼굴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자 정국은 해주의 손을 꼭 잡더니 손에 끼워져있는 반지를 만지작 거렸다.
"원래는... 내가 이 반지 끼워줄 때 해야 하는 말이었는데...
해주야,
비록 내가 위험한 일을 하고 있어서 앞으로 우리 사이에 어떤 위기가 전혀 없을 거라고 장담하긴 어렵지만, 너 하나만큼은 꼭 안전하게 지켜낼게.
그거 하나 만큼은 꼭 약속할게.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하자."
해주는 긍정의 의미로 정국에게 입을 맞췄다. 따사로운 햇볕이 입을 맞춘 두 사람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응 그래, 정국아 사랑해.."
"나도.."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