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잡히다

외전 (6) 새벽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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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6) 새벽녘 깨닭음


하... 이게 뭐지....?


캄캄한 새벽녘 잠에서 깨어나 꿈일기를 펼쳐놓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문득 달력을 쳐다보았다.


정국이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지 2개월....
정국이가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


그래.. 내 마음속에 있던 갈등... 언젠간 끝이 있을 이 만남에 매달리다가 상처받는 건 내가 아닐까, 높이 날수록 추락할 때의 충격은 강해진다. 나는 행복할수록 무서웠다.


그와 같이 있는 것이 좋으면서도 너무 불안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늘 혼자였던 나였는데... 부모님이 갑자기 사라지고, 외면하는 주변 어른들을 보며 철저히 혼자 살아야 한다고 결심했던 그 때 이후로 악착같이 모든 일을 혼자 해내며 살아왔는데...

국과수에 입사하기 전 나를 옆에서 도와주던 정국이가 생각났다. 그 사건 이후, 정국이와 사귀기로 한 후부터는 논문을 쓸 때에도 시험 준비를 할 때에도 나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이전에 나의 삶과는 다른 일이었다.
부모님 이외의 사람이 내가 하는 일을 누군가가 옆에서 응원해주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행복할 때에도 간질간질하게 늘 남아있던 두려운 마음, 이 순간이 끝나면 나는 어떻게 하지...? 같이 있는 게 너무 좋은데도, 집안 여기저기에 정국이의 손길이 닿는 곳이 보일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그거였다.

그래서 악몽을 꿀 때면 그래도 이 사람은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니까... 되뇌었다. 어떻게든 두려움을 참아보려 애썼다. 하지만 늘 내 곁에 계실 것 같았던 부모님도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셨잖아, 난 정국이를 영원히 붙들 자신이 없어..



그리고 시선을 마주한 오늘, 
악몽 깊은 곳에서 나온 게 정국이라니...

니는 그 두려운 마음으로 이 아이를 꽁꽁 싸매서 내가 두려워했던 시선 속에 숨겨두고 있었다.




그랬다. 이 악몽은 그 아이와 같이 있기 위해 존재해야만 했다.





아... 그렇구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사실은 내가 정국이를 너무 원했기에 악몽이 지속되었던 거야. 이게 없어지면 이 아이를 내가 애써서 옆에 둘 이유가 없어지니까... 나는 분명히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결국은 이 아이와 거리를 두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 관계가 좋을 수록 안정적일 수록 더 많은 악몽을 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더 깊어질수록 내가 받을 상처는 더 커질 테니까...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나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소리가 새어나갈까봐 끅끅 거리며 울었다.

그를 여전히 받아주지 못한 것은 나였던 것 같아서... 그런 내가 너무 바보 같고 어리석어서 눈물이 계속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컴컴했던 창문에서는 어느새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밖에서 스테피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최근 부쩍 친해진 스테피와는 아침마다 같이 강의실까지 걸어가곤 했다. 이대로 앉아있다가는 곧 노크 소리가 들릴 것 같다. 퉁퉁 부은 눈으로 나오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겠지... 일단 찬물로 세수부터 해야겠다.


나는 눈물로 얼룩진 노트를 덮고 일어섰다.



.    .    .


강의실로 걸어갈 때였다. 스테피가 눈을 반짝이며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가리켰다.



"해주, 그런데 그 반지는 뭐야...? 지난번에 어떤 남자애가 너 반지 항상 끼고 있는 거 혹시 커플링이냐고 물어보더라고.."


"아, 이거...? 커플링 맞아, 남자친구가 준 거야."



아... 내가 항상 끼고 다녔었나...? 생각해보니 세수할 때도 잘 때도 항상 끼고 있긴 했다. 공항에서 정국이가 내 손가락에 끼워줬을 때 그 느낌이 너무 애틋해서 늘 끼고 있었다.

궁금해는 스테피에게 나는 반지를 가까이 보여줬다. 호기심 많은 스테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반지를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이쁘다... 
 그럼 남자친구는 지금 본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야...?"


"어... 아마...?"


"아마... 라니...? 뭐야...?"


"사실은 여기에 와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어... "


"뭐라고...? 설마... 헤어진 거야..?"



눈을 반짝이던 스테피의 표정이 바로 슬픈 표정으로 가득했다. 스테피 눈에는 나 헤어졌는데도 커플링을 계속 끼고 다니는, 미련 가득한 여주인공 된 거 맞지?



"그건 아닌데... 

 그게.. 내가 스스로 극복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내가 시간을 갖자고 이곳으로 떠나왔어."


어느새 강의실 중앙에 자리를 잡은 나에게 스테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뭐야뭐야... 해주, 늘 괜찮다고만 해서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잖아~ 지금은 괜찮아진 거야..?"


"응, 해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 같아.."


"다행이다... 
 사실은 저쪽에 다케시라는 애가 너랑 친해지고 싶대~"



스테피가 강의실 저쪽에 앉아있는 애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떤 동양계 남자애가 이쪽을 쳐다보다가 눈빛이 마주치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니야, 스테피... 지금은 다른 사람은 만나고 싶진 않아."


"그냥 당장은 가벼운 마음으로 친해지고 싶다는 거 같았는데.. ㅎㅎ 여튼 알았어"



스테피는 나의 거절에 이야기를 멈추더니 곧 책을 꺼내며 강의를 들을 준비를 했다.

나도 함께 책을 펴면서 손에 낀 반지를 보니 웃음이 피식 났다. 비록 그에게 연락은 한 번도 안 했지만 공항에서 준 반지는 여태 잘 끼고 있었구나... 게다가 이 반지 때문에 말도 못 걸고 있는 애도 있다니, 왠지 반지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 같아 웃겼다.



이참에 정국이에게 연락을 한번 해볼까 말까...?

이제와서 연락하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지만 그게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지난 두 달간 정국이는 어떻게 지냈으려나... 정국이가 한 번 보러 온댔으니... 먼저 연락을 주진 않을까... 역시 기다리는 게....



.    .    .



며칠 뒤 나는 온라인으로 상담샘을 만났다.

갈등의 의미는 찾았지만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정국이를 떠나고 나서 왜 이리 악몽이 물밀듯이 찾아온 걸까..?



"그건 흔히 저항이라고 부르죠.
 떨어지려고 하니까 오히려 무의식적 갈등은 더 극대화 되었을 거에요. 그래서 자주 꿈을 꾸게 된거죠. 그런 격렬한 저항이 해주씨에겐 꿈의 의미를 탐색할 좋은 기회가 되긴 했지만, 그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에요.. 

해주씨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


"네... 그랬죠.."



할아버지 상담샘의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눈물이 찔끔 났다. 목이 갑자기 잠겨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컴퓨터 화면 너머의 상담샘은 내가 목소리를 가다듬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악몽의 의미를 알고 나니까 마음은 차분해졌지만, 
 그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


"악몽의 의미를 알고 난 뒤에 마음이 어떻게 차분해졌나요?"


"그냥, 이제 악몽이 두렵지 않아요. 
 나의 악몽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불쌍하다라...
 그래서 해주씨는 불쌍한 악몽에게 어떻게 해주고 싶나요..?

 옆에 악몽이 앉아있다고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상담샘 말에 어둡게 그림자진 옆을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안심을 시켜주고 싶어요. 

 괜찮다. 
 이제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 그리고..."


"그리고...?"


"꼭 안아줄래요... 정국이가 절 안아주듯이... 
 저도 제 마음속의 두려움을 꼭 안아줄래요...

 그럼 진심으로 안심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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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구독 등 모두 너무 감사해요..!
다음편이 아마 마지막 편이 될 것 같아요~ 

끝까지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