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고 웃고를 반복한 여주는 이젠 감정을 소모할 수 있는 힘 조차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터덜터덜 낡은 방문을 슬며시 열어.
여주 만큼이나 상실감이 컸던 아버지는 방문을 열고 나오는 여주를 무시한 채로 밖으로 나가.
여주는 아버지에게 어딜 가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건 침묵 뿐이였어.
여주가 나무로 된 잔에 물을 떠서 마시려는 그 순간,
집 바로 앞에서 옆집 아주머니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지.
여주는 물 잔을 채 놓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자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나갈 채비를 하던 아버지가 나무에 목을 매달고 자결을 한 장면을 보았어.
여주는 자신이 아끼는,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가족을 잃고, 잃은 장면을 자신의 육안으로 직접 보게된 사실에 물 잔을 놓쳤어.
여주는 그대로 혈색이 사라져가는 아버지의 손을 꼭 붙들고 자신에게 남은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부정하듯 계속 아버지에게 물었어.
“아니죠...? 아버지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장면은 단순한 극이죠...? 그런거죠...? 맞잖아요. 아버지 살아계시잖아요. 재미없어요...”
그렇게 현실을 부정하던 여주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고, 옆집 아주머니는 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대로 자신의 집으로 뛰쳐갔어.
아버지의 차가운 시신을 어머니의 묘 옆에 묻고 여주는 인사를 한 번 하고 그대로 산소에서 벗어났지.
그리고 뛰어가던 여주는 생각했어.
자신이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던 행위를 어쩔 수 없이 해야겠다고,
반신반의로만 생각했던 행동을 결국엔 하게 되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그렇게 여주는 왕자의 행차 날만을 기다렸어.
약 1주일 뒤-
저번에 들었던 소리와 동일한 트럼펫 소리와 왕자님의 행차를 알리는 멘트가 마을에 울렸어.
여주는 아무 감정이 없어 보이는 미소를 짓고 그대로 뛰어가 자신이 들고있던 과도로 왕자비를 찔렀어.
왕자는 충격에 휩싸인 채로 왕자비를 흔들고 있었고 여주는 왕자비의 혈이 묻은 과도를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지.
신하들은 자신들이 혹여 보복을 당할까 무서워서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왕자는 자신의 아내를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지.
말 그대로 혼비백산이 된 벨리타 왕국.
왕자는 큰 충격에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고 여주는 왕국의 감옥에 갇혀있었어.
신하들의 재촉에 왕자는 여주가 갇혀있는 감옥으로 향했어.
여주는 넋이 나가있었고 왕자는 여주를 보자마자 흥분을 감당할 수 없이 철창을 흔들었지.
여주는 그런 왕자에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지.
여주의 태도가 뻔뻔하고 비인간적이라고 느낀 왕자는 신하들에게 소리쳤어.
“이 자의 삼족을 멸하여라!”
하지만 여주는 바람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어.
“삼족... 근데 이를 어떡하죠? 저에겐 남은 혈족이란 없고, 왕족 시해범으로 그대로 사형감인데도 저에게 삼족이라는게 있을까요?”
왕자는 여주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왕자는 고개를 떨군 채로 이렇게 생각했었어.
‘이 자를 사형시키는게 내 딴에선 맞는데, 이 자가 너무 불쌍해보여.’
‘내가 또 마음이 약해져 내 아내의 시해범을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
그의 속내를 알아채지 못한 듯 한 여주는 구석에 앉아있다가 일어서서 소리쳐.
“당신이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괴물로 변하진 않았을거야. 당신의 아내가 혼자 자작극을 벌이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부모님이랑 같이 있어서 내 가족은 남아있었을거라고. 당신이 그래놓곤 누굴 탓해? 이기적으로 보여? 그래. 나 이기적이야. 그래서 당신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으면 했었어.”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항상 하시던 말씀이 뭔지 알아? 왕국의 달이 되어 어두운 우리 벨리타의 밤을 밝히라고! 그렇게 매일 밤마다 말씀하셨는데 당신은 우리 어머니의 소원을 짓밟고 그런 어머니를 살해한거야. 결국 당신이 사랑하는 자를 당신이 지키지 못한거야. 알아?”
그렇게 열분을 토하던 여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 방울 씩 떨어져 차디찬 바닥에 스며들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