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처음이라서
W. 꽃서령
그 순간. 생각을 하는 것을 포기했다.
김태형이란 사람은, 더이상 윤수현에게 ‘잘생긴 남자’가 아닌, ‘첫사랑’ 으로 변경되는 순간이였다.
… …
당일 오후. 학교를 마치고 집에오자마자 나는 침대에 엎어졌다. 옥상에서 태형이 했던 말을 머리속에 카세트 테잎을 틀어놓은 것처럼, 그 구간만 계속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래서 내가 좋다니… 미쳤어, 미쳤어!.”
엎어진 채로 발만 동동굴렸다. 얼굴도 엄청 잘생겼는데, 말도 엄청나게 설레게 잘했다. 이 정도면 선수를 의심해봐야 할텐데… 사실, 태형이 선수라해도 나에게는 상관없었다. 솔직히, 그 얼굴에 여자 한 번 안 만나본게 더 이상한거 아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거울을 손을 휘적거려 잡았다. 그리고 쳐다본 거울속의 내 얼굴. 미친, 슬라임같았다.
이목구비 똭! 똭! 조각같은 태형을 보다가 내 얼굴을 보니까, 이목구비 완전 흐물흐물. 이목구비가 무엇인가요?. 완전 흐물흐물한게 녹아버린 슬라임같았다.
“…이런 슬라임이 김태형을 좋아한다고?.”
아, 이건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됐다. 거울을 침대에 던져놓은 나는 그대로 다시 침대 위로 누웠다. 사실 서로 좋아하면 외모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그건 드라마 속 이야기고. 실제라면, 못난 사람은 엄청 신경쓰일 것 같다. 자신의 연인은 누가봐도 잘난 사람이고, 나는 이렇게 못났다고 느끼면 자존감이 하락하는건 당연한 일.
태형과 잘되야겠단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 없다. 누가봐도 너무 잘난 사람이였으니까. 그래서,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다. 짝사랑은 가성비가 좋으니까!. 혼자 좋아하고, 혼자 나가 떨어지면 그만인 덕질로 가기로 했다.
덕질 경력 0년차. 아무것도 모르는 범생이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 검색 이였다. 무작정 노트북을 켜 초록창에 타이핑을 해댔다.

999+ 나보다 더 일찍 덕질한 선배님들의 조언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양에 당황하긴 했지만, 커서를 움직여 제일 첫 번쨰 게시물부터 클릭했다. 오늘 안에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무작정 외우기로 했다.
전교 2등 범생이의 저력을 보여주겠어!!.

다음날. 나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무작정 옥상으로 올라갔다. 학교에 도착하면, 1교시 종이 칠 때까지 옥상에있는 태형 때문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옥상의 철문을 밀자마자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바람을 쐬고있는 태형이 보였다.
“태형아!.”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잠깐 움찔- 하는가 싶더니, 눈을 느릿하게 떴다. 그리고선 내가 있는 쪽으로 고래를 돌려주는 모습에, 있는 힘껏 손을 흔들고서 태형이 앉아있는 벤치 옆에 앉았다.

“병아리, 기분 좋아보이네.”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병아리라 부르는 태형에 벌써 적응을 한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며 피식- 웃어주는 태형의 얼굴, 참 별거 아닌 행동인데. 그날의 일 이후로 김태형은 나에게 설렘만을 주는 사람이 됐다. 참 이상한 감정이였다.
“다름이 아니라… 나 너 사진 찍어도 돼?.”
“사진?.”
태형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름이 아니라, 나 오늘부터 너 덕질하기로 했거든!.’ 덕질?, 아침부터 무슨 개소리를 하는거냐고 말하는 것 같은 태형의 얼굴에 나는 괜히 입술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왜… 그 팬들이 아이돌 좋아하는 것 처럼 말이야. 나도 오늘부터 김태형 팬 하겠다고!.”
“뭣하러?.”
마음대로 하라고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 외의 답변에 나는 놀란 얼굴로 멈춰서서 태형을 쳐다봤다. 그게 그러니까… 뭐라고 변명해야 돼?. 짝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덕질하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건데. 태형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짝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대로 멈춰서 눈만 깜빡이고 있으니까, 태형이 느긋한 얼굴로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혼자만 볼거야?.’ 라는 말에 난 냉큼 ‘응!, 당연하지. 덕질은 원래 혼자하는거야!.’ 라고 대답했다.

“병아리, 근데 그런건 어디서 배웠어?.”
사진을 찍겠다고 내 핸드폰을 가져간 태형은, 시선은 핸드폰에 시선을 두고서 물었다. 어디서 배웠냐니. ‘당연히 초록창에서 배웠지.’ 대답하자, 태형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터넷은 쓸대 없는것만 있다니까.’ 라며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내가 덕질한다는게 마음에 안 들어서 저러는건가 싶었는데, 태형의 다음 말이 내 생각을 끊어놨다.
“덕질은 몇명까지 할 수 있는데?.”
“응?.”
그러니까, 덕질은 몇명까지 좋아할 수 있냐고. 물어오는 태형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초록창 보니까 여러명 좋아할 수는 있던데… 나는 태형이만 덕질할 거니까, 한 명인가?. 나는 음…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한 명?.”
태형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래?.’ 라고 대답하고서 하늘위로 핸드폰을 올리고서,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순간적인 스킨십에 당황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태형과 핸드폰을 번갈아보았는데, 태형은 또 내 표정을 읽은 사람처럼 대답했다.
“너 팬이라며. 그럼 나랑 같이 찍어야지.”
어?, 그렇긴 한데… 이래도 되는건가?. 싶었다. 덕질을 가장한 짝사랑이였는데, 의도치않게 사심을 채우게 된 나는 엉겁결에 태형의 팔에 감겨 가까이 붙었다. 미치겠네. 머스크향이 코를 찔렀다. 얼굴도 잘생겼는데, 향도 좋아…
“앞을 봐야지. 나를 보면 어떡해.”
“어?, 어 응…!!.”
찰칵, ㅡ
하는 소리와 함께 남겨진 우리 두 사람의 사진. 태형은 사진을 찍고나서도 핸드폰을 넘겨주지 않았다. 핸드폰을 몇 번 만지는 듯 하더니, 얼마안가 울리는 태형의 핸드폰. 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자신의 핸드폰에도 옮겼던 모양이였다.
헉, 그럼 잠시만. 그럼 내가 김태형 전화번호를!… 순간적으로 흥분할 뻔했다. 겨우 진정한 나는 후욱, 후욱, 숨을 내쉬고서 말을 하려는데, 태형의 입이 먼저 열렸다.

“네 전화번호가 없어서. 겸사겸사.”
겸사겸사도 좋고, 힐끗- 쳐다보는 것도 좋아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진정한 덕질의 맛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사진도 같이 찍고, 핸드폰 번호도 얻고. 나는 결짐했다. 덕질의 맛을 앞으로 더 전파하겠노라고. 한참을 그렇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을까. 핸드폰 맨 왼쪽 상단의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오전 8시 45분.
곧 있으면 1교시가 시작할 시간이였다. 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일어나니, 태형도 곧 따라 일어섰다. 이제는 거의 한 파트너가 된 기분까지 들었다.
그렇게 나란히 옥상의 문으로 걸어가, 문고리를 잡아 돌리려는 순간 문고리가 먼저 돌아갔다.
어?. 누구 들어올 사람이 있나?. 라는 것도 잠시, 문 너머에서 익숙한 향이 났다.

“윤수현!!,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네가 왜 여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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