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처음이라서
W. 꽃서령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소문이 소문일 뿐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태형이 내게 했던 말 때문인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태형이는 처음부터 자기 소문이 그렇게 난 것을 이미 알고있었던 것일까… 처음에 그런 말을 했을때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송강의 말을 듣고나니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그런 소문이 났다면, 다른 애들이 멀리하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가…

“요즘따라 나 엄청 쳐다보네.”
어?. 시선이 너무 집요했던걸까. 하루종일 엎드려있던 태형이 상체를 일으키더니 나를 쳐다본다. 요즘따라 라니… 그렇게 자주 쳐다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나는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가 다시 태형을 쳐다보았다. 아무리봐도 여자들을 가지고 노는 애로는 안보이는데, 역시 헛소문 인걸까.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처음에는 태형이도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나 했더니, 두 번째도 쳐다보니 태형도 이상함을 느낀건지 이번에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턱을 괸 모습은 왠지모르게 되게 치명적이였다.
“나한테 무슨 할 말있지.”
“어?…”
“얼굴이 딱 무슨 할 말 있는 것 같은데.”
할 말이라기보다는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는게 맞는 말이겠지. 그래도 막상 물어보려니까 쉽게 입이 안 떨어진다. 진짜여도 문제이겠지만, 아니면 이 질문은 오히려 태형이에게 상처가 될테니까. 그렇게 말할까 말까 한참을 머릿속에서 고민했을까, 태형의 입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아, 혹시…’
“소문 듣고 이러는건가.”
“…소문?.”
“애들한테 들은거 아니야?. 내 소문.”
빙빙 돌리지않고 툭- 까놓고 얘기하니까 더 당혹스러웠다. 얘는 자기 소문을 알고 있었구나… 싶으면서도, 아니면 아니라고 나서서 해명을 해야할텐데. 해명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또 정말인가 싶기도 하고. 혼자 머릿속으로 온갖 망상을 하고있을 때. 태형의 길고 가느다란 손이 장난스럽게 내 이마를 툭- 하고 치며 말했다.
“머리 굴리지말고, 차라리 물어봐.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
그게 궁금한거 아니야?. 어째 내 생각을 이렇게도 잘 아는지. 가느다란 손가락이 닿였다 떨어진 이마를 살짝 만지작거렸다. 당사자의 허락도 떨어졌으니, 못 물어볼 것도 없었다. ‘소문이… 진짜야?.’ 조심스럽게 물으니, 태형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말려올라갔다. 알 수 없는 미소. 태형은 다시 되물어왔다.
“넌 어떨 것 같은데?. 진짜일 것 같아, 아님 가짜일 것 같아?.”
나는 순간적으로 미간을 살풋 찌푸렸다. 뭐야, 질문은 내가 했는데 답은 안오고 다시 물어오다니. 왠지 놀림받는 기분이 들어서 ‘말하기 싫으면 하지마.’ 라고 고개를 돌리고서, 교과서를 꺼내들었다. 괜히 민망해져서 수업들을 준비나 해야지- 라며 혼잣말을 시전하니, 옆에서 쿡쿡- 하며 웃는소리가 들려오더라.
“뭐야, 왜 웃어?.”
“푸흡, 아니… 미안. 너무 웃겨서…ㅋㅋ.”
아니, 대체 뭐가 웃긴데?. 이 공기의 흐름이 웃기니, 아니면 내 얼굴이 웃기니?. 어이없단 표정을 지으며 얼빠진 얼굴을 하니. 급기야, 배를 부여잡고 웃는다. 이것봐라?. 내 얼굴을 보고 웃어?. 아무리 잘생겼다지만, 내 얼굴보고 웃는 건 용서 못하지. 주먹을 꽉- 말아쥐고, 어깨를 가격했다. 처음이였다. 송강 외의 잘생긴 사람을 때린건.
“악!, 미안… 미안. 무슨 말을 하고싶어하는지 얼굴에 다 들어나는데, 아닌 척 하니까. 웃겨서.”
“…됐고!. 얼른 대답이나 해주시지?. 맞다, 아니다로?.”
태형은 맞은 어깨를 만지작 거리다가 이내, 씁쓸하게 웃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진짜 씁쓸한 표정이였다. 태형의 입에선 허무할 정도로 너무 쉬운 답이 흘러나왔다.

“소문이 진짜냐. 라고 물으면 맞아. 그 소문.”
“… …”
“근데 난 양심에 가책같은 건 안 느껴. 그 여자들도 날 이용하려 하다가, 역으로 이용당한 거니까.”
잠시지만,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참 이상하지. ‘난 여자를 이용했어.’ 정말 군더더기 없는 답변인데, 이상하게 나는 태형이 밉게 보이지 않았다. 그가 역으로 이용했다. 라고 말해서 일까. 아니면, 그걸 넘어설정도로 내가 그를 좋아해서 일까. 이 질문의 답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사실, 남자던 여자던 날 이용하지 않으려드는 사람은 없지.”
왠지 모르게 태형의 말이 슬프게 들렸다. 송강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한국과, 미국의 경제를 책임지는 대기업의 외손자이자, 외아들이였다. 그러니, 주변에서 얼마나 그를 이용하려고 들었을까. 어른이고 아이고 어떻게든 그와 연줄을 만들려고 노렸을 했을 것이였다.
“…도와주려고 생각은 안 해봤어?.”
“뭘?.”
“그 사람들이 그렇게 널 이용하려고 했었다면, 한 번쯤은 마음이 흔들렸을 것 같기도 해서말이야.”
물론, 나라면 말이지만. 태형은 내 말에 잠시 멈칫- 하는가 싶더니 이내 웃으며 머리통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건, 네가 지나치게 순진해서 그런거고.’ 손길이 퍽 다정했으나, 순식간에 바뀐 표정은 그리 좋지못하였다.

“난 이미 타락해서, 그런 인간들의 습성을 잘 알아.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제 딸이나 부인을 들이밀면서 까지 그러진 않았겠지.”
“…부인?.”
“게다가, 아버지랑도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고.”
나는 부인이란 단어에서 경악하고 말았다. 딸도 말도 안되지만, 부인이라니. 어떻게 제 딸도 모자라, 부인까지 들이민다 말인가. 꼭, 드라마 시대극에 나오는 간신배들 이야기 같았다.
…그런데, 아버지랑도 사이가 안 좋다니.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였다. 워낙, 귀티도 나고 모자람 없이 자라보여서 부모님이랑도 사이가 안 좋다는 상상도 못했는데.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였다.
“…아버지랑은 왜 사이가 안 좋아?.”
너무 오지랖인 질문이였나. 내가 질문을 하고서도, 이건 너무 아니다 싶어서 질문을 철회하려던 순간 태형의 입이 열렸다. ‘아버지는, 나한테 큰 거짓말을 했어.’ ‘그것도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거짓말.’ 나는 그 순간 태형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건 절대로 미워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눈빛이 아니였다. 그건… 누가봐도 상처받은 눈빛이였다.
“…그래서 싫어. 난.”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내게 표정을 꾸미고 다가오는 사람도.

“어쩌면, 그래서 내가 표정을 잘 읽는 걸지도 몰라.”
날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똑같이 상처를 주려고. 난 그 순간 생각했다. 태형은 무표정한 얼굴도, 날카로운 말투도 어쩌면 전부 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였을까. 하고.
정말 충동적이였다. 그대로 손을 뻗은 나는, 태형의 머리를 끌어안아 품에 가뒀다. 평소같았으면, 정말 맨정신으로는 못 할 행동이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는 취해있었다. 김태형이란 아주 진한 알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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