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잘 날 없는 너때문에

19 등짝 스매싱

쫙—!!!

 

경쾌하면서도 살벌한 소리가 병실에 울렸다.

 

“악!!”

은호는 기겁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리의 침대 옆에서 엎드린 채 자고 있다가, 거의 튕겨 오르듯 일어났다.

 

 

“ㅁ.... 뭐야 뭐야 뭐야—!! 누구야!!! 이ㅆ...”

 

“야 이 자식아!!!!”

 

범인은 바로 밤비였다.

밤비는 한 손에 음료 컵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방금 은호의 등을 가격한 상태였다. 눈은 부릅떠 있었고, 이마에는 분노의 핏줄이 선명했다.

 

“야!!! 너 어제 어디 갔어!! 술 먹고 사라지더니 연락도 안 받고!!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아?!”

 

은호는 멍한 얼굴로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어?”

 

그제야 시야에 들어온 병실, 흰 커튼, 그리고 침대 위의 플리가 뚜렷하게 보였다.

 

“…플리?”

플리는 눈을 깜빡이다가 작게 말했다.

“안녕… 하세요? 하하”

 

순간 밤비의 시선이 은호 → 플리 → 은호 순으로 번쩍 이동했다.

 

“…설마.”

 

밤비의 눈이 커졌다.

“야. 너 설마. 여기서 잤어?”

 

은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은데.”

 

“미쳤어?!”

 

쫙—!!

 

“아악!!!”

 

밤비의 등짝 스매싱 2차가 정확히 들어갔다.

 

“내가 밤새 네놈 찾으러 캠퍼스랑 술집 골목을 뽈뽈 돌아다녔는데!!! 이 자식은!!! 병실에서!!! 사람 다리 베고!!!”

 

 

“아니 그게… 나도 왜 여기 있는지…”

 

플리는 그 장면을 보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푸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플리에게로 향했다.

 

“아, 미안해요.”

 

플리는 입을 가리며 말했다.

“근데… 좀 웃겨서요 ㅋㅋㅋ ...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ㅋㅋㅋ”

병실의 공기가 조금 풀어졌다.

 

 


 

 

잠시 후, 셋은 병실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은호와 밤비는 커피를, 플리는 주스를 들고 있었다.

 

“예준 선배는요?”

플리가 물었다.

 

“알바갔던데?”

밤비가 대답했다.

 

“대신 어제 얘기한 건 다 전해주라고 했어.”

은호가 목을 가다듬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너, 무대 설 수 있게 됐어”

 

“…진짜요?”

 

 

“ㅎㅎ 당근이지~ 보컬이 안 서는 게 말이 돼?”

밤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에서 라이브 연결하는 거 말고, 무대 뒤쪽에 작은 공간 만들어서 거기서 노래하면 될 것 같애. 너가 노래하는 건 영상으로 나오고.”

 

은호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곡 마지막에— 휠체어 타고 무대로 직접 나오는 거야.”

 

플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괜찮을까요? 제가… 민폐는 안 될까요? 휠체어 타고 공연이라니...”

 

밤비가 바로 말했다.

“야, 그걸 왜 네가 걱정해. 이거 완전 연출 미쳤거든?”

 

은호도 낮게 웃었다.

“네가 무대에 서는 게 제일 중요해.”

 

플리는 숨을 고르더니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진짜로.”

 

그때 밤비가 말을 꺼내려다 멈칫했다.

“근데 이거… 사실 우리가 처음 생각한 건 아니고—”

 

 

 

똑똑.

병실 문이 열렸다.

 

“저… 들어가도 될까요?”

 

박하였다.

플리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박하님…?”

 

박하는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깊게 숙였다.

 

“…미안해요.”

병실 안이 조용해졌다.

 

“그날… 계단에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근데 변명은 안 할게요. 결과적으로 이렇게까지 다치게 했으니까...”

 

박하의 목소리는 낮고 진지했다.

 

“저… 많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더라구요... 괜히 플리 씨가 욕심 부리고 있다고만 생각했어요.”

 

플리는 잠시 박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도, 와서 사과해줘서 고마워요.”

 

박하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사과 받아줘서 고마워요...! 같이 공연… 잘 준비해봐요.”

 

플리는 미소 지었다.

“저, 포기 안 할 거예요.. 도와주실꺼죠? ㅎㅎ”

 

병실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밤비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 어색한 웃음이었지만,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밤비는 바로 손을 들었다.

 

 

“당연하지. 안 도와주면 우리가 사람이냐?!?!?”

 

박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같이 가요.”

 

은호는 짧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래. 끝까지.”

 

플리는 그 말들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자신이 누군가의 짐이 되고 있는 건 아닐지, 그 질문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 선택이

앞으로 어떤 파도를 불러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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