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잘 날 없는 너때문에

20 마음의 소리

병실 문이 닫히고, 복도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공기가 갑자기 텅 비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플리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까까지 분명 웃고 있었고, 사람들 목소리가 가득했는데

지금은 시계 초침 소리마저 또렷하게 들릴 만큼 조용했다.

 

‘다들… 진짜 고맙다.’

 

그 생각은 거짓이 아니었다.

밤비의 장난 섞인 확신도, 박하의 조심스러운 사과도,

 

 

그리고 은호의 짧지만 단단한 말까지.

모두가 자신을 믿어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가슴 어딘가가 계속해서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플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침대 끝에 놓인 휠체어, 그 옆에 가지런히 접힌 담요.

그리고 자신의 다리— 깁스가 단단히 감겨 있었다.

 

‘…나 때문에.’

 

그 단어가 마음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떠올랐다.

무대 구성도, 동선도, 연출도.

전부 자신 때문에 바뀌었다.

 

누군가는 밤늦게까지 회의했을 거고,

누군가는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렸을지도 몰랐다.

 

“민폐… 아니겠지.”

 

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은 병실 안에서 공기처럼 흩어졌지만,

그 질문은 플리 마음속에 또렷하게 남았다.

 

 

 


 

 

 

밤이 깊어졌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았는데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눈을 감을수록 오히려 생각이 더 선명해졌다.

무대 조명,

관객의 시선,

 

그리고—

 

휠체어를 탄 채 무대 위로 나오는 자신의 모습.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노래보다… 상황이 먼저 보이면 어떡하지.’

.

.

.

 

‘동정하는 눈으로 보면…?’

 

플리는 이불을 꼭 움켜쥐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 이불이 구겨질 만큼.

 

‘나… 노래하려고 서는 건데.’

 

그런데 점점

노래를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결국, 플리는 잠들기를 포기했다.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이어폰을 꽂았다.

MR 파일을 재생하고, 볼륨을 가장 낮췄다.

 

혹시라도 복도에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숨까지 죽인 채였다.

 

“…사랑을 향한… 길…”

 

노래는 잘 나왔다.

컨디션도 괜찮았다.

 

호흡도, 음정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노래가 끝나자

 

가슴 안쪽이 이상하게 조여왔다.

 

“…하아.”

 

플리는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숙였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잠시 버거웠다.

 

‘이 정도로… 충분할까.

다들 이렇게까지 하는데…’

다시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시작했다

이번엔 조금 더 힘을 줬다.

 

조금 더 정확하게,

조금 더 완벽하게.

목이 살짝 아려왔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괜찮아.

이 정도는… 내가 감당해야지.’

 

문득,

어젯밤의 장면이 떠올랐다.

 

자신의 다리 위에 머리를 올린 채 잠들어 있던 은호.

술기운에 반쯤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말.

 

 

“걱정… 대자나…”

 

그 얼굴이 떠오르자

플리는 갑자기 노래를 멈췄다.

 

‘선배는…

나 때문에....’

 

그 생각이 들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플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러다… 다들 지치면 어떡하지.

.

.

나 하나 때문에.’

 

플리는 휴대폰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괜히 말하면…

괜히 분위기만 흐릴 것 같아.’

 

그냥, 자신이 더 잘하면 되는 거였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아무도 걱정하지 않게 만들면—

그게 가장 좋은 선택 같았다.

 

플리는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이번엔 아예 속삭이듯,

그러나 더 진하게.

 

목이 따끔거렸지만

그 느낌을 무시했다.

 

 


 

 

 

병실 밖,

복도를 지나던 은호가 걸음을 멈췄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주 작은 노랫소리.

 

“…?”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칠 만큼 미세한 소리였다.

하지만 은호의 발걸음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노래는 안정적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마치, 실수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좀 이상한데.’

 

플리는 노래를 마치고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나… 잘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말은

확신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달래는 말에 가까웠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조용히 시작된 이 마음이

조금씩 플리를 갉아먹고 있다는 걸—

 

그날 밤,

플리만 아직 모르고 있었다.

.

.

.

.

.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