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잘 날 없는 너때문에

21 괜찮다는 말의 무게

병실 문을 나서는 순간, 플리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

 

“괜찮아.... 할 수 있어...”

 

그 말은 거의 자동처럼 튀어나왔다.

누가 묻기도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하는 말 같았다.

 

휠체어가 복도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바닥에 반사된 형광등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끊겼다 이어졌다.

 

 

“오늘은… 리허설만 살짝 볼 거지?”

 

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는 건 괜찮잖아요.”

 

‘보는 건.’

그 말 뒤에, ‘노래는 안 해도’라는 말은 붙지 않았다.

 

연습실 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공기가 밀려왔다.

악기 냄새, 바닥의 먼지, 낮게 웅웅거리는 앰프 소리.

 

 

 

“왔네?”

 

은호가 짧게 말했고,

플리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들… 안녕하세요... 헤헤.. 잘 지내셨어요?”

 

 

밤비가 먼저 다가왔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열심히 치료 중이죠 뭐 ...”

은호는 말없이 플리를 한 번 보고,

다리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플리 얼굴 쪽을 올려다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허설은 생각보다 빠르게 시작됐다.

 

플리는 무대 옆,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마이크를 들었다.

 

“소리만… 한 번 맞춰볼게요...!”

 

목소리를 가다듬을 틈도 없이,

MR이 흘러나왔다.

 

플리는 숨을 들이마셨다.

 

"🎶나의 두 눈에 제일 먼저 그대를 담고~"

 

첫 소절은 안정적이었고, 목 상태도 꽤 나쁘지 않았다.

 

‘괜찮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바로 문제가 생겼다.

 

가성으로 올라가는 구간에서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은호는 바로 그걸 캐치하곤 바로 고개를 들었다.

 

“…….”

 

플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노래를 이어갔다.

 

두 번째 가성,

이번엔 숨이 조금 모자랐다.

 

끝까지 끌고 갔지만,

마지막 음이 깔끔하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자,

연습실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플리야”

 

"...."

 

"플리야?"

은호가 불렀다.

 

"ㄴ...네...?"

 

"애들아, 나 플리랑 잠깐 할 얘기 있는데.. 자리 좀 비켜줄래?"

 

 

"ㅇ..어? 그래, 플리 움직이길 불편할테니까 우리가 나갈께 !! 하하..."

밤비는 은호의 분위기를 눈치채고는 팀원들을 데리고 빠르게 방을 나갔다.

 

“너 어제 무리해서 연습했지.”

 

플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은호는 말없이 플리를 봤다.

그 시선이 묘하게 깊었다.

 

 

“진짜 안 했어?”

 

“…네.”

 

잠깐의 정적이 있고,

문쪽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밤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상태로는… 무대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아... 목이 조금 나갔던데..?”

 

그 말에,

플리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굳었다.

 

“그럼 안 하면 되죠.”

 

“플리야”

 

“.....”

 

플리는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원래 다 제 때문에 바뀐 거잖아요.”

목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연출도, 동선도, 무대 구성도.

그러면 제가 더 잘해야하는데...”

 

밤비가 말하려다 멈췄다.

그 사이, 은호가 낮게 말했다.

 

“그건 네가 혼자 책임질 일이 아니야.”

 

플리는 고개를 들었다.

“아니에요.”

 

이번엔 단호했다.

“저 때문에 다들 이렇게까지 하는 거잖아요.

그럼… 이 정도는 해야죠.”

 

은호의 얼굴이 굳었다.

“야, 김플리.”

 

“죄송해요, 저 ... 몸이 안 좋아서 이만 가볼께요..”

 

그 말이,

이번엔 조금 떨렸다.

플리는 급하게 휠체어를 끌고 가다, 복도에서 휘청거렸다.

 

"ㅇ...어..."

 

"김플리 !!!!!!!!"

은호가 소리치며 순식간에 따라온 탓에 간신히 넘어지지 않았다.

 

"... 너 자꾸 이럴래? 내가 데려다줄테니까 군말말고 가만히 있어."

 

"....네..."

 

 


 

 

 

병실로 돌아오는 길,

플리는 말이 없었다.

 

부모님 앞에서는 다시 웃었다.

 

“...오늘은 그냥 리허설만 봤어요.

컨디션도 괜찮았고... 헤헤”

 

부모님은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하지 말고. 네가 제일 중요해. 알지?”

 

“네..."

 

 


 

 

병실 불이 꺼진 뒤,

플리는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플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잘하면…

아무도 걱정 안 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역시 부족한 탓이겠지...?’

 

그 생각이

어딘가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머리 속에 끊임없이 맴돌았다.

 

 


 

 

병실 밖 복도,

은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연습실에서의 플리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계속 불안해하던 표정이...

 

“얘 지금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긴한데...”

은호는 낮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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