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잘 날 없는 너때문에

23 사랑의 짝대기

연습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 소리 하나로 오늘 연습이 끝났다는 게 분명해졌다.

 

예준은 기타를 내려놓고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줄을 풀지도, 케이스를 닫지도 않은 채

 

조금 전까지 있었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플리를 안고 있던 은호의 팔,

그 안에서 울던 플리의 어깨...

 

그리고,

 

그 장면을 보는 자신의 위치까지...

조금 가까이, 그렇지만 다가가기엔 이미 너무 멀어져보인 거리였다.

 

 

‘아….’

 

그때 느낀 감정은 질투도, 분노도 아니었다.

그냥, 확신에 가까웠다.

 

 


 

 

 

병실 앞 복도,

예준은 자동판매기 앞에 서서 캔커피 버튼을 누르고는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툭 -

 

캔이 떨어지는 소리가 괜히 크게 들렸다.

예준은 캔을 집어 들고 천천히 벽에 기대 섰다.

 

"하....."

 

차가운 금속 감촉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

 

플리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처음엔 그냥 열심히 하는 후배였다.

 

"김플리 님?"

"오.. 넵!!!"

"들어오세요~"

 

조금 특이하게 노래하는 감정선 좋은 보컬로 생각했다.

.

.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자꾸 시선이 갔다.

노래할 때 말고, 자신과 같이 있을 때..

 

연습 같이 할 때 말고, 같이 술 마실 때 말이다.

 

‘플리를....좋아하나…?’

 

그 질문을 예준은 여러 번 스스로에게 던졌다.

하지만 늘 결론은 같았다.

 

‘아직은 아니야.’

 

그 ‘아직’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ㅎ.... 내가 다 자초한 일이겠지'

 

 

 


 

 

 

그날 밤, 예준은 연습실로 다시 돌아갔다.

불 꺼진 공간에 은호만 남아 있었다.

은호는 드럼 앞에 앉아 아무것도 치지 않은 채 바닥을 보고 있었다.

 

“안 가?”

예준이 말했다.

 

 

은호는 고개를 들었다.

“…아.”

 

짧은 대답이었다.

예준은 옆에 앉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캔커피를 은호 쪽으로 던졌다.

“마셔.”

 

은호가 받았다.

“…….”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편했다.

 

“너.”

 

 

예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플리 좋아하지.”

 

은호는 놀라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캔을 천천히 돌렸다.

 

“…응.”

부정도, 변명도 없었다.

 

예준은 작게 웃었다.

“ㅎ... 그렇군”

 

그 말이 전부였다.

 

은호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알고 있었어.”

 

"뭘?"

 

 

"너도 플리 좋아하는 거"

 

"그래서 나도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거야."

 

"...."

 

"나는 플리...도 소중하지만

너도 소중해 남예준"

 

 

"ㅋㅋㅋ 뭐래"

 

"미안..."

 

예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ㅋㅋㅋㅋ 사과할 일은 아니지...”

 

잠시 정적 일다, 예준은 말을 이었다.

“난… 좀 늦은 것 같아.”

 

은호가 말없이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늦었다는 걸 이제 안 것 같아.”

 

예준은 캔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플리가 너 볼 때랑 ... 나 볼 때 눈이 다르더라.”

 

그 말에 은호의 손이 멈췄다.

 

“처음엔 그냥 내 착각이겠지 했는데...

.

.

아니더라.”

 

 

"남예ㅈ..."

 

"잘해봐, 니가 이겼다? ㅋㅋ"

 

"ㅇ.. 이게 무슨 내가냐?? 이 짜식이..."

 

"아무튼 !!! 너가 가지게 될 예정 (?) 은 맞잖냐"

 

"

 

"너가 잘 해줘, 도은호."

 

"나 아직 플리 애낀다? 요새 많이 힘들어보이던데,

너가 잘 챙겨줘."

 

"야..."

 

"그럼 간다?"

 

그렇게 예준은 방을 빠져나갔다.

 

 


 

 

 

그날 이후,

예준은 조금 달라졌다.

 

플리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괜히 머리 쓰다듬지도, 장난치지도 않았다.

플리도 그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예준 선배..!”

 

어느 날, 플리가 먼저 불렀다.

 

“어?”

 

“저… 혹시

제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예준은 잠시 플리를 봤다.

 

“아니.”

 

“그럼 왜…”

 

"뭐가?"

 

"그냥.. 요새 좀... 선배랑 멀어진 것 같아서..."

 

말을 잇지 못하는 플리를 보며

예준은 미소 지었다.

 

“ㅎ..”

 

그리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조금 바뀐 것 뿐이야.

뭐...

 

 

너, 나 좋아해?”

 

"ㄴ....네에???????"

 

"그런 거 아니면,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 마시죠, 아가씨~?

그럼 나도 못 참아~"

 

".... ////"

 

"ㅎ 은호랑 잘 해봐, 간다?"

 

플리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예준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나른한 오후 병실

플리는 침대에 앉아, 은호가 가져온 간식을 하나씩 먹고 있었다.

은호의 집중 케어로 플리는 컨디션도 빠르게 회복하고,

다음 공연 연습 일정도 3일 미루게 되었다.

 

은호가 열심히 쉬고, 그 뒤로 열심히 연습하자고

열심히 설득한 공이 컸다.

 

“이거, 맛있다아”

 

“그치 ㅎㅎ”

 

은호가 말했다.

플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

 

“응?”

 

“저… 요즘 좀 무서워요.”

 

"? 뭐..가?"

 

"너무 행복.... 해서....

.

.

갑자기 다시 행복해진 것 같아요."

 

"그럼 좋은 거 아닐까?"

 

"근데 또 불안해요"

 

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플리가 말을 이어가게 놔뒀다.

 

“노래하는 것도 ...... 다시 무대 서는 것도.”

 

플리는 고개를 숙였다.

“근데…

그거 말고 더 무서운 게 있어요.”

 

“뭔데?”

 

“다들 나 때문에 힘들까봐...”

은호는 플리 옆에 아주 가까이 앉았다.

그리고는 플리의 코를 콩 하고는 건들였다.

 

"또 그 소리!"

 

"아얏 !! 아 갑자기 뭐에요오...!!!"

 

 

“너 때문에 힘든 사람 아무도 없어.”

 

플리는 고개를 들었다.

“진짜요?”

 

“그래”

은호는 짧게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있다고 쳐도”

 

플리를 봤다.

“그건 네 탓 아니야.”

 

"... 위로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랑 회복할 때까지는 그런 생각 안 하기로 내기 하지 않았나?"

 

"ㅇ...앗...."

 

"소원 들어주기 내기였던 것 같은데~?"

 

"음......."

 

"안 들어줄거야?"

 

"뭔데요, 소원이...!!! 인심이다, 말해봐요"

 

"눈 감아봐"

 

"...??"

 

"소원인데,"

 

플리는 멀뚱멀뚱 은호만 바라보았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알 것 같아서.. 계속 은호를 쳐다보았다.

 

은호는 그런 플리가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다 천천히 손을 들어 플리의 눈을 가려주었다.

손바닥 너머로 은호의 체온이 전해졌다.

 

"........ 싫으면 말해"

 

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있었다.

은호는 아주 조심스럽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숨결이 닿을 만큼.

 

 

.

.

.

 

 

 

그 순간.

병실 문 앞에 서 있던 예준은 그 장면을 보았다.

눈을 감고 있던 플리, 그리고 너무 가까이 있던 은호...

 

 

예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 복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속으로 말했다.

‘이제는… 확실하네.’

 

예준은 멈추지 않고 걸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날 밤, 그들의 관계는 운명처럼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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