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은 비밀이니까

다시, 그곳에서

졸업식이 끝나고,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교복에 낙서를 남기고,

꽃을 들고,

사진을 찍고,

그렇게 각자의 끝을 정리했다.

 

나는

혼자 옥상으로 올라갔다.

 

한참 만에 문을 열었는데,

거기.

 

그 애가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교복 자켓은 벗어져 있었고,

바람은 그때처럼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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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너만 오냐?”

 

이한이 말했다.

 

나는 웃지 않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너.”

 

그 애는 걸터앉았다.

 

"우리, 여기서 많이도 앉았지."

 

"응."

 

"그땐…

다 말 못 했던 거,

많았는데."

 

나는 도시락 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 애도 옆에 앉았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공기가 다 말하고 있었다.

 

“너는…”

그 애가 조용히 말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누구 옆에 있을 때

편안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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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침묵.

 

그 다음엔

진짜 오랜만에 웃었다.

 

“그거,

너 지금도 그러고 있어.”

 

우린 사귀었는지도 모른다.

고백은 했지만

뭔가 명확한 걸 정한 적은 없었다.

 

그 애가 날 좋아한다고 했고,

나도 그렇다고 했고,

그 이후론 그냥

서로 옆에 있었다.

 

그래서 그게

사랑이었는지,

위로였는지,

아니면 그냥 같은 시절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근데,

그 애는 분명 내 옆에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옥상에서 내려가기 전,

그 애가 내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였다.

 

아무 말 없이,

나를 한 번 안아줬다.

 

그게 이한식 작별인사였고,

나는 그걸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

옥상엔 다시 가보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계란 반찬을 보면

그 애가 떠오른다.

 

아무 말 없이 젓가락 내밀던 얼굴.

조용히 앉아 있던 여름의 바람.

 

그리고 그 질문.

 

“여기, 너만 오냐?”

아니.

이젠 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