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이제이
내 표정은 전보다 한층 밝아졌다.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들에 이따금씩 눈을 반짝이기도 했다. 나는 이곳에 오고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마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보냈다. 윤기는 귀찮은 기색을 보이면서도 항상 옆에서 내 질문에 대꾸해 주었다. 마계는 내가 듣고 상상해온 것과는 사뭇 달랐다. 밤낮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어둠이 짙게 깔려 있지도 않았고, 척박하고 별 볼 일 없는 버려진 땅도 아니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적당한 햇살과 정원에 피어있는 처음 보는 꽃들, 주위를 날아다니다 손등 위에 살며시 앉는 새들까지 온통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또 밤이 되면 깊은 바다를 닮은 짙은 남색이 하늘을 물들이고, 그 틈으로 크고 작은 별들이 화려하게 반짝였다. 나는 잔디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내 옆을 지키던 윤기도 옆에 앉아 날 가만히 바라보았다.
"신기하다"
"......"
"천계는 온통 새하얬거든"
"재미없는 곳이지"
"이렇게 자유로운 곳은 처음이야"
"......"
"예쁘다"
"...그러네"
윤기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렸다. 순간 얕게 흩날리는 은발에 손을 뻗을 뻔했다.
"...너"
"응?"
"넌 이름이 뭐야"
"난... 이름이 없어"
아, 실수했나. 윤기는 이따금씩 이런 스스로가 답답했다. 꺼내드는 화제마다 묻어둔 상처를 들추기만 했다. 윤기는 조심스레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천족은 원래 어머니가 이름을 지어주는데, 나는 없었거든"
"......"
"이상하지?하늘에서 떨어졌나"
"분명 지어주었을 거야"
"그렇겠지?"
"응"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목적이 생겼네. 어머니도 찾자"
그녀가 웃었다.
"넌 정말 대단해"
"그런가"
"나한테 자꾸 이유를 만들어 줘"
"너도, 많이 이겨냈네"
"...덕분에"
계속 별들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이 나를 향했다.
"네가 지어줄래?"
"......"
"찾을 때까지"
그녀의 눈동자와 머리칼이 반짝였다. 고요한 어둠 아래에서 별빛들이 온통 그녀만을 비추었다. 윤기는 잠깐 넋을 잃었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한 단어를 내뱉었다. 내 시야를 가득 채우는 눈부신 은빛.
"...아리아나"
웃는 모습을 조금 더 보고 싶다.
"마음에 들어"
"......"
"무슨 의미야?"
"은"
은발. 그녀의 시선이 흩날리던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다들 칙칙하다던데"
"그 녀석들 금발이 더 이상해"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뭐야, 진짜.
"처음으로 생겼어, 이런 이름"
"......"
"내 처음은 다 너네"
"영광이야"
둘은 오래도록 눈을 맞추었다.
"넌 왜 나한테 잘해줘?"
"글쎄"
"마왕이면서 이렇게 착해도 돼?"
"편견이야 그거. 마족은 그냥 전투 종족일 뿐이라고"
"알겠어. 농담이야"
"나도 마왕같은 거 하기 싫었는데, 내가 제일 센 걸 어떡해"
"......"
말이나 못하면. 그녀는. 아니, 아리아나는 웃었다. 이제는 꽤나 자주 보이는 그녀의 미소가 기꺼웠다.
"나중에. 나중에 말이야"
"......"
"내가 갈 곳이 생기게 되어도"
"......"
"종종 찾아와도 될까?"
"원한다면"
"......"
"......"
"...계속 여기에 머무르고 싶다고 하면?"
"정들었어?고작 일주일 지났는데"
윤기는 대꾸하며 아리아나의 눈을 피했다. 선뜻 그러라고 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계속 머물기를 바라는 건가. 스스로조차 이 감정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다만 하나만은 분명했다. 이곳은 그녀가 있을 곳이 아니다.
"응. 그 일주일 동안 가장 행복했는걸"
"......"
"많이 그리울 것 같아"
나도. 윤기는 속으로 대답을 삼켰다. 나도. 언젠가 그날이 온다면, 너를.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