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씁쓸한
4_달콤하면서도 씁쓸한

훈승전결
2023.04.07조회수 14
"김민규, 밤 샜어?"
민규 옆으로 금발의 남자가 다가왔다. 민규 앞에 놓인 모니터를 쳐다보더니 피식 - 하고 웃고는 민규의 어깨를 주물렀다. 민규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다 제 다리 길이를 생각하지 못 하고 책상에 그대로 박아버렸다.
"나, 나오셨습니까 보스!"
아프겠다. 괜찮아? 근데... 민규의 인사에 보스라는 자가 크게 웃었다. 어느 시대의 인사법이냐며 아니지 어느 쪽에서는 그렇게 할지도 모르겠다며 은근슬쩍 승철의 조직을 비꼬았다. 민규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분위기에 맞장구를 쳤다.
"내가 널 모르는 것도 아니고 편하게 불러 민규야."
"그래도 명색이 보스시잖아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불러주면 되지, 우리끼리잖아."
"그럼 그렇게 할게 정한이 형."
무안해진 민규가 머리를 긁적이다 모니터 앞에 다시 앉았다. 정한은 뭘 그렇게 조사하나 싶었더니 승철이네구나 하면서 흥미를 보였다. 민규는 어차피 견제하고 있는 조직이니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었다며 제가 조사한 것들을 정한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한에게 더 중요한 건 이런 자료가 아닌 민규가 다시 조직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들어온 첫날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제 할 말만 하고 바로 떠나버린 민규 덕분에 말은 커녕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근데 김민규, 너 왜 다시 돌아왔어?"
"..."
"어제 그거 물어보려고 했더니만 도망치는 것처럼 가더라."
"다른 이유는 아니고..."
민규가 입을 마저 못 떼고 망설였다. 정한은 책상에 손을 짚으며 민규와 모니터를 번갈아 보는데 정한의 눈에 '전원우', 이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이름이 왜 저기서 뜰까.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전원우가 저기 소속이니까 그렇겠지. 정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원우가 승철이네에 있어서 그렇구나."
"정확히는 그 형을 말리고 싶어서."
"네가 말린다고 해서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
안다. 정한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민규는 정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는 못 막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제가 알던 원우는 상상 속의 인물이 되어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민규는 정한의 손을 잡으며 얘기했다. 어떻게든 저 형이랑 부딪힐 수 있는 일을 달라고. 정한은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는 위험하다며 손을 뿌리쳤지만 민규는 정한 앞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빌었고 결국 정한은 정보가 들어온다면 노력은 해본다며 자리를 떴다.
-
그 뒤로 민규의 시선은 멍하니 모니터를 향했다. 예전 조직 활동은 어땠는지 생각하면 그때는 조직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서 원우와 한 잔 하면서 웃어넘기곤 했다. 피곤해도 간단히 만든 안주를 원우에게 먹이는 것도 재밌었고 원우 특유의 그 개그도 그때는 웃어줄만 했었다. 그때는 그랬었던 것 같다.
하지만 웃을 수 없는 날이 늘어갔다. 그건 승철이 조직에 영향을 엄청 미칠 때였다. 원우 특유의 그 방식에 승철은 오래 전부터 흥미를 느꼈다. 당연히 그런 일을 할 때면 승철은 매번 원우를 불렀다. 한 번은 자신도 좀 써먹으라니까 넌 재미가 없어 민규야. 하며 원우에게 팔짱을 끼고 멋대로 데려갔었다.
그렇게 일을 치르고 돌아오면 원우가 입던 옷은 누구인지도 모를 혈흔에 축축해져 있었다. 그럼 민규는 다급하게 원우의 얼굴에 튄 혈흔을 지워주는데 원우는 그때마다 민규를 차갑게 대했다. 하필이면 또 같은 집에 살았기 때문에 붉어진 옷은 건물에서 태워버리고 옷을 대충 갈아입으면 같은 차에 올라타서 말 없이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도착해서 빛이 방을 훤히 비추면 원우의 그 차가운 표정이 더 적나라게 드러났다. 민규는 그 얼굴을 보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원우가 무서운 건 아니었고 예전처럼 같이 웃을 수 있는 날이 적어지는 것이 무서웠다. 오늘도 같이 못 마시겠구나. 오늘도 이대로 마무리하는구나. 그때 원우가 이렇게 말했다.
"조직 곧 있으면 해체한다더라."
해체? 그럼 조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건가? 해방감에 사로잡힐 것 같았지만 어째서인지 원우의 표정은 좋아보이지 않았다. 민규는 당연히 조직이 해체하면 이 생활에서 해방이 되는 건데 왜 좋아하지 않냐고 물었고 원우는 차가운 표정 그대로 대답했다.
"넌 아직 손이 피에 적셔진 적 없지?"
"..."
"아까 승철이 형님이랑 같이 갈 때 형님이 그러시더라."
지금 조직이 해체되면 자신의 조직을 하나 만들건데 그 조직에 원우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민규는 그 말에 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원우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승철이 왜 원우를 데려가려고 하는지. 승철은 그만큼 똑똑하고 영악한 사람이었다.
과거 원우가 조직으로 들어오기 전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데 그때 조직 보스가 원우의 방식을 보고 먼저 다가온 것이었다. 이대로 가면 잡힐 것이 뻔한데 제 손을 잡지 않겠냐며 하고 원우를 데리고 온 것이다.
그렇게 조직에 들어온 원우의 파트너는 승철이었고 원우에게 주어진 임무는 우연히. 아니 당연하게도 사람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파트너인 승철은 그때 원우가 일하는 걸 보고 원우에게 흥미가 생긴 것이다. 바로 그 방식을 보고.
그때부터 원우의 파트너. 아니 승철의 파트너는 원우로 고정이었다. 그러면서 승철은 원우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을 것이다. 가끔 후회할 정도로 승철에게 제 이야기를 좀 숨길 걸이라며 읊조리는 원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승철은 그걸로 원우의 약점을 잡았고 지금까지 이용하는 것이다.
-
이제 민규가 찾아야 될 것은 그들이 노리는 다음 타겟이었다. 귀찮은 일을 하지 않으려는 정한이 침묵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민규는 직접 발벗고 나섰다. 지금까지 원우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을 조사하고 살해 당한 위치를 찾아보며 다음 타겟과 장소를 유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로 단정 짓기에는 너무 많은 장소에 타겟 공통점이 고작해야 승철의 조직을 이용하는 고객이다. 광범위한 장소들과 1차원적인 공통점이 전부인 걸 제 눈으로 보고는 경찰도 유추하지 못하는 걸 제가 어떻게 유추하겠냐며 결국 민규는 컴퓨터 전원을 껐다. 결국 그 방법밖에 없는 건지 민규는 자리에 일어나서는 밖으로 나가며 전화를 걸었다.
"사적으로 보는 건 그때가 마지막이라며."
"사적으로 보는 거 아니야. 시간 돼?"
"...저녁에. 바쁘니까 끊어."
"지금 어딘데. 그것만 좀 알려줘."
...
민규의 말에 원우는 대답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위치를 알려주지 않을 건 알고 있었다. 그럼 전화를 왜 걸었냐고? 오늘도 일을 하는지 궁금했으니까. 그래야 원우를 마주칠 거니까. 민규는 곧바로 정한에게 전화 걸었다.
"보스. 지금 거기 움직입니다."
"결국 일을 저지르겠다는 거지?"
"몇 번이고 저지를 겁니다."
그 사람을 막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