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씁쓸한
5_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훈승전결
2023.04.09조회수 11
'지이잉 -'
차를 타고 이동하던 원우에게 전화가 울렸다. 승철은 편히 전화를 받으라며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원우는 눈치를 쓱 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민규의 전화였다. 다짜고짜 시간이 되냐는 민규의 말에 대답도 않고 끊어버렸다.
승철은 누구 전화냐며 관심을 가졌고 원우는 그냥 아는 동생이라고 둘러댔다. 승철이 원우의 반응에 웃음을 내뱉었다. 승철은 원우 말고는 관심 없다면서 너만큼 재미있는 사람은 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 없을 것 같으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그게 가장 걱정되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원우가 승철과 함께 있다는 건 옷을 적시러 간다는 소리와 같았다. 원우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지만 봄날에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실컷 들뜬 승철이 원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원우의 방식에 제 방식을 더하기 시작했다.
원우는 잭 나이프를 손에 쥘 때마다 생각했다. 이대로 그냥 승철의 목을 노리는 건 어떨까 하고. 하지만 그 마저도 악몽으로 찾아올 것 같아 매번 깨끗하게 닦아놓은 잭 나이프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칼을 들었으면 뭐든 썰기라도 해야 되는데 손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대로 목적지에 도착하면 제 손에 쥔 잭 나이프의 끝은 승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향할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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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도 또 다른 악몽이 저 자신을 괴롭히겠지. 원우는 망설임과 함께 문을 열어 차에서 내렸다. 승철은 당연하게 뒷좌석에서 창문을 통해 원우를 구경할 자세를 취했다.
원우는 늘 그랬던 것처럼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이 적당한 곳에 몸을 숨겼다. 타겟이 올 때까지 인기척을 모두 지워버렸다. 오히려 인기척은 저 승철이 타고 있는 차에서 났다. 이것도 하나의 방식이었다. 마음껏 존재를 펼치고 있는 차에 시선이 가면 인기척을 지워버린 원우가 뒤에서 기습을 한다. 그러면 타겟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오늘도 역시 그 사람의 시선은 승철이 타고 있는 차에 절로 옮겨졌다. 두려움에 시야가 좁아진 타겟은 원우가 다가오고 있음을 잭 나이프가 제 몸을 관통하고 나서야 눈치챘다.
원우 특유의 방식에 승철의 방식이 더해졌다. 한 번 찌르고 나면 난도질을 하던 원우가 이번엔 시간을 질질 끌었다. 덕분에 타겟은 도망갈 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원우는 금방 끝내고 싶었지만 승철이 지켜보고 있어 계속 질질 끌었다.
승철의 방식은 이랬다. 사람은 살 수 있는 가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위기를 모면한다고. 승철은 사람의 그 최후의 발버둥이 재밌다고 했었다. 그래서 승철은 이미 죽음이 결정난 타겟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준다고 했다. 그 뒤로 죽음을 직감한 타겟의 표정에는 괴로움과 절망 그리고 허망함이 드러났다.
원우는 첫 발을 제 방식으로 그 뒤는 승철의 방식으로 타겟을 서서히 절망에 빠뜨렸다. 원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타겟의 무력함이 잭 나이프를 통해 전달되는 것 같았다. 원우는 승철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고 울면서 나이프를 휘둘렀다.
승철은 어땠을까? 진작에 재미는 다 봤다는 것 같은 표정으로 원우를 보고 있었다. 그래 그 성격에 이 정도 버텼으면 오래 버틴 거지. 같은 느낌이었다. 승철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부하에게 원우를 데리고 오라했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원우가 겨우 차에 올랐다.
"고생했어. 오늘은 바로 집으로 보내줄게."
"...감사합니다."
"거기로 가지."
승철의 말이 끝나자 시동이 걸렸다. 차는 다시 도로를 따라 움직였다. 곳곳을 돌아다니다 원우는 집으로 도착했다. 승철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원우는 허리까지 숙이며 승철의 차가 저 멀리 떠날 때까지 허리를 펴지 않았다. 그리고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 허리를 펴고 집으로 들어섰다.
원우는 이 삶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죽고 싶어도 멋대로 죽지 못하는 삶을 가졌다. 어쩔 수 없었다. 원우는 왕의 명령으로 수많은 죄인을 묵살한 망나니였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무슨 명목과 죄목으로 목숨을 빼앗겨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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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었다. 당연히 집으로 민규가 찾아왔다. 이전과는 다르게 원우를 경계하는 민규 하지만 원우는 오늘 일로 너무나도 지쳤다. 적당히 얘기가 끝나면 보내야지 했지만 민규가 원우의 속을 긁었다.
"이번엔 누구야."
"...뭐?"
민규의 말이 짜증이 났다. 당연히 제가 사람을 죽였을 거라 단정지은 저 말이 원우의 마음을 망쳐놓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민규에게 실망을 했다.
"다시 조직에 들어가더니 내 뒷조사를 했어?'
"말해 어디서 누굴 죽였는데."
"김민규. 나 오늘 그럴 기분 아니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언제는 아닌 적 있어?"
조직 한 번 들어갔다고 그때의 민규가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이 녀석이 완전히 작정을 했구나. 하며 원우는 돌아섰다. 민규는 원우를 붙잡았다. 그의 손에 힘이 적잖게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원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마음을 굳게 먹은 민규가 원우를 쉽사리 놓아줄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결국 원우는 민규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 무미건조한 표정에 눈물이 흐르자 민규는 당황하며 손에 힘을 풀었다. 원우는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닦아냈다.
"...형?"
"이제야 속이 편해? 이렇게 내 속을 다 긁어놨어야 돼?"
"...하지만 형."
"그래 네가 날 막기 위해서 이러는 거 누가 몰라."
원우는 잭 나이프를 민규에게 건냈다. 민규는 당연히 잭 나이프를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원우가 억지로 민규의 손에 나이프를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민규의 시선을 피하면서 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제 이야기보다는 앞으로의 일이었다.
"난 그 잭 나이프의 마지막이 승철 형님이나 나에게 향했으면 했었어. 하지만 그럴 일은 앞으로도 내 인생에는 없을 거야. 형님이나 나 자신을 죽일 수 있을 만큼 난 강하지 않아.
"
"하지만 네 인생에는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민규야."
"형 그게 무슨 소리야."
원우는 잠깐 말을 뜸들였다. 건내준 잭 나이프와 민규의 눈을 번갈아 보다 이왕 결심한 거 너도 나도 결심한 것 같으니까 이제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원우의 시선은 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낮게 깔린 저음으로 원우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 악몽을 끝내줄 내 유일한 구원자라고 민규야."
"어?"
"너라면 괜찮을 것 같아. 네가 날 끝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