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투비 러버

본투비 러버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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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잇수 앞자리 바뀐 지 햇수로 이 년이 지났다. 고딩 삼 년을 공부에 올인한 여주는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수준 높은 대학 ㅡ그녀가 간절하게 바랐던ㅡ 에 수시라는 명목 하에 당당히 입학했다. 창창한 캠퍼스 로맨스, CC를 꿈꾸던 그녀였건만 부모님 지원 일절 없이 대학 등록금 모으랴 월세 내랴 돈에 발목 잡힌 여주는 매일을 알바에 붙잡혀 살았다. 지난 삼 년을 공부에 매진한 것에 모자라 이 년을 돈과 알바에 매진하는 여주. 로맨스의 로 자도, 리을 자도 꺼내보지 못한 채 그녀의 십대 후반과 이십 대 초반이 통으로 날아가는 듯 싶었다. 그랬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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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말고 한 번 해봐, 여주야."
"········."
"주 3회, 네 달만 걸면 삼 백."
"···········."
"네게 있어서 꽤나 이득인 부분 아니야?"






네 달에 삼 백을 건 주 3회 1:1 과외를 제안한 건 그녀의 일 년 위 대학 선배, 김석진이었다. 이는 너덜너덜한 여주의 지갑을 두둑히 챙겨줄 것이 확실했지만, 그것 만은 확실했지만, 한 가지 문제점은······






"이 학생 전 과외 선생님들이 얘를 죄다 포기했다고요?"
"······ 응."
"지금 이 학생을··· 저보고···"
"·········."
"가르치라는 거예요?"
"··· 여주 너는, 머리도 좋고 당장 돈이 필요한 것도 맞으니까,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삼 백이 냅다 굴러 들어올 일도 없는 거고."
"그건 그렇긴 하다만······."






석진 선배의 말이 틀린 건 아니였다. 현재 스물 두 살 제게 있어선 실질적으로 돈이 필요할 것이고,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주가 쉽사리 석진의 제안을 받아드리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시간이······ 아깝잖아요."
"······."
"네 달을 어떻게 바쳐요, 무슨 사고를 칠 지도 모르는 애한테."
"·········."
"네 달에 죽어라 뛰면··· 삼 백은 벌 수 있을 거예요. 안 그래도 올해 최저시급이 올라서······."
"여주, 저번에도 알바 하다가 과로로 쓰러진 적 있었잖아."
"그건요, 선배, "
"무리해서 하루에 알바 서너 개 뛰지 말고, 돈 두둑히 쟁여주는 알바 하나 해. 여주 너도 몸은 사려야지."
"······."
"피가 들끓고도 남을 이십 대는 맞지만···"
"·········."
"언제까지 건강 버리면서까지 알바 뛸 수는 없잖아?"
"그래도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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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고 오빠 많이 봐야지, 여주야."
"············."
"이이이이잉~"






진지한 분위기를 풀고자 석진이 과장된 애교를 섞어 여주의 어깨를 장난스레 쳐 보지만, 한 번 굳은 여주의 표정은 쉽사리 웃음꽃이 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 이렇게 반응해줄 줄 알았으면 애교는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석진이 짧은 탄식을 내쉬었다. 푸핫, 선배는 언제 봐도 영락없는 어린 애 같아요. 뭐어?! 선배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여주 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겠어요, 알겠어."
"이번만 봐준다. 과외 관련해서는 한 번 생각해 보고 연락 줘. 기다리고 있을게."
"네네! 들어가 보세요, 선배님!"






여주의 등을 두어 번 툭툭, 두드리곤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는 석진. 여주는 그의 뒤통수를 눈으로 쫓으며 다시 깊은 생각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네 달에 삼 백··· 삼 백··· 감히 생각해 본 적 없던 큰 돈을 속으로 작게 읊어본다. 제게는 큰 득일 것 같긴 하지만, 조오금은 위험할 것 같다. 다른 과외 쌤들이 포기한 학생? 내가 굳이 할 필요는 없지! 이게 여주의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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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차량 한 대가 점점 제게 다가온다. 그 반듯한 차량 안에서 내리는 건 붉은 옷의 한 여성. 그녀가 무언가를 제게 꾸짖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리는 커녕 귓구녕엔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이명 소리만 웅웅 울릴 뿐이었다. 흐릿해져가는 붉은 여인의 자취, 들릴 듯 말듯 점차 희미해져가는 이명 소리, 그리고······.


쿵-!


"저기요!"
"아, 아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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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너머로 보이는 갈색 염색모에 검은 볼캡을 쓰고 있는 남자가 눈썹을 구긴 채 저에게 윽박을 지른다. 멍청한 김여주, 결국 또 졸았다. 요즘 들어서 잠이 많이 온다. 피곤해서 그런가, 불규칙적으로 졸음이 찾아오는 것 같기도 하고. 고심 끝에 나는 후자를 택했다. 의자에 엉덩이만 붙여도 스르르 감기는 게 눈이고, 저절로 오는 게 잠이니까. 제 동그란 머리를 한 차례 긁적이며 여주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됐어, 이거나 계산해 줘요."






볼캡 염색모의 남성이 건넨 건 다름아닌 녹색 병 두 개. 여주는 녹색 병 두 개 중 한 개를 들고 수차례 남성과 녹색 병을 훑어본다. 이거 아무리 봐도··· 어른 티가 안 나는 것 같은데. 탁-! 녹색의 병을 카운터에 내려놓고 여주가 제 손바닥 하나를 펼쳐 남자에게 내민다. 뭐, 뭐요?! 당황한 남자의 말투를 조곤조곤 맞받아치는 여주.






"민증."
"네?"
"민증 보여주세요, 손님."
"제가 민증을 집에 두고 와서요."
"집이 어디에요?"
"요 앞이요. 가까워."
"가까우시담 다녀 오세요. 이 병 두 개는 제가 고이 모셔 둘게요."
"아······ 저 성인 맞다니까요. 거 참 더럽게 깐깐하시네 ㅋㅋ"






이 자식, 성격 나왔다! 보통 편의점 알바에서 민증이 없다는 손님의 경우엔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진짜로 민증을 두고 온 경우, 두 번째는 미자인 경우. 보통 전자의 경우는 덜렁대지만 않으면 지갑에 넣고 다니는 게 민증인지라 민증 없다고 우겨내는 손님은 대충 미자라고 넘겨짚으면 된다. 이렇게 넘겨짚다 보면 가끔가다 제 촉이 엇갈려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었는데, 보통은 넘겨 짚어도 백에 팔십은 미자가 맞더라고. 이게 이 년간 알바만 죽어라 뛴 여주에게서 베어나온 짬밥이다.




신경질이 난 듯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당당히 구매를 요구하는 남자가 베짱은 좋아 보여 여주는 애기 한 번 호되게 혼내 주자는 마인드 하나로 녹색 술 병 두 개를 제 등 뒤로 숨겨 버린다. 화들짝 놀라 두 동공이 커진 남자를 보면 그렇게 재미질 수가 없더라고.






"뭐, 뭐 하늣 짓이에요?"
"민증 보여주실 생각 없으심, 저도 팔 생각이 없거든요~"
"그렇게 뺏어간다고 뭐가 달라져요?"
"그렇다마다~"
"참 나."






김여주, 윈! 한숨을 한 번 내뱉고 카운터에서 멀어지는 그의 모습에 여주는 승리를 확신했다. 어린 놈의 새키가 벌써부터 술을 마실 생각이나 하고 있어~ 녹색 술 병 두 잔을 내려 놓으며 어깨를 툭툭 털던 그 때,


와르르-


"흐익···!"
"안 팔면 내가 팔게 만들지, 뭐."






아직 편의점을 나간 게 아니였는지 영롱한 녹색 빛의 병 세 개가 추가되었다. 그를 한 번 째려보고 병들을 카운터 구석으로 몰아 넣으면 병이 그새 더 늘어나기 마련. 카운터 위에 올려진 녹색 병은 두 개에서 다섯 개로 불어나고, 다섯 개는 어느새 일곱 개로, 일곱 개는 열 개로······.






"아이씨, 그만해. 미친 놈아!!!"
"큽."






한 쪽으로 치우면 배로 늘어나는 녹색 병들의 향연에 결국 여주가 먼저 백기를 들고야 만다. 안 판다고 더 가져오는 미친 상 또라이를 보았나! 기분이 좋은지 눈썹이 씰룩거리는 그와 눈이 마주치면 그렇게 어이가 없을 수가 없다. 그래, 미자한테 술을 판 것을 들키면 들켰지. 저 베짱 하나는··· 자빼시 ㅡ*자존심 빼면 시체ㅡ 인 나도 못 이기겠다. 삑~! 결국 경쾌한 기계음이 울리고, 못 이기겠다는 듯 술 두 병 든 검은 봉지를 볼캡 남성에게 건넨다. 제 두 눈에 이글이글 불꽃이 일고 있는 것은 꿈에도 모르는 채 건들거리며 편의점 밖을 나가는 그다. 안녕히 가시고, 제발! 다음엔 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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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리- 띠리리리- 카운터 옆 휴대폰 알림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PM. 10:30 교대] 저는 오후 알바라 열 시 반이 되면 야간 알바를 담당하고 있는 지민 씨와 교대를 하곤 한다. 하지만 교대 시간은 칼같이 지켰던 여주 못지않게 성실한 지민 씨가 오늘따라 더 늦는다. 다음 알바를 뛰러 가야하는 여주의 입장에선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계산대 옆 포스트잇에 적혀 있는 열 한자 숫자로 전화를 걸어 보지만 이어지는 건···




-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수신음 뿐이었다.





"아··· 이거 어떡하지."





이대로 가다간 제 딴의 알바 중 가장 시급이 두둑한 호프집 알바에 짤릴 기세이다. 아직 제대로 출근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기도 하고 경쟁률 십 대 일을 뚫고 간신히 돈줄 건 알바기도 해서 여주는 애꿏은 편의점 바닥만 쿵쿵, 밟는다. 호프집 알바 교대는 십 분도 남지 않은 절체절명의 순간, 그 때 편의점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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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잉~"
"·········?"





두 볼이 벌개진 채 알코올 냄새를 풍기는,





"아징두 안 가고 이써~?"





싸가지 바가지 볼캡 남자 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