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넥스트도어 단편

사랑의 감옥(중)-명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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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기가 찬 듯 픽 하고 내뱉은 한숨어린 웃음에 절로 어깨가 떨렸다.

 "정말로, 내가 질렸어?" 

재밌는 것을 본다는 듯 하는 눈빛이 금빛으로 번쩍였다. 

우드득.

단단한 게 우그러지는 소리에 고개를 내리자 아까 그의 손에 들려있던 총이 볼품없이 우그러져 있었다.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순식간에 내 입술을 씹듯이 삼킨 그에 숨이 딸려왔다. 

"푸하, 이게.. 무슨..! 읏...!"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쯤 그의 숨을 겨우겨우 삼켜가다 떨어진 입술에 겨우 숨을 몰아쉬며 그를 밀어냈지만 밀릴 턱이 없었다.

 "봐, 네 표정을.“

 순간 눈동자가 떨려왔다. 

체격 차이 때문에 아래에서 올려본 그의 표정은 희열에 가득 차있었다. 

가까이에서 보이는 그의 금빛 눈동자에는 내가 반사되어 보였다. 

기쁜 듯, 볼을 잔뜩 붉힌 내 얼굴이. 

”아니에요! 이건... 당신이 갑자기 입을 맞춰오니까.......!" 

망할. 표정 수습이 되질 않았다. 이래서 안됐다.

 "예쁜아, 이래서 너는 안 돼." 

몸부림치는 나를 간단히 제압한 그가 내 귀에 속삭였다. 

"아직도 이렇게나 날 사랑하잖아." 

입을 맞출 때 뭘 삼켰던 것 같기도 하고. 

타이밍 좋게 흐려지는 시야 속에 들어온 그의 표정은 광기에 잠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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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이 보였다.


머리가 무겁게 짓눌리고, 혀끝은 마른 모래처럼 까슬거렸다.


입술엔 아직도 그때의 뜨겁고 억지스러운 감각이 남아 있었다.


“깼네, 우리 예쁜아.”


고개를 돌리자, 그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다.


팔에는 붉은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지만, 표정은 지극히 여유로웠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웃어 보였다.


“…뭐였지, 방금….”


말이 나오자마자 목이 타 들어가는 듯 아팠다.


그가 물컵을 건네왔다.


“힘들었지? 네가 갑자기 쓰러져서….”


그의 금빛 눈동자가 나를 꿰뚫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 키스 속에서 뭔가를 삼켰다는 걸.


억지로 밀려 들어온 그것이 내 의식을 끊어버렸다는 걸.


“넌 나 없이는 못 살아.”


그는 물잔을 쥔 내 손 위에 손을 덮었다.


“자꾸 도망치려는 네가 안쓰러워서… 잠시 재운 것뿐이야.”


숨이 막히듯,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약까지 써가며….”


“그래도 깼잖아. 그리고 결국 내 곁이잖아.”


그의 목소리가 낮게, 그러나 흔들림 없이 가라앉았다.


“예쁜아, 이제 인정해. 너는 내 거야. 약으로 재우든, 이렇게 붙잡든… 결국 넌 내 곁에 있을 거야.”


차가운 방 안, 나는 다시 갇혀 있었다.


눈을 감아도, 그의 숨결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광기에 잠식된 눈빛을 본 순간, 숨이 막혔다.


내 입술 위로 흘러내린 그의 숨결이 뜨겁다 못해 잔인했다.


“아직도 이렇게 떨면서…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어?”


그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며 심장을 짓눌렀다.


나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사랑이 아니야… 두려운 거라고!”


그의 금빛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미친 듯한 웃음으로 덮여버렸다.


“두려움도 사랑이야, 예쁜아. 네가 날 떠날 수 없는 이유잖아.”


순간, 등 뒤의 문틈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불빛이 보였다.


그가 부하들을 내보내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단 한순간이라도 틈을 노려야 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의 발을 짓밟았다.


“큭…!”


그가 움찔한 순간, 숨 막히던 팔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복도를 내달렸다.


피가 흥건히 고여 있던 바닥.


시체의 손이 내 발목을 잡는 듯한 환영이 따라붙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발소리는 느긋했다.


마치 확신이라도 한 듯.


“도망쳐도 소용없어. 세상 어딜 가도 난 널 찾을 거야.”


나는 벽에 걸려 있던 작은 단검을 붙잡았다.


이미 총은 그가 망가뜨려버렸으니, 선택지는 이것뿐이었다.


그의 그림자가 점점 다가온다.


숨이 막혀오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은 차분했다.


‘이제 끝내야 해. 이 사람과의 지옥 같은 관계를.’


그가 다가오며 손을 뻗는 순간, 나는 단검을 치켜들었다.


“예쁜아, 그런 표정….”


그의 목소리가 닿기도 전에—


나는 그의 가슴팍 깊숙이 칼을 꽂았다.


“……!”


숨이 막히는 듯 그의 눈이 커졌다.


금빛이 희미하게 흔들리며 붉은 색에 잠식되어 갔다.


피가 내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말없이 내 어깨에 손을 얹더니, 쓰러지면서도 끝내 나를 바라봤다.


“끝까지… 이쁘네….”


그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치듯 잦아들었다.


나는 무너진 벽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피 묻은 손을 내려다봤다.


심장이 미친 듯 뛰었지만, 동시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랑했던 남자의 마지막 숨결이 내 손에 스며 있었다.


그를 떠난 게 아니라, 그를 끝내버려야만 했던 것.


그것이 내가 얻은 자유였다.


복도를 걸어나가는 동안, 뒤에서 울리던 총성의 메아리는 점점 멀어졌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내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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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에 계속>>>>>


어떤가요옹…? 단편은 처음이라…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