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숨 막히는 팔에서 벗어나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핏자국이 흥건한 복도를 달리며, 벽에 걸려 있던 단검을 손에 움켜쥐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눈앞이 아찔하게 흔들렸다.
“예쁜아아—.”
뒤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는 낮게, 그러나 기묘하게 들뜬 톤이었다.
사냥꾼이 먹잇감을 끝내 벼랑 끝에 몰아넣을 때 내는 목소리.
나는 벽에 기대 숨을 고르며 칼끝을 움켜쥔 손을 떨었다.
‘끝내야 해. 이 사람과의 악몽을.’
그가 느릿하게, 마치 모든 걸 꿰뚫어본 듯 걸어왔다.
금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환히 빛났다.
“도망은 잘했어. 하지만… 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숨을 몰아쉬며, 나는 단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가 손을 뻗는 순간—
나는 있는 힘껏, 그의 가슴팍을 향해 단검을 찔렀다.
“읏…!”
칼끝이 옷을 찢고, 살을 파고들며 뜨거운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피가 튀어 손등을 적셨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끝이야….’
하지만—
“…….”
그가 내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손아귀 힘에 칼이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그는 내 손에서 단검을 빼앗았다.
피가 흐르는데도, 그의 표정은 전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웃고 있었다.
광기에 젖은, 그러나 차갑게 제정신인 듯한 웃음.
“예쁜아….”
그의 목소리가 낮게, 피 섞인 숨결을 타고 흘러왔다.
“넌 정말… 내가 원했던 대로구나.”
“……뭐?”
내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피 흘리는 가슴을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네가 진심을 보여주네. 사랑이 아니라, 날 죽일 만큼의 증오. 그거야말로 가장 깊은 사랑이야.”
나는 절망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미쳤어… ! 난 널 끝내려고 한 거야.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그가 피로 얼룩진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 말, 계속 반복해. 그러면서도 넌 결국 나를 찔렀지.”
그는 바닥에 떨어진 반지를 주워 들어 내 손가락에 억지로 끼워 넣었다.
“이게 증거야. 네가 아무리 부정해도, 너와 난 끝날 수 없어.”
피비린내 속에서 반지가 손가락에 끼워지는 순간, 등골이 얼어붙었다.
내가 찔렀는데, 죽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더 강해졌다.
그의 금빛 눈동자가 나를 꿰뚫듯 내려다봤다.
“그러니까 이제, 예쁜아… 네가 도망칠 곳은 없어.”
피가 흥건히 번진 그의 옷자락에서 서늘한 냄새가 퍼져나왔다.
내 손끝엔 아직 단검을 찔러 넣었던 감각이 남아 있었지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죽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공포였고, 동시에 그 웃음이 모든 걸 무력하게 만들었다.
“예쁜아… 넌 내 심장을 겨눴어.”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 말은 곧, 네가 내 심장을 갖고 싶다는 뜻이지.”
“미쳤어… 미쳤어…!”
나는 떨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벽이 등을 막아 더는 갈 곳이 없었다.
그는 피 묻은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었다.
뜨겁고 끈적한 감촉에 온몸이 소름 돋았다.
“봐. 넌 아직도 내 손길을 피하지 못하잖아.”
“그건… 두려워서…!”
“두려움은 곧 사랑이야.”
그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하지 않으면… 날 이렇게까지 찌르지도 않았겠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을 위해 네 손을 더럽힐 이유는 없잖아.”
심장이 얼어붙는 듯 조여왔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손을 밀쳤지만, 거대한 벽 같은 체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검을 바닥에 던져버리며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예쁜아, 이제 다시는 날 떠난다고 하지 마.”
그의 눈동자는 금빛으로 타올랐다.
“네가 어디로 도망치든, 어떤 말을 내뱉든… 결국 넌 내 곁에 있을 거야.”
숨이 막히는 압박 속에서, 나는 마치 감옥에 갇힌 듯 무력감을 느꼈다.
손가락엔 다시 끼워진 반지가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빼내려 애써도, 그의 힘에 눌려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광기에 물든 눈빛이, 그러나 동시에 끔찍할 만큼 달콤했다.
“이제 인정해. 넌 평생 내 거야.”
입술이 막혀버린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식은땀이 등에 흘러내렸고, 온몸은 떨려왔다.
하지만 그의 품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는 나를 끌어안았다.
단단한 팔에 휘말려 몸이 갇히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도망칠 길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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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복도의 시체들은 치워졌다.
총성도, 단검도, 울부짖음도 사라졌다.
오직 남자의 광기 어린 미소와, 내 손가락에 채워진 반지만이 남았다.
그는 여전히 날 “예쁜아”라 불렀다.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내 예쁜아.”
그가 낮게 웃었다.
“네가 끝내 떠나지 못한다는 걸, 이제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나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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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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