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가득한 방송부

19 선을 넘은 마음

 

“왜 상혁이가 너 안고 있는데,

왜 가만히 있었냐고.”

 

하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촬영이 끝난 스튜디오 구석, 카메라가 꺼진 자리였지만 아직도 주변엔 스태프들이 오가고 있었다.

 

“…선배, 지금 이 얘기를 여기서...”

 

“여기서 말고 그럼 어디서 해.”


재현은 한 발 다가왔다.

하연의 재현 사이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내가 다 봤어.”

 

“….”

 

“알면서도 저러는 거.”

 

재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분노 그리고 불안이 섞인 눈이었다.

 

 

“너도 알잖아. 저거 연기 아닌 거.”

 

하연은 숨을 들이켰다.

“선배.”

 

“….”

 

 

“저도… 불편했어요.”

재현의 표정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근데, 여긴 촬영장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밀어내면 그게 더 이상해질 수도 있고, 괜히 더 큰 오해 생길 수도 있어ㅅ...”

 

“그래서 그냥 안겨 있었어?”

 

하연의 말이 끊겼다.

재현의 말이 날카로웠다.

 

“…그렇게 보였어요?”

 

“그럼, 아니야?”

 

하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선배는,

.

.

선배는 제 입장이 얼마나 애매한지 알아요?”

 

“….”

 

“연프 출연자에

선배는 제작진이었다가 갑자기 메기로 들어오고...

그 와중에 상혁 선배는...!”

 

“그 사람 얘기 하지 마.”

 

재현의 말에 하연이 멈칫했다.

“왜요?”

 

 

“…짜증 나.”

재현은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하연을 봤다.

 

“저 새끼 알면서 저러는 거 더.”

 

하연은 결국 말했다.

“상혁 선배,

선배가 제 남자친구인 거 알고 있어요.”

 

“…뭐?”

 

“썸아니고, 커플인거 알고 있다구요. 전에 휴식 시간에 말해줬어요.”

 

재현의 눈이 커졌다.

“…그래서?”

 

“그래서 저도 솔직하게 말했어요.

저도 선배 메기로 들어온 거 몰랐고, 상황이 너무 혼란스럽다고.”

 

재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럼 더 이해 안 되네.”

 

“뭐가요?”

 

“알면서 왜 더 들이댄데?”

 

“…. 그건!”

 

“그걸 보고 있는 내가, 얼마나 미친 것 같은지 알아?”

 

하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선배가 괜찮다 했잖아요.. 촬영이니까 이해 해준다ㄱ..”

 

재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괜찮다 한 적 없어.”

 

“네?”

 

“버텨보겠다고 했지.”

 

그 말에 하연의 눈이 흔들렸다.

“…그게 그 말 아닌가요?”

 

“아니, 괜찮은 척한 거지.”

 

“….”

하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결국 참아왔던 말을 꺼냈다.

 

 

“그럼 선배는요.”

 

“뭐?”

 

“왜 말도 안 하고 메기로 나와요?”

 

재현의 눈이 하연을 향했다.

“저한테 한 마디라도 했어요?”

 

“….”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촬영장에 나타나서, 출연자로 서 있으면...!”

 

하연의 목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카메라 앞에서 표정관리 하느라,

진짜,,..... 진짜 힘들었어요.”

 

재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 촬영하면서도 계속 선배 신경 쓰였고,

이상하게 보일까 봐 시선 엄청 신경 쓰고....

괜히 들킨 것처럼 심장도 계속 뛰고!!!”

 

하연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

“그런데 선배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미안.”

 

“아뇨, 그런 말 말고,"

 

“….”

 

“말도 안 하고 나타난 건 괜찮고, 제가 당황하는 건 별거 아닌 거죠?

선배 마음만 중요한 거죠, 그죠?"

 

재현의 표정이 굳었다.

“서하연.”

 

“아니요, 지금 이름 부르지 마요.”

 

“….”

 

“선배는 늘 그래요. 자기 마음 먼저 얘기하고

그 다음에 미안하다고 하고....”

 

“그럼 내가 뭘 했어야 해.”

재현도 목소리가 높아졌다.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야 해? 내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랑 저렇게....”

 

“그게 연프잖아요!!”

하연이 소리쳤다.

 

“선배도 알고 시작한 거잖아요! 그걸 알고도 괜찮다 했으면서....”

 

“그게 생각보다 안 괜찮았다고!”

둘의 말이 부딪혔다.

 

“그래서 이렇게 출연한 거에요? 제작진 권한 이용해서?”

 

“…그렇게 말하지 마.”

 

하연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저는요, 선배 믿고 여기 나온 거예요.”

 

“….”

 

 

그때였다.

 

“야야야 애들아”

 

도겸이 끼어들었다.

“안 되겠다.”

 

도겸은 재현의 팔을 잡아끌었다.

“여기 지금 구석이긴 해도, 촬영장이다?!?!? 카메라 없어도 조심해야된댔지!”

 

“형, 그게 아니ㄹ...”

 

“너부터 나와.”

도겸은 재현을 강제로 데려갔다.

 

“하연아, 너도 일단 정리하고 와~? ㅎㅎ”

 

재현은 끌려가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하연은 그 자리에 서서, 결국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한 방울, 바닥으로 떨어졌다.

 

 

 


 

 

 

 

촬영은 어찌저찌 마무리됐다.

장비가 정리되고,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서하연"

 

재현이었다.

“내가 데려다줄게.”

 

“…아니요.”

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혼자 가?”

 

“네, 따라오지마세요”

 

재현은 더 말하지 못했다.

 

하연은 가방을 메고

혼자 총총 걸어 나갔다.

 

 

 


 

 

 

 

집으로 가는 길,

하연은 우연히 신호등 앞에서 상혁을 마주쳤다.

 

 

“하연 씨?"

 

“…오!”

 

“집 가는 길이에요?”

 

“…네 ㅎㅎ”

 

“그럼, 제가 데려다줄까요?”

 

 

하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선배, 촬영 안에서는 괜찮은데요."

 

“…?”

 

“밖에서까지 그러는 건, 조금 불편해요.

… 죄송합니다”

“엏 !! 아니에요, 그냥 밤길 위험할까봐 ㅎㅎ”

 

“그래도 먼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하연은 고개를 숙이고 혼자 발걸음을 옮겼다.

 

 


 

 

 

그 시각,

 

“야.”

도겸이 말했다.

 

“이건 네 잘못이다? 알고 있지????”

 

 

“….”

 

“말 안 한 거, 그거 진짜 최악이야.

난 진짜 말한 줄~~~?????”

 

“…알아.”

 

“가서 사과해. 대가리 박아도 어려워 이건 ㅎ"

 

"... 흠"

 

 


 

 

 

재현은 말없이 하연의 집으로 갔다.

아파트 앞, 하연이 현관 쪽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하연아.”

 

“….”

 

하연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대로 문을 열려는 순간 재현이 하연의 팔을 잡았다.

 

“놔요!!”

 

재현은 말없이 하연을 공원 쪽으로 데려갔다.

 

“이거 놔요! 왜 항상 선배 마음대로에요?”

 

하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지금 화난 거 안 보여?!”

 

그 순간,

재현은 아무 말 없이 하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미안해.”

 

하연의 몸이 굳었다.

 

“진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재현은 얼굴을 비비듯 숨을 묻었다.

 

“내가 너무 겁났어... 그래서 멍청한 선택 한 거야.. 내가 잘못했어...”

 

하연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는.”

 

 

“….”

 

 

“이런 식으로 실망시키지 마요?”

하연은 조심스럽게 재현을 안았다.

 

"웅"

 

“저도 상혁 선배랑 말 잘 할게요.”

 

“….”

 

“선배 불안하게 안 할게요...”

재현의 팔이 그제야 하연을 꼭 끌어안았다.

 

“…고마워 흑...”

 

"ㅁ.. 뭐야, 울어요?"

 

 

"흐읍.. 아니거든.... 흐"

 

"어어?? ㅋㅋㅋㅋㅋ 이 남자 운다 울어,

동네 사람들 ~~ 여기 다 커서 여친한테 혼나서 우는 남자 있ㄷ.. 읍!!!"

 

순간 재현은 하연의 고성방가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맞췄다.

 

그렇게 그 둘은 한참이나 그 공원 벽에 서 있었다.

화해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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