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핑크 레이디
💗예쁘다고 그냥 넘기면 골로 가요💗
피식-
칵테일 바로 가는 길, 나의 입술 사이로 웃음이 트여 나왔다.
'이걸로 13번째 이별이네.'
아직 20대 중반. 결혼이 급한 나이는 아니였으나 나는 숨 가쁘게
연애를 했다.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and repeat. 다시
말하지만, 결혼이 급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랑이 미치도록
고픈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는 독하게 취해 사랑할 상대를 고르고
있었을 뿐이다. 아름답고, 깊고, 매혹적인 남자를.
딸랑-
열린 문 위에서 작은 종이 여주의 방문을 알렸다.
"어서오세요, 찾으시는 바텐더 있으세요?
"아뇨, 리스트 좀 볼게요."
이곳은 특별한 칵테일 가게였다. 프라이빗한 룸에서 진솔한 얘기를
나누든 몸의 대화를 나누든 바텐더와 함께 즐기는 공간이었다.
오늘은 친구랑 얘기하고 싶은 느낌인데...... 핑크 레이디, 예쁘네.
"바텐더 핑크 레이디 룸 갈게요."
"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밝은 샹들리에가 비추는 복도를 지나 안내받은 룸으로 들어갔다.

"여자?"
"그쪽이...... 핑크 레이디?"
핑크 레이디라서 정말 말그대로 여성 바텐더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남성 바텐더였다. 저쪽도 보통 여자가 여자 바텐더로 예상되는
'핑크 레이디'를 고르진 않아 주로 남자 고객들을 받았던 듯 들어온
손님이 여자라 의아해 보였다.
"의외네, 핑크 레이디를 고르는 여잔 오랜만이에요."
"저도 핑크 레이디라 여성 바텐더분일 줄 알고 고른건데,
예상 밖이에요."
이유를 묻는 듯이 바라보는 눈에 '술친구가 필요해서.'라고 답했다.
"술친구...... 우울한 일이라도 있어요?"
"헤어졌어요."

"그러면 바텐더가 기분 좋게 해주길 바래요? 아니면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건가."
기분 좋게 해준다는 건 신체적 접촉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술이 들어간 상태로 모르는 남자와의 육체적 접촉이란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오늘은 끌렸다. 오늘만큼은 술에
취하지 않을 것 같았다.
"둘다요. 그래도 마음이 전자에 조금 더 치우치긴 했어요."
"잘됐네, 나도 전자가 더 타입이라."
'핑크 레이디, 괜찮죠?' 바텐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칵케일을 만들어 오려 룸을 떠났다.
그가 나가자 잡음 하나 없이 전통적인 재즈가 부드럽게 귀로
흘러들어왔다. 우아한 호텔 스위트 룸이 연상되는 인테리어와
이색적인 칵테일 바의 조합은, 꽤나 아름답다고 생각이 들었다.
달칵, 문을 열고 바텐더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 들린 핑크색 음료가
영롱하게 반짝였다.
"자, 그럼, 얘기를 시작해볼까요?"
털썩- 내 옆자리에 앉으며 그가 말했다.
"오늘이 13번째 이별이었어요."

"꽤 연애를 많이 하셨네요."
"그런가. 그냥, 바쁘게 연애하다 보니 연애 횟수가 꽤 많아졌네요."
사그극, 칵테일 잔 위에 걸쳐진 설탕을 검지로 쓸며 말했다.
"나는 내가 취할 남자를 찾고 있는데, 어째 다들 만날수록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남자들이야. 깊고 매력적인 인간이 없어요, 인간이."
"예를 들자면?"
"이번에 헤어진 남자만 해도, 바람이에요. 술을 마시고 반쯤 뻗었을
때 또각...또각- 그렇게 하이힐 소리가 잘 들렸대요. 그때 눈을
떠보니 소진이었나? 하튼 그런 여자가 있어서, 뭐...... 그 뒤론
똑같죠. 빠져서 헤어지자고 말했어요, 걔가."
"그 남자는 큐빅에 빠져서 막상 자신의 옆에 있는 다이아를 놓쳤네요."
내가 설탕을 쓸던 검지를 가져다 입에 물었다.
할짝-
느릿하게 혀를 움직여 뜨거운 입 안의 열기를 내게 전달시켰다. 혀의
미세한 돌기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느릿하고 질척대는 움직임.
살짝씩 빨아당기기도 하는 것이 연상시키는 것은...... 키스.
설탕들이 뜨거운 그의 입안에 닿자마자 녹아내렸다.
"이렇게 단 여자인데, 멍청했어."
그가 아래로 내리깔았던 눈꺼풀을 들어올려 나와 눈을 맞췄다.
나를 응시하는 깊은 눈이 마치 나를 잡아끄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몽환에 가까운 곳으로.
쪽. 그가 깔끔하게 검지에 입을 맞추며 손가락과 혀의 만남을
마무리 지었다. 그가 그의 뜨거운 입괴 접촉한 물기어린 나의 검지를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처음 받는 젠틀한 배려가 괜히 어색해서 칵테일을 입에 다
털어넣었다.
"예쁘다고 그냥 넘기면 골로 가요. 그거, 보기보다 꽤 독하거든."
"뭐, 그보다, 매너 있네요. 여자 상대가 더 익숙할 것 같은데,
왜 남자 손님들만 모이게 바텐더명을 핑크 레이디로 지었어요?"
"룸 들어오자마자 핑크 레이디가 남자인 거 알고 바로 나가는 손님이
꽤 있거든요. 아름답게 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니까, 실망하는거죠.
내가 노리는게 그거에요. 선불이라 돈은 돈대로 받고 쉬는 거."
"그러다가 이렇게 멋진 여성분이 오시면,"

"공동 자금."
그가 고개를 꺾어 내게 입술을 맞췄다. 혀가 오갈 때마다 아까 그가
먹었던 설탕에서 오는 미세한 단맛이 느껴졌다.
질척하게 타액들이 얽히는 소리가 좁은 룸 안을 매웠다. 내 양팔은
그의 목에 감겨들었고, 그는 내 옆에 놓였던 스툴에서 일어나 내
허리를 감아왔다. 서로의 몸은 점점 밀착했고, 아까 마신
핑크 레이디에서 올라오는 취기에 어질했다. 겨우 한 잔인데,
색도 예쁜 것이 꽤나 독했다. 아찔해지는 정신에 눈을 꼭 감았다.
"왜, 취할 것 같애?"
낮게 잠긴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픽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예쁘다고 그냥 넘기면 큰일 난다니까."
"거봐, 벌써 이렇게 나한테 먹히고 있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