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 단편 모음 - 내가 보고 싶은 모먼트

[태형] Devil's K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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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키스




인간에겐 다양한 감정들이 존재한다.

그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대부분의 인간들에겐 다채로운

감정들이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 사이에

감도는 감정들은 분명 대부분이 긍정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산업화혁명을 기점으로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졌고, 무지개 같던 세상이 흑백으로 변해갔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이제,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아, 힘들어. 돈이 모자라.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해. 일자리가 없어.




이 같은 것들은 결국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냈다.











"죽고 싶다."




한 소녀가 내뱉은 말이었다. 겨우 스물이 된 그녀에겐

남편이 될 사람이라며 생판 처음 보는 늙은이가 들이밀어졌다.

당시만 해도 스물은 결혼이 이른 나이가 아니었으니, 그녀의

가족들은 나름 배려를 했다고 말했다. 열여덟이 되자마자

결혼시킨 것도 아니고, 먹이고 재워줬으면 이정도는 당연하지

않겠냐 묻는 그들에게 소녀는 끔찍한 표정을 지었고, 그날

새벽 그녀는 도망나왔다.




길거리는 차가웠다. 아무도 그녀를 향해 동정과 위로 섞인

손을 내밀지 않았다. 길거리에선 모두가 그녀처럼, 다수는

그녀보다 더 비참한 상황이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수녀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녀원 생활도 쉽지 않았다. 수녀로서 행해야 할 일정들,

규칙, 언행, 그리고 모든 것이 그녀를 압박했다.




소녀는 애초에 자유를 찾아 떠났기에 자유를 억압 받는 이곳은

그녀의 동기를 죽이는 곳이었다.




집은 결혼을 압박했고, 길거리는 살벌하리만치 냉정했고,

수녀원은 새장이 되어 그녀를 구속했다.




어디에도 그녀가 속할 곳은 없었다.




"죽고 싶다."




차라리 죽으면 이런 생활도 끝일텐데.




"죽여줘?"




분명 혼자 있던 방인데 뒤에서 들리는 남자 목소리에 그녀가

휙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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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며."




그의 등 뒤에는 새카만 깃털이 빼곡한 커다란 날개들이

있었다. 악마였다.




"하...하늘에 계신 아버지 부디 저를,"




분명 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죽음이 가까워지니

생을 향해 발버둥 치게 되었다.

그녀는 목에 걸려있는 나무 십자가를 바들바들 떨리는 손에

꼭 쥐고 눈을 감으며 그가 사라지길 기도했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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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신 안 믿지. 신성력이 안 담기는데."




맙소사. 그녀가 믿는 건 그녀 자신뿐이었기에

실제로 그녀는 신을 믿지 않았다. 수녀원에서 머물기 위해

믿는 척 했을 뿐. 악마가 이를 알아채자, 그녀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터벅... 터벅... 터벅...




"차라리 눈앞에 있는 내게 매달리지 그래."




풀썩-

뒷걸음질치다 침대가 다리에 걸려 넘어졌다. 새햐얀 매트리스에서

올려다보는 검은 악마는 실로 거룩했다. 뒤에선 달빛이 그의

후광인마냥 비쳐졌고,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숨이 턱턱 막히게

했다. 그의 말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신보다는 그가 더

대단하고 튼튼한 동앗줄 같아 보였다.




누운 그녀의 몸 위로 악마가 겹쳐졌다.




쿵쾅쿵쾅 심장이 요란하게도 뛰어댔다.

악마가 손을 뻗어 검지로 심장부근을 약하게 긁었다.




"심장, 엄청 빨리 뛰네."




낮은 울림을 품은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퍼졌다.

순식간에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키스해."




"키스하면 난 어떻게 되는거죠...?"




"천국 좋아하지, 우리 수녀님. 천국 보여줄게."




사실 그녀가 묻긴 했지만 그의 대답은 별로 중요치 않았던 것 같다.

그의 대답이 지옥을 보여줄게였어도 그녀는 분명 이 미모에

홀려 개의치 않고 키스를 날렸을 것이다.




소녀의 첫 키스는 악마가 되었다.

인간보다 체온이 높은 악마의 입안을 데일만치 뜨거웠고,

감겨오는 입술과 혀는 중독적이었다.




그의 혀는 그녀의 입안을 유유히 휘젓고다녔다.

그녀의 고른 치열을 훑었고, 그녀의 혀뿌리에 닿아 얽혀왔다.

그녀의 단 숨이 서로의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그녀의 정신은 몽롱해져갔다. 키스의 주도권은 빼앗긴지 오래였고,

의식이 흐릿해졌다. 분명히 그녀의 몸에서는 힘이 빠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악마는 끝까지 입술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끝내 소녀는 의식을 잃었다.




소녀은 의식을 잃기 직전, 분명히 그가 말했던 천국을 봤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 일생에 가장 황홀한 순간이 선사한

감정의 도가니는 그녀에게 천국이었다.




키스를 끝낸 악마가 상체를 일으켜 그녀의 멈춘 심장 위로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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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었습니다."




악마는 또다시 죽고 싶어하는 사람을 찾아 유유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