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날씨...
지금 이곳은 카페 안이다. 카페 안에는 사장님과 알바생 그리고 나와 내 남자친구인 윤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또한 카페 안은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윤기가 먼저 만나자고 한 것은 오랜만이기에 들뜬 마음으로 예쁘게 꾸미고 나왔지만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와 윤기의 표정, 계속해서핸드폰만 만지고 핸드폰에고정된 시선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 딱 좋았다. 계속해서 침묵이 흐를 때 그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윤기였다.
“헤어지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입만 뻥긋 거릴 뿐이었다.
“헤어지자고.”
다시 한번 헤어지자고 말하는 윤기에 ‘왜... 왜 그러는데...?’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너 질렸어. 그리고 너랑 만나면서 바람도 피고 있었어.”
윤기의 말을 듣고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만 같았고 이유를 물어보면 안 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후회해봤자 이미 지난 일이었다.
“왜 그렇게 당당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시 잘 한다고 말해야 되는거 아니야?”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진정시키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윤기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뻔뻔하게 말하는 윤기에 말문이 턱 막혔다.
“거짓말... 이지...?”
겨우 꺼낸 말이 저런 말이라니... 한편으로는 거짓말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서프라이즈 라건가... 윤기가 마지막에 내가 집에 가려고 할때 서프라이즈 라고 말하며 케이크에 초를 붙여 주기를.. 윤기가 내 생일인 것을 알고 그랬으면.. 그럼 나는 아기 처럼 울며 윤기의 따듯한 품에 안겨 울며 밉다고.. 너무너무 밉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럼 윤기는 천천히 내 등을 토닥이며 미안하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뭐 이정도 까지는 예상했어.”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듯 말하면서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는 듯 했다.
“곳 있으면 여친이 들어올거야.”
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여친이라고 말하는 윤기에 가슴이 찢어지듯, 구겨지듯, 못을 밖는 듯 아파왔다.
윤기의 말이 끝나고 몇초 뒤에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한 여자였고 윤기는 그 여자를 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윤기의 그 웃음은.. 나를 보며 예쁘게 웃어주었던 그 웃음이었다.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반쯤 미쳐있었고 간신히 정신을 잡고 있는 거였다.
“오빠~~!!”
그 여자는 윤기를 오빠라고 부르며 ‘또각또각’ 구도 소리를 내며 걸어와 비어있는 자리가 있음에도 윤기의 다리에 앉았다. 그럼 윤기는 익숙하다는 듯 그 여자를 뒤에서 앉았다.
그래.. 그 여자는 나보다 이뻤다. 아니 이쁘다..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예쁘다. 그들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고 완벽했다. 이 둘 사이에 내가 있으면 안될 것 같았다.
“저기요.”
윤기의 다리에 앉아있는 여자가 나를 불렀다.
“당신이 저희 오빠 졸졸 쫓아다니고 문자 보내고 그런다면서요?”
아.. 윤기가 나에대해 저 여자한테 저렇게 말했나 보다.
“죄송하지만 저희 오빠는 이미 임자가 있어서요. 좀 꺼져 주실래요?”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살면서 남친이 바람난 여자한테 저런 말을 들어본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거다.
“들었지? 우리 데이트 하게 좀 꺼져 주면 좋겠는데.”
윤기한테까지... 정말... 사람 미치는게 이렇게 쉽다는 것을 오늘 처음 깨달았다.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덜덜 떨리는 손을 마음속으로 진정시키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내 물건들을 챙겨 가방에 쑤셔 넣었다. 내가 아무리 괜찮은 척 해봤자 저 둘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괜찮은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오빠야~~”
“왜~?”
난 저 둘을 신경 쓰고 있는데.. 아니 신경이 쓰이는데 저 둘은 아닌가 보다. 저 둘이 알콩달콩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을 들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 울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저 둘 앞에서는 말이다.
가방을 꽉 쥐며 눈물을 참고 카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 했다. 창피함과 뒤에서 나를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 헤어졌다는 슬픔.. 화남... 여러가지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툭... 투둑... 촤아아아....’
카페 밖으로 나오자 울듯 말듯 사람들과 밀당을 하던 구름은 나를 위로해 주는듯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상처가 난 내 심장은 미친듯이 쿵쾅쿵쾅 뛰며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로인해 상처는 조금씩 아물다 다시 ‘헤어짐’이라는 칼에 배어 더 큰 상처를 만들어 나를 더욱더 아프게 만들었다. 내 눈물은 비와같이 멈출 줄을 몰랐다.
‘또각또각...’
구두를 신고 온 탓에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윤기와 바람난 여자를 떠올리게 했다.
.
.
.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탓에 비를 쫄딱 맞은 채로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비를 맞지 않았다. 고개를 뒤로 돌려 누군지 확인하려고 했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윤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윤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자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한 남자가 우산을 나에게 씌여주었던 것이다.
“저.. 그... 괜찮으세요..? 비를 너무 많이 맞으신 것 같은데...”
이 남자는 내가 내뱉은 탄식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뭐라고 말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나온 말은..
“아니요..ㅎ”
였다.
“어..음...어...”
이 남자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챙겨주셔서 감사한데... 신경 안쓰셔도 되요.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아프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아픈데 정이 들어 버렸다가 또 뒤통수를 맞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만 같았으니까..
“저기..!”
이 남자가 나의 손목을 아프지 않게 잡고서는 자신을 바라보게 잡아 당겼다. 이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두운 밤 비가 내리는 날씨에서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죄송하지만... 전화번호....”
비 때문인가...? 이 남자는 내가 우는 것을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다가와 우산을 씌여줬다.
“저는 전정국이라고 해요. 그... 혹시 내일 아프시면 저한테 연학 주세요...!”
전정국이라는 남자는 나에게 명함과 우산을 내 손에 쥐어준 채 한 손을 머리위에 올리고 다른 한 손은 편의점 봉투를 들고는 미친듯이 빗속을 뛰어갔다.
“죄송하지만.. 오늘 만큼은 비를 맞고 싶네요.”
라고 혼잣말을 한 뒤 주변을 둘러보다 비를 맞고있은 고양이에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줬다. 명함도 같이 버릴까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성의를 봐서 주머니에 꾸겨 넣었다.
‘촤아아아아...’
비가 방금 전보다 더 많이 오기 시작했고 비가 많이 오자 내 눈물도 더 많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천천히 집까지 걸어갔다.
***
마무리가 어색하지만 이정도면 만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