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고 로맨스

1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었을 뿐인데

방탄고등학교.

전국에 몇 개 없는 ‘초특급 사립고’.

학생들 이름 앞에 ‘그룹명’ 하나쯤은 붙어 있는 곳.

 

 

"화양그룹 김태형."

"연화홀딩스 전정국."

"백조전자 김석진."

 

뭐 이런 식.

 

그리고…

"무소속 김여주."

 

"하하, 야. 쟤는 어디 그룹 소속이야?"

"쟤, 청소 용역 딸이라던데?"

"헐, 진짜? 여기서도 알바 뛰냐?"

 

여주의 귀에 안 들어오는 척 했지만, 잘 들렸다.

아니, 이젠 그냥 백색소음 수준이었다.

 

📌 "아, 오늘도 산뜻한 개무시 당하면서 하루 시작하네요~"

 

그래도 참을 수 있다.

졸업만 하면 돼.

장학금 받고, 성적 유지하고, 조용히 3년 버티면 인생 역전.

가족들 생각하면 울면서도 땅을 파서라도 다닐 수 있었다.

문제는... 같은 반.

 

정확히 말해, 이상한 놈들이 같은 반.

 

“야. 네가 김여주냐?”

 

 

첫 번째. 김태형.

눈꼬리 올라간 고양이상.

목소리 낮고, 말투 싸가지 없음.

 

여주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네.”

태형은 입꼬리를 비죽 올리며 말했다.

“음. 예상보다 덜 초라하네.”

“…네?”

“아니야. 그냥. 가난하단 얘기 들었는데. 생긴 건 멀쩡하네.”

뭐지, 이 패배감 가득한 칭찬은?

 

“야, 태형. 그만 좀 해.”

 

 

두 번째. 전정국.

운동장 쪽에서 정국이 뛰어 들어왔다.

트레이닝복, 축구공 들고, 땀에 젖은 머리.

태형보다 좀 더 반항적인 분위기. 눈빛은 짙고, 행동은 거침.

 

“니가 왜 나서냐. 관심 있냐?”

“어. 관심 있다. 근데 그건 니 말투한테 관심 있는 거.”

“하, 웃기시네.”

둘이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잠깐, 조용.”

교실 뒷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세 번째. 김석진.

단정한 와이셔츠, 안경, 곧게 뻗은 자세.

교내 방송부 부장. 공부 1등. 그리고 백조그룹 장남.

 

석진은 여주를 보더니, 아주 짧게 말했다.

“…전학생. 인사 안 해?”

여주는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숙였다.

“…김여주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교실은 조용했다.

누가 박수라도 쳤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정적+심드렁.

 

그때, 담임쌤이 들어왔다.

"다들 조용! 이제 조 편성 발표한다."

 

조 편성?

여주는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담임이 종이를 들고 말했다.

“1조, 김태형, 전정국, 김석진… 그리고 김여주.”

 

…예?

 

“아니, 뭐야. 미친 3대장 + 신입녀?”

“조 추첨 돌았네.”

“저 여주 애, 운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여주는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입학 첫날인데 벌써 뇌에 알람이 울린다.

 

📌 "이 학교… 진짜 이상하다."

 

 

 

점심시간, 운동장 뒤.

팀플 회의하자며 세 남자가 여주를 호출했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회의가 아니라 면접이다?

 

“취미가 뭐야?” 태형이 물었다.

“…독서요.”

“좋아하는 작가는?”

“요즘은… 파울로 코엘료요.”

“…음. 의외네.”

정국이 말없이 눈을 흘기더니 턱을 괴었다.

“…그냥 묻는 건데, 돈 받고 들어온 거 맞지?”

“…네?”

“특례입학. 걍 궁금해서.”

 

여주의 손끝이 움찔했다.

말은 하고 있지만, 눈빛은 시험하듯 째려보고 있었다.

 

그때, 석진이 정국 팔을 툭 쳤다.

“야.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마.”

“쓸데없긴. 진실인데?”

“진실이라도, 예의는 지켜야지.”

 

여주는 그 자리에 앉아 숨을 삼켰다.

여기선 뭐 하나 말 잘못하면 바로 도마 위에 올라가는 분위기다.

 

📌 이 학교, 적응력 + 스킬 + 철면피력 없으면 생존 못 함.

 

 

“야, 김여주.”

태형이 불렀다.

 

“…네.”

“너, 우리 셋 중 누가 제일 싫어?”

“…네?”

“그냥. 궁금해서.”

정국은 피식 웃었고, 석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주는 대답 대신 조용히 일어섰다.

“…죄송한데요. 저, 진짜 조용히 살고 싶거든요?”

“응?”

“장학금 유지하려면 성적도, 출결도, 평판도 다 좋아야 돼요. 그러니까…”

그녀는 가방을 들었다.

“세 분끼리 싸우시든, 연애를 하시든, 알아서 하시고요. 저는 그냥 조용히 팀플만 잘 하고 싶어요. 이상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남자 셋은 그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봤다.

 

태형: “…얘, 재밌네.”

정국: “입학 취소 안 되냐, 지금이라도?”

석진: “…김여주. 기억해둘게.”

 

📌 그리고, 그날부터였다.

김여주라는 이름이, 방탄고 최고 권력자들 사이에서

공식 금지어가 되는 동시에,

공공의 관심사가 되기 시작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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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