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요?”
“응, 네 명. 김태형, 전정국, 김석진… 그리고 김여주.”
그 순간, 김여주의 뇌에서 싸이렌이 울렸다.
방탄고 2반.
금요일 오후.
전교생이 혀를 내두르는 ‘지옥의 조별 과제’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인가.’ 주제는 자유롭게 정해도 되고, 형식도 마음대로 해.”
담임은 교탁에서 태연하게 말했다.
“단, 이틀 안에 완성해서 발표. 아, 그리구 발표는 ‘전원 참여’ 조건이야.”
여주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전원 참여’라…
이 조에서 전원이란 단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선생님, 순수하시네.
[1교시 종료 직후 – 조별과제 조 첫 회의 / 장소: 2반 교실 뒤편 창가 쪽]
석진은 노트북을 펴고 있었다.
정국은 이어폰을 한 쪽만 끼운 채 축구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태형은 창문 앞에 서서 귀찮은 얼굴로 햇빛을 피하고 있었다.
여주는... 숨을 쉬고 있었다.
그거면 됐다. 지금은 일단 생존이 우선이었다.
“빨리 역할부터 나누자.”
석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간 없다. 주제 정하고, 자료조사하고, 정리하고, 발표까지. 지금부터 나눠야 끝내.”
정국이 의자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오케이. 난 PPT 안 해.”
태형: “나도 안 해. 발표는 내가 할게.”
정국: “왜 니가?”
태형: “그럼 네가 해?”
정국: “아니, 그냥 궁금해서. 되게 나서네?”
싸늘한 기류가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
여주는 노트를 펼치며 말했다.
“…저는 그럼 뭐 하면 될까요?”
“음.”
태형이 여주를 한 번 훑더니 말했다.
“리서치? 자료 조사?”
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 잘하게 생김. 부지런해 보이잖아.”
석진도 말을 보탰다.
“그럼 너는 전체 자료 정리도 맡아. 수고 좀 해줘.”
순식간에 ‘조의 허리’로 등극한 여주.
아니, 정확히는 ‘서브+메인+전체 총괄’.
“…그럼 주제는요?”
“내가 정하지 뭐.”
석진이 차분하게 말했다.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 속의 역할’. 깊이감 있고, 교수님들이 좋아할 스타일.”
정국: “뻔하긴 한데 무난하네.”
태형: “오케이, 발표는 그 주제로 내가 한다.”
여주는 조용히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게 지금 조별 과제예요?”
“응? 그치.”
“…아니죠. 지금 보니까, 저 빼고 셋이서 방금 놀라운 협업 하셨는데요?”
정국이 눈썹을 들었다.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래요?”
여주는 숨을 내쉬고, 다시 말했다.
“자료는 제가, 정리도 제가, 주제는 회장님이, 발표는 모델님이.”
“그리고 정국 씨는… 그게 뭐죠, 비평?”
정국이 헛웃음을 지었다.
“야, 말 진짜 독하게 한다.”
“아뇨, 진짜 궁금해서요.”
“전 그냥, 조용히 살고 싶었거든요.”
“근데 지금 이 조 조합은요—”
여주는 책상 위에 펜을 탁 내려놨다.
말투는 차분한데, 말의 온도는 점점 낮아졌다.
“그쪽 셋 다 자기 말만 하잖아요.”
“자기 입으로 발표한다고 하고, 주제 정하고, 일 떠넘기고—”
“그리고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잖아요. 뭐 하고 싶은지.”
석진이 입술을 다물었고,
정국은 눈을 피했다.
태형은 팔짱을 끼고 여주를 바라봤다.
“셋 중 누가 제일 싫냐고요?”
여주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전부요.”
그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
공기가 뚝 떨어졌다.
정국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 정도야?”
“그 정도요?”
여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정국 씨, 저한테 ‘특례입학’이라고 하셨죠?”
정국의 얼굴이 굳었다.
태형이 고개를 돌렸다.
“…너, 그랬냐?”
정국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 난 나갈게. 회의 끝났지?”
석진이 그를 막지 않았다.
태형도 웃지 않았다.
여주는 조용히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냥 팀플 하자는 말이었어요.”
“…근데 여긴, 팀도 없고, 플레이도 없네요.”
[저녁 – 방탄고 도서관 옥상]
석진은 노트북을 닫고, 여주의 학생기록부를 다시 읽고 있었다.
📌 전교권 성적
📌 상담기록 없음
📌 문제 행동 없음
📌 과거 전학 기록 없음
📌 학부모 면담 기록 없음
“너무 깔끔하잖아.”
“…그게 더 수상하지.”
[운동장 – 정국 혼자 드리블 중]
정국은 계속해서 축구공을 차고 있었다.
이어폰 한쪽으로는 음악이 흘렀고,
다른 한쪽으로는 여주의 말이 계속 재생됐다.
"저요, 그냥 조용히 졸업하고 싶었어요."
"근데 여기선…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기숙사 복도 – 태형 방 안]
태형은 거울 앞에 앉아 입술을 깨물었다.
정국이 뭐라고 했고, 여주는 뭐라고 대꾸했고,
그 전부가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생각보다 똑부러지네, 그 애.”
“…그리고 이상하게, 거슬리네.”
[그리고, 누군가의 핸드폰 화면]
김여주가 정색하며 말하는 영상.
“전부요. 셋 다 싫어요.”
그 영상이 방탄고 커뮤니티 계정에 업로드되고 있었다.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업로드'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이걸로 끝이야.”
다음 화의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