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야!

낙하

W. 말랑이래요

세 시간 전.

.

.

"작가님 이래도 되는 거 맞아요? 연준이 아직 미성년자인데"

"에이, 뭐 어때요-! 연준 씨 한 잔 더 받아요. 원래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야"

어른이란 사람이 참 잘 하는 짓이다.. 소희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 하게 혀를 찼다. 옆에 앉아있는 연준이 안절부절 못 하며 손사레를 치다 결국 억지로 술을 받아 마셨다.

한참 분위기가 달아 올랐을 쯤 연준이 바람 좀 쐐고 오겠다며 자리를 나섰다. ..뭐야 담배라도 피는 거야? 아주 그냥 꼴통이네 꼴통-

연준을 자주 귀여워 하던 소희가 연준이는 자기가 챙기겠다며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러자 스탭들의 눈빛이 달라지며 호응을 했다. 오- 둘이 뭐야? 곧 사귀는 거야?

"그런 거 아니에요-"

아직은.. 작게 뒷말을 중얼 거리자 더욱 들떠서 신나게 떠드는 스탭들이였다. 그럴 줄 알았다느니 잘 어울린다느니 실컷 늘어놓는 소리에 살짝 웃은 소희가 밖으로 나갔다.

한껏 폼 잡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연준이는 예상과는 다르게 벽을 붙잡고 비틀 거린 채 양 볼을 챱챱! 치고 있었다.

"풉.. 애기 거기서 뭐 해?"

"..어? 누나도 답답해서 나왔어요?"

그 말에 담배를 꺼내려다 다시 집어넣은 소희가 가까이 다가와 연준이의 볼을 어루 만졌다. 아프겠다, 왜 때리고 그래. 연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소희는 오기가 생겼다. 도대체 왜 빼는거야?

"하아- 죄송해요.. 취하면.. 안되는데 자꾸 작가님들이-"

"우리 사귈래?"

"..네?"

"연애 하자ㄱ,"

"저 여자친구 있어요"

..아, 거기까진 생각 못 했다. 순간 머리가 띵 해진 소희가 바람 빠지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어색해진 분위기에 연준이 머쓱한 듯 뒷 머리를 긁적이다 입을 뗐다.

"제가 지금 많이 취해서..인사 드리고 집에 가야 될 것 같아요"

"..어, 그래"

"누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

연준이 다시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속이 뒤틀린 소희가 입술을 잘근 잘근 씹으며 생각을 하다 급하게 뒤를 돌아 연준이를 불러 세웠다.

"연준아 잠깐만!"

"네?"

"사실은 오늘 나 마지막 촬영이거든. 그래서 감독님들도 어렵게 시간 빼서 이렇게 모인건데.. 조금만 더 놀다 가면 안 돼?"

"..아, 근데 제가.. 집,"

"30분만 더 놀다 가자, 응?"

말문이 막힌 연준이 잠시 핸드폰을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뭐, 30분이면 괜찮아요. 원하는 대답을 들은 소희가 씨익 예쁘게 웃으며 연준이의 옆에 섰다.

둘이 나란히 가게에 들어서자 스탭들이 환호했다. 얌마! 잘 어울린다 연준아!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어리둥절 해진 연준이가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옆에 있는 스탭에게 물어 봤지만 음흉한 웃음만 지으며 아무도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작가님! 저희 술게임 할래요? 좋아하시잖아요"

"역시 소희가 내 취향을 너무 잘 알아!"

술게임이란 말에 헛기침을 한 연준이 당황했다. 설마 걸리면 마시는 건가? 인간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게임 같은 건 잘 몰랐던 연준이 누가봐도 제일 불리 했다.

결국 시작된 술게임은 생각보다 더러웠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연준을 목표로 잡았는지 곤란한 질문만 쏙쏙 골라냈다.

"진도는 어디까지 나가봤어? 너 이거 말 못 하겠으면 마시는 거야"

"옷 벗고 하는 게 좋아, 입고 하는 게 좋아?"

"ㅋㅋㅋ연준이 너 키스 잘 해?"

스탭들이 던진 수준 떨어지는 질문들에 연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술을 연달아 마신 연준이 결국 머리를 부여 잡으며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에 벌써 취한 거냐며 깔깔 거리며 웃던 스탭들이였다.

옆에서 말 없이 술을 홀짝 마시던 소희가 이쯤이면 됐다 싶어 연준이를 일으키던 순간 연준이 고개를 들더니 잔뜩 풀린 눈으로 폭탄을 터뜨렸다.

"하.. 토 할 것 같아"

"연준이 많이 취했네! 하하, 술도 잘 못 마시면 어쩔려ㄱ,"

"네가 개좆같은 소리만 하니까.. 토 할 것 같다고"

"..뭐, 뭐 임마? 너 지금 나보고 한 말이냐?"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벌떡 일어난 연준이 집요하게 질 떨어지는 질문만 해댔던 작가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가자 주변에서 말리기 시작했다. 왜 이래요 연준 씨-

당장이라도 작가를 죽일 것 마냥 노려보던 연준이 순간 정신을 잃고 옆에 있던 소희에게 쓰러졌다. 그 덕에 소희에게 안긴 꼴이 된 연준을 보며 소희가 작게 한숨을 뱉었다.

"연준이는 제가 데려갈게요. 아무래도 많이 취한 것 같아요"

생각보다 일이 커졌지만 소희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취한 연준이를 부축하며 가게를 빠져나온 뒤 한참을 걷다가 연준이를 잠깐 앉힌 뒤 담배를 들었다. 얘를 어쩌지..

"연준아 집 주소 불러봐"

***

절대 집 주소는 말 안 해주겠다는 연준이를 어루고 달래다 결국 지갑을 몰래 뺏어가 주소를 알아냈다. 취한 와중에도 철벽을 치는 연준이 슬슬 짜증났지만 오히려 귀여웠다.

겨우 연준이를 침대에 눕힌 뒤 조심스레 빠져 나오다 낯선 여자와 마주쳤다. 아.. 여자친구? 생각보다 예쁘장하게 생겼네. 그렇게 생각한 소희가 뻔뻔하게 놀란 척을 했다.

"! 깜짝아.. 누구세요?"

"..그쪽이야말로 누구신데 남의 집에서 뭐 하세요?"

"아.. 설마 연준이랑 같이 살아요? 죄송해요 지금 연준이가 많이 취해서.. 실례했습니다"

"..취해? 같이 술 마신 거예요?"

인상을 확 찌푸린 여주가 자꾸만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꾸역 꾸역 눌러냈다. 같이 술 마셨냐는 질문에 말 없이 미소만 띄우며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를 확 패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싸해진 눈으로 소희를 바라보던 여주가 입술을 꽉 깨물며 예의를 지켰다.

"힘들었을 텐데 연준이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다음부턴 이런 일 없었으면 해요"

"연준이가 여자친구 없다 했는데.. 있는 줄 알았으면 저도 이렇게까진 안 했어요. 아무튼 전 가볼게요"

마지막으로 핵폭탄을 던진 소희가 고개를 꾸벅이더니 여주 옆을 지나쳤다. 소희가 나가자마자 털썩 주저 앉은

여주가 소리 없이 울었다. 이런 일을 겪고도 연준이 너무 좋아서 더욱 아팠다.

어느정도 울었을까 아까보다 더 싸늘해진 눈으로 힘 없이 집을 둘러보다 조심스레 안방에 들어갔다. 곤히 자고 있는 연준이 미웠지만 사랑스러웠다.

"으음.. 누나-.."

이 와중에 꿈이라도 꾸는 듯 실실 웃으며 잠꼬대 하는 연준을 더 이상 예뻐해 줄 수 없었다. 지금 꿈에 나온 여자가 누군데.. 제발 연준아.

잠시 생각을 하던 여주가 조용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몇 시간 후, 무거운 짐을 겨우 이끌고 집 밖을 나온 여주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야. 나 당분간 재워줘. 갈 곳이 없어"

["?..무슨 일 있어? 너 지금 어디야"]

"부탁이야.."

["데리러 갈게 기다려"]

전화를 끊은 여주가 이번에는 소리 내어 울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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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는 술 마시면 안돼요 >_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