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야!

그냥 연준이 좀 행복하게 해주세요

W. 말랑이래요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둘이 뭐가 어쩌고 저째? 형제라고? 지금 이 순간 제일 황당한 사람은 난데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보아하니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은데 이렇게 싸늘해도 되는 건가. 둘은 형제라면서 서로 바라보는 눈빛도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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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너 설마 사람 된 거야 최연준?"


"형이 신경 쓸 일 아니잖아."


"왜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내가 형인데"


".. 형인 거 알긴 아네? 난 우리가 남보다 못한 사이인 줄 알았지"


"야 연준아 말 너무 심하다- 우리 몇 년 만에 보는 건데"




사장님이 소매를 걷은 뒤 팔짱을 끼며 가까이 다가왔다. .. 내가 예민한가, 왜 도발하는 걸로 보이지.

생각을 관두고 분위기를 파악했다. 지금 연준이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급하게 연준이의 손을 잡고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다.

사장님 그럼 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연준이는 내 손에 순순히 이끌려 오면서도 시선은 끝까지 다니엘에게 향해 있었다.

물론 좋은 시선은 아니었다.




.

.

.




".. 연준아 괜찮아?"


"..."


"준아"


".. 어, 어? 어 나 불렀어 누나?"


"흐으으음..."




아무래도.. 지금은 물어볼 때가 아닌 것 같지. 연준이 표정이 말이 아닌 걸 보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반쯤 영혼이 나가있는 연준이를 겨우 달래 침대에 눕힌 뒤 거실로 나왔다. 알바 첫날이었는데.. 그만둔다고 말하기가 참 뭣 같은데.. 아 존나 무책임한데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래도 말은 해야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비장하게 핸드폰을 들어 사장님께 전화를 걸려는 순간 때마침 사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으악!! 깜짝 놀라 핸드폰을 던졌다가 빠르게 목소리를 큼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 네에"


["아 여주씨 집은 잘 들어갔어요? 아까 많이 놀랐죠"]


"아아 그건 괜찮아요 집도 잘 들어갔고요"


["대충 아시다시피 연준이랑 제가 사이가 안 좋아요. 여주 씨가 여기서 일하기 껄끄러울 수밖에 없네요.. 그건 제가 어떻게 못하지만 저희 가게 사정이 많이 급해서.. 혹시 한 달만 더 일해 줄 수 있을까요?"]


"예?"


["죄송해요 저 진짜 염치없죠"]


"아니요 죄송하긴요 제가 더 죄송하죠.. 저 지금 일 그만두겠다고 연락드리려고 했거든요"


["그럴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래서 잡으려고 먼저 전화드린 거고"]


"일한 지 하루 만에 이런 말 죄송스럽지만..."


[".. 제가 진짜 인력이 너무 급해서. 혹시 200이여도 안될까요?"]


".. 네? 뭐가 200"


["월급이요. 주 4일에 5시간 일하고 200이면 나름 괜찮,"]


"네 사장님 저 열심히 할게요! 내일 봬요!"




뚝-




하 시발 일 저질렀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연준이가 자고 있는 방을 바라봤다.

연준아 미안해!.. 그래도 나 먹고는 살아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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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누나 쩐다. 그냥 퇴사하고 저 꽂아주면 안 돼요? 저도 돈 벌어야 하는데"


".. 수빈 씨 아직 고등학생이잖아요"


"고딩도 알바 하던데? 누나도 알바잖아요. 알바로 이백? 이백만원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워왔어요.."


"드라마요"




생각보다 깊게 잠이 든 연준이를 두고 장을 보러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나오는 수빈 씨를 발견했다.

대충 인사만 하고 가려 했는데 졸졸 따라다니면서 쫑알 거리는 토끼, 아니 이제는 사람인 수빈 씨는 인간이 된 이후로 궁금한 게 많아졌나 보다.


돈을 어떻게 모아요? 저 은행 가야 되는데 혼자 가기 너무 무서워요 진짜-. 아 맞다! 알바는 뭐가 개꿀이에요?


그러다 보니 내 지갑 사정과 어제 있었던 일까지 알아버린 수빈 씨가 내 일자리를 탐내며 눈을 반짝였다.

죄송한데 어림도 없어요. 제가 일 할 겁니다..




"수빈 씨 드라마 많이 보잖아요. 거기선 그런 내용 안 나온대요?"


"드라마에서 뼈 빠지게 일을 왜 해요. 사랑하기 바쁘지"


"수빈 씨도 여자친구 있으면 사랑하기 바빠야지!"


"누나도 연준이 형 내팽개치고 일하러 나가는 거 아니에요?"


"내팽개치다뇨? 같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돈을 벌려는 거지"


"행복이 돈이야? 돈이 뭐 그렇게 중요해?"


"돈이 밥 먹여주고 재워줍니다.."


".. 아 누나 그러지 말고 저도 알바 자리 꽂아주세요. 네?"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았다. 아직 추측이지만 다니엘 사장님과 연준이가 형제라는 건 사장님도 연구소 출신이라는 건데..

수빈 씨와 범규씨도 사장님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연준이를 믿고 따르는 애들이라.. 사이가 안 좋은 다니엘은 본다면?


..아아 안 돼 안 돼. 절대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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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것 봐!!"




이미 저만치 걸어간 여주를 수상하게 바라보던 수빈이 아직 남아있는 아이스크림을 야무지게 먹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까 저 누나 어디서 일하더라? 범규 형이랑 놀러 가면 뒤지게 놀려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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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어디 가"


"어 깼어? 나 일하고 올게 좀 더 자"


".. 가지 말지"


"이따 퇴근하면 나가서 외식하자! 맛있는 거 사줄게"


"돈도 없잖아 우리"


"쓰읍, 있어 있어 걱정 마"


"걱정하지 마? 푸흐..귀여워"




눈을 비비적거리며 일어난 연준이 어기적 걸어와 팔을 벌려 꼬옥 안아줬다. 가만히 연준이 품에 안겨있다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이자 흐헹헹- 거리던 준이가 마지막으로 짧게 입을 맞춰준 뒤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하고 와 이따 데리러 갈게! 연준이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그래 돈이나 벌자- 벌어서 울 연준이 맛있는 거 왕창 사줘야지.


그렇게 생각한 여주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여주가 나가자마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하는 연준이를 상상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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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야 오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