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확 깨네. 저 여자 지금 뭐 하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지만 일단 벽에 기대어 둘이 하는 꼬라지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 분명 가만히 보고만 있으려고 했는데. 자기보다 연준이가 훨씬 큰데도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걸 보자마자 울컥하는 마음에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 저걸!...

"아..머리는 좀"
"..그래? 알았어 나도 손에 왁스 묻히긴 싫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누나"
..그래 머리까지 내줬으면 너한테 진짜 실망 했을거야.
다행히 연준이는 여자의 손길을 피했다. 선을 긋는 행동에 머쓱 했는지 찰랑이는 긴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긴 여자가 예쁜 미소를 보여주며 차에 탔다.
그제서야 나도 긴장이 풀렸다. 후들 거리는 다리와 피곤에 쩌들어 흐린 눈으로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치고 있으니 누군가 뒤에서 나를 끌어 안았다.
누구긴 누구야 최연준이겠지..
"누나!"
"..아"
"누나도 이제 들어와? 쪽 쪽, 보고 싶었어"
"피곤해. 얼른 들어가자"
서둘러 현관문을 열었다. 그냥 피곤했다.
몸 상태 최악, 정신 상태 최악.
뒤에서 갸웃거리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연준이에게 입꼬리만 올려 누가봐도 존나 어색한 미소를 지어준 뒤 화장실로 들어갔다.
사실 연준아,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그 여자 누구야? 왜 걔가 너를 바래다줘?
대놓고 물어보기엔 너무 찌질했다. 솔직히 말 하자면 싸우기엔 내가 너무 피곤했다.
간단하게 씻고 방에 들어가자 안 방 화장실에서 씻고 나왔는지 뽀송해진 연준이가 침대에 미리 들어가 시트를 팡팡! 치며 얼른 오라고 재촉했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연준이가 얄미워 죽겠는데도
저러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나도 어이가 없었다. 말 없이 옆에 누워 연준이의 품에 파고 들자 내 등을 토닥이며 이불을 덮어줬다.
"누나 술 많이 마셨어?"
"안 취했어"
"기분.. 안 좋아 보이는데"
"...나 사실 봤어. 너 모르는 여자 차에서 내리는 거"
내 말에 잠시동안 말이 없어진 연준이 내 어깨에 머리를 부볐다. ..그래 내가 어떻게 널 미워 하겠냐. 부비작 거리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그제서야 안심이 된 듯 말을 꺼냈다

"같이 일 하는 모델 분이야. 오랜만에 일이 일찍 끝나서 친한 스탭 분들이랑 나까지 태워다 주셨거든"
"...심지어 모델이야? 뭐 이렇게 잘났대 그 여자"
"그 여자보다 누나가 더 예쁜데.. 질투 하는 거야?"
"바람둥이 같은 멘트 하지마 최연준"
"나 누나밖에 없는 거 알면서 자꾸 그런 말 한다"
몰라 모른다고. 괜히 심술을 부리며 어깨를 퍽퍽 치니 내 볼에 입을 맞추며 실실 웃는 연준이었다.
그만 하고 자라- 괜히 겁을 주려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 하자 응응 알았어! 하며 본격적으로 내 뺨을 감싸고 입을 맞추는 최연준이었다.
그래, 네가 아니라면 아닌거지
***

"최연준 바쁜가봐요? 자주 보러 온다면서 오지도 않고"
"연준이한테 말 안 하고 온건데요? 반찬 좀 나눠 주려고 온거지"
"..우리 반찬 같은 거 안 먹어도 그만인데"
"어우,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무슨 죄다 과자밖에 없어.."
범규 씨가 할 말 없는 듯 바닥에 굴러다니던 수빈 씨가 아끼는 인형만 발로 툭툭 쳤다. 가방에서 가져온 반찬들을 꺼내 냉장고를 채워놓자 그 모습을 말 없이 보던 범규 씨가 뒤에서 기웃 거리며 차곡차곡 채워지는 냉장고를 보더니 조용히 중얼 거렸다.
"최연준은 복 받았네.. 부러운 새끼"
"부러우면 범규 씨도 짝도 좀 찾고, 얼른 사람 될 생각 해야죠"
"그게 쉬운 줄 알아요?"
"어려울 건 또 뭐야"
"하루 아침에 여자친구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집에만 있으니까 사람 만날 일이 없잖아요. 좀 나가서 놀아!"
"아오- 잔소리 그만해요 내가 알아서 할거니까"
알아서 하긴, 척 보니까 소심해서 낯 가리는 타입 같은데.
빼곡하게 채워진 냉장고를 뿌듯하게 바라본 뒤 손을 툭툭 털었다. 할 일 끝났으니 다시 신발을 신으려 하자 쫄레쫄레 따라온 범규 씨가 벌써 가냐며 투덜 거렸다.
"일주일 뒤에 올거니까 그 때까지 다 먹어요"
"..일주일? 아, 못 먹어. 안 먹을래요"
"일주일이라고 말 했어요"
"아 씨! 싫다니까요! 괜히 잘 해주지 말라고"
"어~ 일주일"
뺙뺙!! 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문을 닫았다.
그 때 짧게 울리는 진동 소리에 핸드폰을 확인하니 연준이에게 부재중 1통이 찍혀 있었다. 뭐야 오늘도 회식 한다 그러지 않았나?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신호음만 들렸다.
"바쁜가보네"
***
..왜 모르는 여자 신발이 우리 집에 있는지 모르겠네?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아니겠지 싶었다.
떨리는 몸을 진정 시키고 걸음을 옮기자 안방에서 누군가 걸어나왔다.

"! 깜짝아.. 누구세요?"
"..."
__________________
머선 일이 있었던 거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