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합니다!

2. 재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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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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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자 그 말이 다야? 어쩜 끝까지 못됐니. 그래 그만하자 차라리 잘 됐다고 너 같은 놈에게서 난 백배는 아까웠어."





울컥하는 마음에 허공에다 정호석을 행한 욕을 마구 내뱉었다. 고작 우리가 이런 결말을 위해 사랑을 한 거야? 허탈함과 상실감이 마음속에서 동시에 회오리쳤다. 심장에 돌이 하나 쿵 떨어진 것 같았다. 아꼈던 사진도, 5년의 시간도. 결국 네 친구들과 여전하게 뭣도 없는 그 프로필도 역겨워. 오늘 헤어지려 몇 년은 준비할 것 같이. 나만 이렇게 아파하는 거 아니야? 난데없이 생각난 거지 같은 스토리에 짜증이 났다. 분을 못 이겨 기어코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쁜 새끼. 찌질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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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안 하던 읽씹에 더욱 화가 올라갔다. 그렇게 돈독하던 연인 관계도 헤어지면 남보다 못하다고. 바로 손절 쳐버리는 놈한테는 개새끼라는 이름이 잘 어울렸다. 평생 그렇게 살아. 너 같은 애인 만나서 나같이 비참해져. 내가 저 애한테 바친 모든 시간이 훌훌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너만 아니었어도. 차라리 자기개발하는 곳에 쓸걸. 그냥 너무 아까워.




















"생각보다 혼자도 괜찮은 거 같아."

"그래?"

"응.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어."





헤어진 이후로 가끔 술자리도 나가. 나 좋다는 남자도 많아. 그래 너한테 옭매여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한없이 옹졸해져 있던 거야. 친구와 함께 술집에서 한잔하다 멈칫, 아직도 내 시간을 네 욕을 하는데 쓴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는데 바로 텐션이 다운되었다. 진짜 뭔데 계속 아른거리는 거야? 고작 전남친일 뿐이잖아.





"...짜증 나."





진짜 너무 짜증 나. 나도 네가 정말 싫어졌어. 다시 나타나지 말아 제발. 절대 들키지 않을 거짓말이었다.




















"이 디데이 뭐야?"





설마 새로 사귄다고? 헤어진 지 며칠 됐다고 딴 여자를 만나? 그래 아니야 아니야. 아니어야만 해. 그렇지만... 쿵쾅거리는 심장에 서서히 구겨지는 인상이 참 볼만 했다. 항시 남 의심이나 하는 의심충은 아니지만, 바보도 아니야. 정확하지도 않은 추측질이나 하며 속을 썩일 바엔 직접 찾아가 질문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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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관통됐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너는 적어도 너는... 나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는 전여친의 전 자도 안된다는 거야?

떠나가지 마라. 꾹 삼켰던 말, 아직 벅차게 좋아한단 말이야. 아마 헤어졌던 날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개새끼. 천하의 몹쓸 놈. 그런데 어떡해. 내가 널 너무 사랑하는데. 내 마음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냥 너무 짜증 났다. 고작 그거 하나 못해? 아직도 네 감정에 지배당하고 살아? 바보같은 년.

그냥 짜증만 난 거 같다. 오만 감정이 다 뒤섞인 게 아니고 그냥 딱 짜증만. 정호석한테 돌아가는 짜증보다 나한테 조금 더 많이. 고작 사랑이 뭐라고 이렇게 힘들게 하는데. 돌아오지 않아 꾹 참아야 해. 그럴수록 가슴은 더욱 무거워졌다. 나는 여전히 너 못 잊겠어. 나도 언젠간 너처럼 다른 사랑할 수가 있을까.




















팔랑.



"이게 뭐지?"




앨범 사이로 작은 사진이 탈출을 감행했다. 물론 바닥에 착지해 바로 내 손에 잡혔지만. 뭐길래 내가 졸업앨범에 넣어둔 거지? 앞면으로 바닥에 곤두박질친 종이 쪼가리를 집어 뒤로 뒤집어 보았다. 미스터리한 사진의 비밀은 금방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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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삐 소리가 길게 울렸다. 다 버린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내가 이 사진을 언제 찍은 거지?

엉엉 울면서 마지막까지 두세 번씩 돌아보고 흔적을 전부 지웠는데 끈질기게 남아있었다. 내가 이 졸업앨범은 돌아보지 않았나 보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남아있을 수 없다. 몇 번이고 집 안 구석구석을 다 뒤졌는 걸.

이사를 앞두고 정호석의 사진이 나온 졸업앨범을 살펴보았다. 이 애를 처음 만난 게 고1이었던 거 같다. 헤어진 건 22살이고. 5년이면 정말 많이 사귄 거다.

헤어지고 이 애 잊으려 다른 남자도 만나보고 그랬었는데.

이 얼굴이 쉽게 잊힐 리가 있나. 괜히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졸업앨범에 수학여행 사진도 수업 시간 사진도 각양각색의 체험 사진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졸업 앨범이었다.

앨범의 하이라이트인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짚어 보았다. 그중 단연 빛나는 사람은 정호석이다. 얘 진짜 개새낀데 내가 못 잊었던 이유가 있구나.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앨범의 마지막 장까지 정독한 나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다. 한때는 정말 사랑했고 한때는 미친듯이 미워했던 사람아. 너는 지금 날 어떻게 생각할까?



전여친? 아님 ?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기억도 못 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나는 지금 널 볼 때 심장이 요동친다거나 얼굴이 빨개지지 않아. 너에게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는 뜻이겠지.


남아있던 마지막 사진까지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우린 이미 끊어진 인연인데 뭐 하러 널 특별하게 남겨두겠어? 잘살아. 그래도 네가 내가 아팠던 만큼만 딱 아팠으면 좋겠다.



미련 없이 찢겨진 사진 조각은 고스란히 휴지통으로 처박혔다.







"왜 그렇게 미워했는지... 이해가 안 가네."







아마 그 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아주 많이 어렸었나 보다. 제대로 된 방어도 없이 공격을 그대로 맞았던 건 마음이 단단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처음 겪는 시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 미움 덕에 나는 지금 이만큼 성장할 수 있지 않았는가.



결론적으로 나는 정호석에게 고마워 하고 있다. 네가 나쁜 애여서 정말 다행이야. 그게 아니었더라면 나는 정말 힘들었을 거 같거든.



"끝까지 나쁜 새끼로 남아줘서 고마워."





정호석과의 악연은 오늘로 부터 완전히 끝이다.





ㅡㅡㅡ




?? 유치해요
?? 하지만 빨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