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얘 이름은 전정국, 한 학기 후배고 현재 내 썸남(아니면 어장)이다. 대학교 조별과제로 팀플할 때 만났는데 얘랑 나 빼고 다른 팀원들이 다 잠수라 아득바득 이 갈면서 PPT 만들다가 친해졌다. 그렇게 인사 좀 하면서 지내다가 MT에서 썸(아니면 어장)으로 바뀌었음. 아직은 용기도 없고, 이렇게 남 부러울 거 없는 애가 나를? 하는 마음에 고백은 꾹 참고 있다.
근데 오늘 얘가 밤에 할 말 있다면서 호수공원으로 나올 수 있냐는거,, 이거 누가봐도 썸 관계에선 고백하려는 거... 맞잖아?? 그래서 냅다 알겠다함. 꾸안꾸 스타일로 꽃단장 하고 아끼던 샤넬 향수 존나게 뿌리고 (정확히 12번 뿌림) 나갔다.
나와서 공원 몇바퀴 돌고 벤치에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근 데 얘가 고백각 타이밍에서도 고백을 안 하는 거임. 왜 고백 안 하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내가 선빵 칠까 해도 애가 하는 고백멘트는 꼭 듣고 싶고...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는데, 왜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한번은 맞는 다잖아? 그때 아! 하고 생각이 났지. 술 마시면서 분위기를 풀면 고백하지 않을까? 사회 초짜한테 이게 무슨 짓인가 자괴감은 들었지만 고백을 못한다면 하게 만들어 줘야지, 안 그래?
"짠-!"
종이컵 꾸역꾸역 접어 만든 볼품없는 종이 소주잔에 담아먹은 술이 달았던 건지, 그 분위기가 달았던 건지 알 수 없을만큼 취했다. 게임을 왜이리도 못하는 지 과장이 아니고 내가 한 잔 마실 때마다 얘는 무슨 열 잔은 더 마신 듯하다. 술이 세서 다행이지, 아니였으면 진상 중에 완전 개진상이 되었을 거다. 어? 개진상이 아닌가, 상진상? 하진상?
큼! 자,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서 이성 단 둘이서 도대체 왜 술게임을 하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10의 9할은 진실게임으로 상대방 마음 떠보려는 거죠~ 썸이 한다는 그 진실게임, 데가 한 번 해봤습니다.
"대답 못하면 한 잔, 대답하면 다시 술병 돌려."
"아ㅋㅋ 난 누나한테 숨기는거 없어."
술병이 뺑그르르 돌면서 점점 속도를 늦춰갔다. 알 수 없는 미묘한 긴장감에 영혼도 없는 애꿏은 소주병을 연기가 나도록 째려보았다. 술병은 몇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정국을 향해 멈추었다.
"아 역시 신은 내 편이구요."
"... 질문해요!"
"음, 제일 쉬운 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전정국은 내 질문을 듣고 안 그래도 붉은 볼을 더 벌겋게 붉히더니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휴, 좋았다. 이번에는 술병이 빙그르르 몇번 돌다가 내쪽으로 멈추었다. 무슨 질문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별 거 아닌 거에 진지하게 의미부여를 하는 정국이 너무 귀엽다. 와랄라 깨물어주고 싶어...
"전남친 VS 나"
"으엥? 이게 뭐야ㅋㅋㅋ"
"빨리, 대답 못 하겠으면 마시던가~"
후후후후후, 네 속이 훤히 다 보이는 질문에 내가 당할 것 같냐! 나는 그대로 소주 한 잔을 원샷했다. 정국이는 내 모습을 보고 '나 삐졌어요' 라 이마에 써놓고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내가 삐졌냐고 장난식으로 물으니 정국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ㅋㅋㅋㅋㅋㅋ 삐져써용? 오구구"
"...안 삐졌, 안 삐졌어요!!!!"
"으악 급발진 무엇?"
"빨리 병 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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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전정국, 내가 대답 안 한 걸 시작으로 계속해서 질문을 거절했고, 누가 먼저 뻗나 돌아가며 원샷했다. 결과는 둘 다 정신 못 차림. 정신이 헤롱헤롱한 정국이는 갈 때까지 가보자며 또 다시 병을 돌렸고 그 병은 나를 향하여 멈추었다.
"우워어어억!!! 누나 원샷! 원샷!! 원..."
(툭툭 건드리며) "야 자냐? 지쨔?"
"
저때 잠든 게 아니고 술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몸적으로도 너무 피로해서 잠깐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었는데 전정국이 내가 잔 걸로 착각을 했다. 사실 반기절 상태였어서 반은 잠든 게 맞긴 한데 아무튼!
"누느... 내가 소,직히 누나 좋아하는 거 알 (딸꾹) 죠?"
테이블에 박았던 고개를 살짝 들어 쳐다보니 정국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선 내게 안 자고 있었냐 물었다. 베시시 웃으며 오케이 표시를 하니 정국은 부끄러웠는지 큼지막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해요."
술과 방금의 말 때문에 심장이 평소보다 두배로 더 뛰었다. 특유의 새벽 공기와 새가 짹 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너무 좋아 미칠 것 같았다. 마치 그때처럼 말이다.
응, 나도 좋아해.
"태형아-."

현썸남을 구남친 이름으로 불러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