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면 안 돼?

좋안돼 2





태형은 지난해 혜성처럼 나타나 화양대 재학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듣기로는 태평양 건너 대학서 편입 왔다는데, 유학생이라는 화제를 제치고 그의 외견에 관한 풍문이 압도적으로 캠퍼스 내를 휘저었다. 편입생 걔 봤냐? 진짜 잘생겼더라. 같은 과 학우들은 뜻밖의 유니콘 등장에 정신을 못 차렸고, 그건 타과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상 서늘하고 까칠하게 생겨선 위아래 안 가리고 친구 먹을 만큼 수더분한 성격. 심지어 여자친구까지 없다는 소식에 다들 체면 차리기도 차치하고 저마다 태형에게 말 한 마디 붙이려고 성화였다. 당시 이런 그의 별명은, 경영과 하트 브레이커.


그나마 지금은 좀 덜한 편이다. 사이에 누구 끼기도 무안하게시리 김태형 옆에 지여주가 착 붙어 있어서. 붙은 건지 붙인 건지는 아직 미지수다만, 쨌든 그렇다. 그 둘이 함께 다니기 시작할 적부터 태형의 태도에도 미약하게나마 변화가 일었다. 짝사랑하던 여후배 왈, 전에 없던 벽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다가가기 만 배로 힘들어진 느낌이랄까. 막상 편입한 직후엔 생판 첨 보는 사이로 착각할만치 서먹해 보이던데, 두 달 가량 지나고 보니 단둘이서 밥을 먹었다든가 나란히 어딜 갔다든가 하는 목격담들이 수두룩빽빽이라 동기들은 쟤네가 뒤늦게 썸이라도 타나 싶었다.




"넌 몇 시 수업인데."

"난 오늘 휴강인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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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잖아. 그냥 지여주 얼굴 보러 나왔다고."




자기네들은 친구 사이라는데, 그게 도통 믿겨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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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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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은 답장을 한 직후 거실 소파에 눕다시피 기댔다. 스르르륵. 다리에 하중이 쏠려 몸이 미끄러져 끝도 없이 내려간다. 요새 통 머리에 신경을 안 썼더니 앞머리가 눈을 가릴 정도로 길었다. 드문드문 전등 빛이 비치는 시야 위로 태형이 제 손을 쫙 펼쳐 보인다. 아무래도, 지여주가 최근 들어 저와 거리를 두려는 건 기분 탓이 아닌 듯 싶다. 대놓고 불편한 기색이라면 모르겠는데, 겉보기엔 전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하면서도 은근히 태형을 다른 사람과 엮으려 드는 게··· 당사자는 딱 미칠 노릇이었다. 수연이? 미안하지만 존재도 몰랐다. 더 나아가 알고 싶지 않다. 옅게 인상 쓴 김태형은 제 옆구리에 놓인 미니 쿠션을 잡아 신중하게 조물거리며, 세상에 인간관계란 지여주랑 저 둘밖에 없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 이건 좀 음침한가?


그러나 자책 말고는 방법이 없고. 원인의 태반은 제게 있었으므로 이 상황에서 누굴 탓하는 꼬락서니도 우스울 것이었다. 뭐··· 새삼.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시선을 거두고 한숨을 뱉는다. 티를 내서는 안 되는 걸 아는데도, 과분한 하루에 기분이 붕 뜨면 대개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꺼진 화면을 흘긋 바라본다. 대화가 끊긴 지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몇 시간은 훌쩍 건너뛴 느낌. 그 애가 없는 시간은 유독 길었다. 이제 와 고백하건대, 김태형은 지여주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김태형은, 지여주를.




"사물함에 있던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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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긴 줄 알고 버렸는데, 어쩌지."




좋아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