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첫사랑

3)바다,그리고 별



"다음 목적지는 해운대입니다! 모두 안전벨트 확인!"


떠들썩한 버스 안,

지루했던 수업 시간의 굴레를 벗어던진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창밖으로 쏜살같이 달리는 풍경과 함께 어우러졌다

나는 창가에 기댄 채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겼지만,

사실 내 시선은 조심스레 너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다.

태산아,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번 내 옆자리에 앉아 수학 문제를 알려주던 너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내 책상에 툭, 놓여 있던 달콤한 샌드위치.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내 하루를 통째로 바꿔버렸는데, 너는 아무렇지 않은 걸까?

어쩐지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다가도, 혹시 이것마저 들킬까 봐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야, 채지아! 빨리 안 일어나면 맛있는 거 다 뺏긴다!"

운학이의 우렁찬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버스는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 해운대에 도착해 있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훅 하고 끼쳐오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비릿하면서도 상쾌한 짠 내음!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쏟아져 나가는 아이들 틈에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렸다.
수학여행. 첫사랑. 바다. 완벽한 조합이잖아? 설레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새하얀 모래사장 위로 발을 내딛자, 부드러운 모래알들이 발가락 사이를 간질였다.

눈부시게 부서지는 파도와 푸른 하늘,
그리고 그 아래 자유롭게 뛰어노는 친구들. 저 멀리 친구들과 함께 해맑게 웃고 있는

너의 모습도 보였다. 늘 교실에서 보던 단정하고 약간은 조용한 너의 모습과는 또 다른,
해방감에 젖은 너의 뒷모습이 왜 이리 낯설면서도 심장이 저리게 다가올까.

어쩌면 내가 모르는 너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나는 잔뜩 부풀어 오른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야 채지아 아이스크림 내기 콜?"

운학이가 말했다.

하지만 항상지는건 운학이였다,

"아씨,그래그래 알겠다"

말하면서 운학이는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한참을 놀다 뒤돌아보니, 멀찍이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태산이가 보였다.

쨍한 햇살 아래, 그의 까만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조용한 옆모습은 여전히 그림 같았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문득, 저 모습 옆에 서서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밀려왔다.

"태산아, 혼자 뭐 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나 자신이 더 놀랐다.

깜짝 놀란 내가 서둘러 입을 틀어막기도 전에, 태산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내게 손짓했다. '이리 와.' 그의 시그니처 미소와 함께 하는 손짓에,

나는 홀린 듯 그에게로 향했다. 찰랑이는 바다 위로 지는 노을이,
어쩐지 그 미소와 겹쳐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바람 시원해서 좋다."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옆에 서니,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함께 그의 체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

교실에서 맡았던 산뜻한 비누 향과는 또 다른, 따뜻한 바람과 햇살이 어우러진 듯한 향기였다.

발밑을 스치는 차가운 파도가 간지러웠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듯했지만,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순간이 완벽하게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나게 놀았어?"

그가 시선을 돌려 나를 봤다. 붉게 물든 노을이 그의 눈동자 속에서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이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의 손가락이 내 손을 스치는 순간,

저도 모르게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푸른 바다와 붉은 노을이 그의 눈동자 속에 모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담겨 있을까?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감추며 나도 조심스레 그의 눈빛을 마주했다.
찰랑이는 파도 소리가 우리의 대화 없는 순간을 채워주었다. 이 특별한 바다의 밤, 나는 너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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