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이후, 나와 태산이 사이에는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전보다 더 자주 눈이 마주쳤고,
복도에서 우연히 스치듯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를 건네거나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그 작은 웃음에도 하루 종일 들떠 행복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너희 요즘 좀 수상하다?” 같은 말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부인했지만,
속으로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혹시라도 태산이가 이 소문을 듣고 불편해할까 봐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의 관계가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아 설렜다.
그렇게 나의 행복 회로가 한창 돌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점심시간, 나는 운학이와 급식실로 향하고 있었다
급식실 앞 복도에는 유난히 많은 아이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빼꼼 내밀어보니, 그곳에 태산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예쁜 얼굴의 여자애가 있었다.
새로 전학 온 2학년 7반의 이예진이었다.
예쁘장한 외모에 전학 온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이미 학교 남학생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던 아이였다.
태산이와 예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예진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 있었고, 태산이도 그녀의 말에 웃어주는 것 같았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태산이의 미소는, 나만의 특권인 줄 알았다.
아니, 특권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태산이의 환한 웃음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옆에서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내 세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날 점심은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밥알을 휘젓기만 할 뿐이었다.
그 후 며칠 동안 태산이와 예진이는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방과 후 하교길, 도서관 앞, 심지어는 우리 반 복도를 지나가는 태산이에게 예진이가 자연스럽게 다가가
말을 거는 모습도 보았다. 태산이는 예진이의 말에 늘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했지만,
그녀의 말에 웃어주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내게 큰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태산이가 정말… 예진이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야, 채지아. 너 요즘 왜 이렇게 우울하냐?"
운학이가 내 눈치를 살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하지만 이미 나의 표정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친구들도 눈치챈 것 같았다.
수업 시간에도 집중이 안 되고, 괜히 태산이 쪽을 곁눈질하게 되었다.
태산이의 시선이 혹시 예진이가 있는 7반 쪽을 향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나도 모르게 시무룩해졌다.
결국 나는 며칠 동안 태산이를 애써 외면했다.
그의 시선이 느껴져도 피했고, 일부러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깔깔거리며 괜찮은 척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아팠다. 내 감정이 이렇게 쉽게 흔들릴 줄이야.
내가 태산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각보다 훨씬 더 깊었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마음은 이미 너에게 향해 있었지만,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혹은 알아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가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이젠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의 첫사랑은 이렇게, 아직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나는 걸까?
흔들리는 마음을 잡지 못한 채, 나는 매일 밤 침대 위에서 뒤척였다.
바보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