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함께 있으면.

함께 있으면.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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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으면.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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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는 지훈의 제안에 먼저 일어난 여주가 앞서 걸었다. 남들 앞에서 편히 할만한 얘기가 아니었기에, 여주 역시 조용한 곳에서 얘기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본관을 벗어나, 별관의 빈 교실로 들어선 여주가 뒤돌아섰다. 그에 뒤따르던 지훈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라면 아무도 안 와. 이제 안 쓰는 교실이니까."

"딱 좋네. 누가 엿들을까 걱정 안해도 되고."

"그럼 얘기해."

"뭐가 제일 궁금한데? 전부 답해줄게."






뭐든 물어보라는 말이었지만, 여주는 쉽사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무엇부터 물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와 이런 얘기를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기에 더욱 그랬다.
어떤 얘기부터,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하지?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하기만 한 생각에 한숨을 내쉰 여주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전부."

"전부?"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지, 왜 나한테 접근하는지. 전부 얘기해."






긴 생각 끝에 꺼낸 말에 지훈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으음…. 허공에 시선을 둔 채 낮은 침음을 흘린 지훈은 곧 결정을 내린 듯, 다시 여주를 바라봤다. 정확히 마주치는 시선에 놀란 여주와 달리, 담담하게 고개를 주억인 지훈이 말문을 열었다.






"내가 너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지가 제일 궁금한 것 같은데, 일단 그것부터 얘기하자."

"…."

"너,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리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전부 들리니까, 머리 꽤 아플 것 같더라. 그래서 매일 엎드려 있는 거지? 억지로라도 잠들면 그나마 덜 들리니까."

"그걸, 어떻게…."

"다 봤거든."

"뭐?"

"생각이 들리는 거리의 한계는 아마, 교실 정도? 그 정도 거리에 있는 사람들 생각이 전부 들리고, 가까이 있을수록 선명히 들리고. 맞지?"






말문이 막혔다. 전부 맞다는 것보다도,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에 놀랐다.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가족에게조차 털어놓은 적 없던 사실이었다. 털어놓는다 한들 믿어준다는 보장도 없었을 뿐더러, 자신을 두려워할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랬기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보다 혼자가 편했다. 그래야 무심코 남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힘들게 숨겨온 사실이었는데, 대체 지훈은 어떻게 알게 된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생각을 늘어놓던 여주의 복잡한 머릿속을 지훈의 목소리가 파고 들어왔다.






"아까도 말했지만, 알았다고 해서 뭘 어쩌려는 건 아니야."

"그럼, 뭘 원하는데."

"그것도 아까 말했잖아. 나랑 같이 있어달라고."

"내가 너랑 같이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있잖아, 의미."

"뭐?"

"왜 내 생각은 하나도 안 들리는지, 안 궁금해? 난 그게 제일 궁금한데."

"그게, 무슨…."






네 생각이라면 훤히 들려. 그리 말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는 것이 없었다. 들리는 거라곤 지훈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이 전부였다.
대체 왜? 스스로에게 물어도 나오지 않는 답에 여주가 미간을 좁혔다. 그런 여주의 미간을 가만히 보던 지훈이 짧은 침묵을 깨고 말을 이었다.






"미리 말하지만, 내 생각이 왜 안 들리는지에 대해선 나도 몰라. 내가 아는 건, 내가 있으면 네게도 남들 생각이 잘 안 들린다는 것 정도?"

"왜?"

"글쎄. 그것까지야 나도 모르지. 근데 사실이잖아. 내가 가까이 있으면면 있을수록, 남들 생각이 전혀 안 들리게 되잖아."






맞지? 확인하듯 묻는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전부 사실이었지만, 생각이 따라가질 않았다.
왜 지훈의 생각만 들리지 않는 건지, 왜 지훈이 가까이 있으면 남들 생각이 안 들리게 되는 건지. 바로 눈 앞에서 확인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원인과 과정 따위는 없이 결과만 들이밀어져서일까. 전부 거짓말인 것만 같았다.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어지러운 생각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지훈을 마주했다. 처음과 다를 것 없이 담담한 얼굴을 마주하며, 어느새 바짝 말라버린 입술을 축였다.






"…그래서, 난 너랑 같이 있으면 들리는 게 없으니까 좋다고 쳐. 그럼 넌 뭘 원하는 건데?"

"딱히 숨길 생각이 없긴 한데… 그래도 믿어주지 않으면 나 진짜 허탈할 것 같거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내가 너에 대해 아는 만큼 나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게 공평하잖아. 그러니까 전부 말하긴 할건데, 믿기 어려워도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말이야."






그리 말한 지훈이 말을 고르듯 입을 다물었다. 여주의 눈을 피해 시선을 굴리다가 다시 여주와 마주한 순간, 지훈이 말을 이었다.






"남들 생각 들린다는 거, 가족한테도 털어놓기 쉽지 않은 사실이잖아. 이해해. 나도 비슷하니까."

"비슷하다고?"

"내 경우에는 남들 생각이 들린다든가 하는 머리 아픈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음 편한 일은 아니거든."






내내 담담하기만 하던 지훈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괴로움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이 뒤섞인 표정을 말없이 지켜보던 여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묵직한 한숨이 한번 더 이어지고, 뒤이어 여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믿을게."

"…."

"이제와서 아닌 척 피할 수도 없는 일이고. 다 믿을테니까."






얘기해 봐. 이어지는 여주의 말에 지훈의 표정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깔끔하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간 입꼬리가, 기분 좋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