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의 의미 모를 대답에 애가 타는 건 윤하였다. 그래도 아직 아무 일도 없다는 말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는
지아와 달리 윤하는 더 애가 탔다. 지아는 중간에 기억도 잃고, 전에 하던 일보다 지금 카페에서 일하는 게 더 익숙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의 직업상,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보단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비하고 그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막아야 하는게 그들이 하는 일이었으니까.
당장 성우를 어디론가 지아가 보지 못하는 곳으로 끌고가 캐묻고 싶었지만. 성우의 표정으로는 이제 그런 방법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게 뻔히 보였다.
"아직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아무 일도 없어야 해. 옹성우. 내 말, 알아듣지?"
허튼짓 하지 마. 할 생각도 하지 마.
카페 문을 열고 나가는 성우의 뒷모습을 보며 윤하가 하던 생각이었다. 저렇게 진지하고, 저렇게 우울하고. 그 답지 않은 모습은 낯설다. 아니, 낯섬을 넘어서 불안하기까지 하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 죽기라도 할 군인처럼..
"보스..! 지원군이 연락이 안됩니다! 오는 중에 당한것 같습니다!"
"뭐?? 여기 있는 게 다가 아니라고?"
오늘 길에도 깔아놓은 거야? 아무래도 당한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다. 서둘러 연락한 건 우리를 이 전쟁터에 보낸 회장이었다.
"지원군이 오는 중에 당한 것 같습니다. 현재 연락이 되지 않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원군을 더 보내주셔야 합니다."
"참. 아까운 인력만 낭비했군."
"낭비요?"
"케이. 너를 잃으면 나의 손실이 너무 커. 이겨주면 좋지만, 만약 정 안되겠다 싶으면 몰래 빠져나와."
"저.. 혼자 말입니까?"
그 뒤에 회장이 한 말은 들리지 않았다. 주변의 소리가 전화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잡아먹어 버렸다. 전화는 끊겼고, 오로지 주변의 비명 소리와 총소리 만이 귀를 찔렀다.
이런, 책임감 없는 회장을 바라보고 몇년 동안 개 노릇을 한건지. 지난 시간들이 미치도록 후회스러웠다.
이렇게 쉽게 자기를 지키던 사람들을 버릴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그 딴 새끼를 지키는 일따위 하지 않았다.
거기다 뭐라고? 나만 빠져 나오라고?
나의 후배들이. 내가 키운 내 팀원들이. 피를 토하며 싸우고 있는 이 전쟁 속에서 몰래 빠져 나오라고.
개소리 짓걸이지 말라 그래.
"야!! 총알 더 가져와!!"
"여기있습니다!"
탕탕탕--!
살아남으라고 그렇게 말하면 그럴 것이다. 그런데,
혼자 도망치라고. 그렇게해서 살아남으라고.
그건 못하지.
"보스!! 지원군이 도착한 것 같습니다!"
"그래? 불행중 다행이군."
이렇게 된 이상. 미션 완수하고, 살아서 돌아간다.
***
"성우가 저러니까 너무 어색한데..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겠지?"
성우가 떠나고 없는 자리에서도 윤하와 지아의 대화는 성우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이 불안한 느낌은 어떻게 해아 하는 걸까.
아닐거야. 다 잘 될거야.
아무리 되새겨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점점 더 커져만 갈 뿐.
"너무 걱정하지 말자. 무슨 일 있으면, 우리한테 말 안줬을 리 없잖아. 안그래?"
"그렇지."
"타르트는 잘 구워 졌나봐. 성우가 맛있다던데? 하나도 안남기고 다 먹고 갔어."
"다행이다. 이제 다니엘 돌아오는 것만 기다리면 되겠다 그지?"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답답하다. 임무 중에 우리에게 연락 한 통 할 여유없다는 것 쯤은 알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되고 있는건지, 하나도 알지 못한채 기다리기만 한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그래도 이렇게 가만히,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는건, 다니엘, 그를 믿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밤하늘이 맑네. 별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아. 달도 선명하고."
"그러네.."
"아무일 없을 거야.."
하지만 그 믿음은 사람을 더 하염없이 만들었다. 어떠한 합리적 의심도 하지 못하게. 사실은 그게 자기의 바람인지도 모르게 말이다.
***
"보스!! 총알이 없습니다!"
"뭐?! 지원군이 가져온거는?!"
"그게...."
"빨리 말 못해?"
"차가 터졌답니다..."
"뭐라고? 장난하냐?? 무기부터 내려야 되는거 몰라?! 차에다 실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가져올거냐?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어?!!"
"죄송합니다. 내리는 중에 폭팔해버렸습니다.. 안에 탄 애들도 다 죽었습니다.
이건 너무... 너무 승산이 없는 싸움입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 외면하려고만 했다. 승산이 없다.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총알도 없는 껍데기 총을 들고 몸을 숨기던 낮은 벽 뒤로 머리를 기대었다.
하..참나...
어이가 없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사람도 없고, 무기도 없고.
그렇다고 총을 든 사람한테 맨주먹으로 달려들 순 없는 느릇이고.
진짜.... 이제.... 방법이 없는 걸까....
"보스! 우리 이제 어떡합니까..? 이대로 당합니까..?"
이기지 못할 전쟁..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건 현장에 있는 우리들인데. 포기할지 밀어붙일지 결정하는 건 저 윗대가리들이니..
"젠장."
빈껍데기 뿐인 총을 던졌다.
그리고는 단검 하나를 꺼냈다.
"보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총알 조금은 남았지? 너흰 벽 뒤에나 숨어서 계속 쏴. 알았어?"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지금 그걸로.. 싸우시겠다는 겁니까..?"
"어차피 질 게 뻔한 싸움인데. 무모한 짓.. 못할 게 뭐있어."
"무모해도 너무 무모하잖아요!"
"닥쳐! 그럼. 그럼 어쩔건데. 그냥 맞고만 있을래? 어!?!"
그의 동료들이 그를 극구 말렸지만 한 번 마음을 먹은 다니엘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눈빛이 사뭇 달랐다.
단검을 들고 전쟁터로 나가는 그의 모습에 남은 동료들은 욕을 짓걸이며 땅을 쳐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