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비가 내리는 날 밤

22화


서로가 있어서 행복했던, 서로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되어 행복했던, 주말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시작을 했을 뿐인데, 내가 살던 삶 그대로에 함께할 사람이 한 명 생겼을 뿐인데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이던 여주였다.

늘상 같은 출근 준비도, 늘상하는 출근도, 늘상하는 아침 인사도.

모든 것이 좋은 의미에서 새롭게 와닿았다.

여주가 회사에 도착하자 먼저 와있던 다니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보기좋은 미소를 보였다. 여주는 아침부터 보는 다니엘만의 인사에 오늘은 마치 좋은 일들만 가득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자, 다 왔죠? 오늘 첫 출근을 하게된 신입사원을 소개하겠습니다."

다니엘이 앞으로 나와 새로 온 신입사원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김도훈이라고 합니다."

다들 자리에서 물개박수를 치며 신입사원을 반겼다.

그 속에서도 여주는 신입사원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고, 밤새 더 멋있어진 것같은 다니엘만 두 눈 가득 담을 뿐이었다.

마침 여주의 왼쪽 자리가 빈자리여서 신입사원은 여주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아..네. 안녕하세요."

새로운 사원의 인사를 마친 다니엘은 자리로 돌아가며 여주에게 손바닥을 내보였다.

여주는 뜬금없는 다니엘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맞대었다.

"오늘도 수고해."

나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인 다니엘의 한 마디에 힘이 솟굿는 것만 같이 일에 대한 의욕이 치솟는 여주는 어깨를 돌리며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

"오늘 2시에 거래처와 미팅이 있는데, 나랑, 여주씨 같이 가죠."

"저요..?"

"아직 한 번도 안 가봤잖아요. 미팅."

그렇게 여주와 다니엘이 미팅을 나섰다.

"늦어질지도 모르니까 다들 일 끝나면 퇴근해요."

회사를 벗어난 다니엘과 여주는 사람들의 눈을 벗어나자 좀 더 편한 말투로 대화할 수 있었다. 다니엘은 자연스럽게 여주의 손을 잡았고, 그런 그의 행동에 여주는 더이상 깜짝 놀라지도 않았다. 대신, 같이 그의 손을 잡았고, 장난스레 걸음에 맞춰 앞뒤로 흔들 수도 있었다.

"오늘 미팅 안늦어져져요. 마치고 몰래 여주씨랑 데이트 하려고."

여주는 다니엘에게 못말린다는 듯 웃었다. 첫 미팅에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여주는 혹시나 자기가 실수를 하진 않을까 몹시 걱정하고 긴장중이었는데 다니엘의 장난이 여주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오늘 얼른 마치고 나랑 영화보러 가요."

다니엘은 아직 서로에게 존대를 사용하는 게 못마땅하여 오늘 데이트를 통해 여주와 더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전에 저녁 같이 못먹어서 아쉽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다음에 내가 멋진데 예약해서 같이 먹는 걸로 해요. 오늘은 그 약속 아닌겁니다?"

다니엘의 차를 타고 도착한 여주의 첫 미팅장소.

가볍게 차 한 잔 할 수 있는 곳에 먼저 도착한 여주와 다니엘은 지겨운 줄 모르게 거래처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딸랑-

가게의 문이 열리는 방울소리와 함께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 여주와 다니엘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 올려진 서류들을 보고 자신이 만나야할 사람임을 안 남자는 다니엘과 여주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엔비(NB)그룹에서 나온 옹성우입니다."

무거운 이미지로 자신을 소개하던 남자, 성우는 다니엘과 여주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채 서류로 먼저 서선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디엔(DN)그룹에서 나온 강다니엘 입니다."

"김여주 입니다."

서류를 찬찬히 읽어보며 다니엘의 소개를 들은 성우는 이어지는 여주의 소개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후에야 올려다 본 여주와 눈이 마주친다.

"김여주...?"

여주는 원래 아는 것 처럼, 여주의 이름을 자신의 입을 말하며 알지 못할 표정을 짓는 성우에, 다니엘 또한 여주에게로 시선이 갔다.

여주는 성우와 눈이 마주치자 곰곰히 생각하더니 이내 아, 라는 탄성을 뱉으며 말했다.

"옹성우...?"

들어오자마자 인사하는 사람을 두고 서류에만 집중하던 사람이 이제 서류에는 관심도 없는지 여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다니엘이 앞에 놓인 서류를 테이블에 세게 놓으며 말했다.

"아는 사이인가보죠? 근데 지금은 일을 해야하는 거 아닌가."

다니엘의 날카로운 음성에 성우는 또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이번에는 다니엘을 보았고, 그에 질 리가 없는 다니엘 또한 성우의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에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두 사람에게 날 선 분위기가 만들어짐에도 놀란건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여주에, 성우가 서류에 시선을 돌린 틈을 타 여주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어 쥔 다니엘이다.

"잘 봤습니다. 바로 계약하시죠."

"벌써 다 봤다구요? 아니 혹시나 잘못된 건 없는지, 조정할 건 없는지, 검토도 안해보십니까?"

"다했으니까 그냥 계약하자구요."

어째 처음부터 끝까지 다니엘은 성우가 그렇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찌됐건 이렇게 빨리 끝내주면 다니엘의 입장에서 손해볼 건 없었지만 왠지 사람을 찝찝하게 만든다.

계약서에 사인까지 끝났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던 성우가 입을 열었다.

"김여주. 전화번호 바꼈냐?"

"...아니."

"왜 연락 안받는데."

"....미안."

"연락할게. 받아."

다니엘을 앞에 앉혀둔 채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이어가는 성우에 보다 참지 못한 다니엘이 한 소리 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래도 여기 공적인 자리인데. 공사구분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다니엘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난 성우는 다니엘을 가볍게 무시한다는 듯 한 마디를 더 하고 가게를 나섰다.

"연락 받아."

다니엘은 화가 목까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한 마디만 더 했더라면, 여주의 표정이 조금만 더 어두워졌더라면 아마 머리끝까지 오른 화를 참지 못했을 것이다. 깊고 무거운 한 숨을 내쉰 다니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갑시다."

항상 자기보다 보폭이 짧아 걸음이 느린 여주에게 맞춰 걸어주던 다니엘이 깊은 생각에 빠진건지 계속 처지는 여주를 뒤로한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여주는 그런 다니엘을 쫓아가기 위해 빠른 걸음이다 못해 뛰다시피 해서 따라가야 했다. 그의 발을 쳐다보며 뒤따라가다가 갑자기 멈춰선 다니엘에, 여주는 그만 그의 등에 머리를 부딪혔다.

"누굽니까? 아까 그 사람."

"...."

"말 안해줄겁니까?"

"....그냥 고등학교 동창이요.."

"...하.... 친구 맞습니까?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것 같아서."

"....맞아요."

다니엘은 여주가 자기에게는 다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만난지 오래되진 않았어도, 연인이 된지 오래되진 않았어도, 꽤 중요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먼저 말해주지 않는 여주에 다니엘은 서운함을 느꼈고, 그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대답을 해주지 않는 여주에, 두 번째 서운함을 느꼈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방금 옹성우라는 작자의 거슬리는 그 표정이 잊혀지질 않았다.

미팅을 마치고 영화를 보러가자며 달콤하게 말하던 다니엘은 어디로 간건지, 아무 감정이 보이지 않는 무표정으로 운전만하던 다니엘이 차로 도착한 곳은 다시 회사였다.

"영화는 다음에 보러 갑시다."

그리고는 먼저 차에서 내려버렸다. 

회사로 올라오자 왜이렇게 빨리 왔냐는 회사사람들의 말에 거래는 잘 됐다고, 그냥 빨리 끝났다고 그렇게 말하던 다니엘은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그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은 여주가 이내 자신의 휴대폰에 온 연락을 받고 급히 회사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니엘은 또 한 숨을 내쉬며 자신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