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비가 내리는 날 밤

다 끝낼 방법

“화내서 미안해요..”

그렇게 한 동안 팀장님은 나의 뒤에서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위로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견뎌냈다. 아니, 위로해줄 사람을 내가 찾지 않은 것일지도. 그런데 그 힘들었던 지난 2년이 사르르 녹아내릴 것처럼 따뜻했다. 그냥 이대로, 이렇게 따뜻한 채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했다.

그냥 실컷 울고 나면 무거운 마음이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눈물은, 정말 하나도 덜어낼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너에게 미안해할 만큼 미안해하고, 아파할 만큼 아파하고. 그 뒤에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순서가 틀린 거였어.

난 이때까지 새로운 시작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아파하고 있는 거였다.

“시간을 조금만 더 주세요.”

“2년이나 힘들었는데.. 더 견딜 수 있겠어요..?”

“아직 못한 게 있으니까.. 그 일이 끝나고 나면 일어날 볼게요.

언제 시작하든, 새출발은 팀장님과 하고 싶어요.

그래도... 돼요..?“

“새출발 하기 전에도 여주씨 옆에 있을게요.

또 넘어지면 안 되니까.. 최대한 빨리, 일어날 수 있게.“

“좋은 아침입니다~”

출근시간이 좀 지나서야 도착한 팀장님이다.

“웬일로 늦으셨네요?”

“아, 웬일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요. 미안합니다~”

팀장님 특유의 웃음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자리로 돌아가며 나와 살짝 눈을 맞추곤 또 한 번 특유의 미소를 지으신다. 그걸 본 나는 따라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옮겼을 때, 팀장님으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전에 못 먹은 저녁, 오늘 어때요?’

‘점심은 단 둘이 못 먹으니까..’

나는 또 한 번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좋아요.’

다들 일에 집중하고, 그러던 사이 순식간에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 먹으러 갑시다~”

대리님의 목소리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난다.

회사 근처 식당에 도착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눈치껏 자리를 잡는다. 그중 특히 치열한 자리가 바로 팀장님의 옆자리였다.

나 같은 신입사원은 남은 끝자리에 앉기 마련이었지만, 팀장님의 손길에 얼떨결에 내가 팀장님의 옆자리에 앉고 말았다.

“근데 두분은 원래 아닌 사이였어요?”

“왜요? 그래보여요?”

“네. 완전 친해보여요.”

대리님의 물음에 나는 너무 조심스러워졌다.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말을 막 지어내야하나 고민했는데, 나만 그랬나보다.

“그냥 회사에서 만나기 조금 전에 만났었죠. 우연히..”

고민없이 사실을 뱉어버리믄 팀장님에 당황한 나머지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우연히 만난 게 다인데 친해졌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침을 꿀꺽 삼키며 “저.. 그게...”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 창밖으로 지나가는 그 할머니를 보았다.

하던말을 멈추니 다들 왜그러냐고 말을 하나씩 꺼냈다.

그리고는 하야할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아무 말도 없이 뛰쳐나갔다.

“여주씨?!”

알고 싶었다. 그날의 진실을 그냥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 할머니는 알것 같아서. 무작정 따라갔다.

“저..! 할머니 잠깐만요!!”

이번에는 나의 부름에 뒤를 돌아본 할머니가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알 수 없었다.

“저번에 만났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군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날, 2년 전 사고가 있었던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날 나도 많이 다쳐서 의건이랑 같은 병원에 실려갔었는데.. 사고가 나서 의건이가 죽었다는 것밖에 기억이 안나요.. 가르쳐주세요. 의건이그 어떻게 죽은 건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왜 굳이 알려고 하지?”

“그야,”

“알고싶다면 알려줄게요. 대신 그 일을 너무 담아두진 않는 거예요.”

“잊고 살라는 건가요..?”

“나도 그 청년이 죽지 않기를 바랬지만, 스스로 한 선택이었고, 단 한 치의 후회도 없었으니까.”

“....할머니도 의건이를 만났어요?”

“수 백번이고 다시 돌아간데도 같은 선택을 할거라고 하더군요.”

“..저도 의건이를 만났거든요! 어떻게 된건진 모르겠지만 비가 내리는 날 밤이면 다른 사람 몸에,”

“작별인사 하라고. 못했잖아.”

묻고 싶었던 게 너무 많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거냐부터 시작해서, 언제까지 만날 수 있는지.. 혹시나 나에게 전할 말이나 부탁이 있는 건지, 내가 뭘 해줘야 의건이가 편할 수 있는 건지. 이런 물음들은 ‘작별인사’ 라는 한 마디에 너무 슬프게 무너져 내렸다.

작별인사일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너를 위해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살 수 있는 건, 작별인사. 그 뿐이었다. 

도대체 난 뭘 해주고 싶었던 걸까. 뭘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났다고, 또다른 기적을 바랬던걸까.

지금 나의 감정은 허무함인지 실망감인지 후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 사이 할머니는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

“안아줄까요?”

대신에 팀장님이 나의 뒤에 있었다.

“내가 뭘 해줄까요?”

“.......하.....”

손이 떨렸다. 

의건이가 죽었다는 사실자체도 감당하지 못해,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의건이가 다시 오지 않고 편안해질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팀장님은 떨이는 내 손을 잡아주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돼요?”

“......다 끝낼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내 대답을 들은 팀장님은 자기는 괜찮으니까 내 결정을 따르겠다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할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