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비가 내리는 날 밤

고마워요 나를 다시 웃게해줘서


"내가 좀 더 많이, 여주씨를 좋아하게 되서.."

하루 종일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 지 고민하던 다니엘은, 저가 언제 그랬냐는 듯 흔들림 없는 눈빛과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되게 안 그렇게 생겼는데.. 되게 잘하네.."

"뭐가요?"

"오글거리는 말이요."

저에게 마음을 표현해 준 여주에게 받은 만큼 돌려준 진실된 마음이, 여주에게로 가 '오글거린다'는 표현을 받는 말이 되어 '풉'하고 웃음을 터뜨린 다니엘이다.

"그래서 싫어요?"

"그래도 솔직해서 좋네요."

서로에게 눈빛을 주고, 받으며 처음으로 미래도, 과거도 아닌 오로지 현재만을 소중히 간직하던 순간이었다. 드디어 조금씩 용기가 생긴 다니엘이 목을 가다듬은 후 말했다.

"어제... 일은요..."

그런데 그 순간 다니엘의 입을 막으며 눈을 동그랗게 뜬 여주가 안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일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여주의 표정을 가까이서 찬찬히 관찰하던 다니엘이 저의 입을 막은 여주의 손을 내리며 깍지를 꼈다.

"어제 미안하다고 해서 미안하다구요."

"...네..?"

"좀 더 멋진 말을 했어야 했는데... 나도 너무 당황해서.."

여주는 다니엘과 깍지를 끼고있는 제 손을 한 번, 다니엘을 한 번 올려다보며 떨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그.. 그럼 다시 해봐요."

"여기서요?"

"아,아니..! 그거 말고.. 더 멋진 말.. 그거요..."

쑥스러운지 눈도 제대로 마추지 못하고 땅만 보며 말하는 여주에 속으로 '귀여워 미치겠다'라며 무릎을 굽혀 여주와 시선을 맞추었다.

"오글거린다면서요."

"솔직해서 좋다고 했잖아요.."

집요하게 쫒아오는 다니엘의 시선을 애써 피하는 여주에게 다니엘은 어제와 달리, 한치의 망설임 없이 말했다.

"사랑해요."

다니엘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열심히 도망다니던 여주의 눈동자가 어느지점에서 멈췄다.

"오글거려.."

"솔직해서 좋다면서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여주의 눈동자가 멈춘 틈을 타 다니엘의 입술이 짧게 여주의 입술을 다녀간다.

"좋아한다는 말은 취소. 그걸론 부족해.

사랑해요."

꿈만 같은 하루였다. 사방은 파란 바닷속이고, 그 속을 헤엄치는 다양한 색의 물고기들. 그리고 떨어지지 않게 맞잡은 손과, 마음을 힘차게 흔드는 말들..

완벽한 하루였다.

다니엘은 서로에 대해 많이 알고, 그 후에 알아간 것들에게서 호감을 느끼고, 어쩌면 사랑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걸 믿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고 모르고 단 3초만에 빠진다? 그런일을 겪는다면 정말 바보같은 사람임이 틀림없다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여주씨의 깊은 상처와, 그녀의 슬픈 일상과, 우리에게 일어나는 기적같은 일이 아니라, 다니엘은 딱 3초.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앞에 보였던 여주의 잠든 얼굴. 그 3초에 이미 빠져버린거다.

“사람들 보면 어쩌려구요! 지나다니는 사람이 몇명인데..”

“뭐 어때요. 아주 그냥 이뻐서 참지를 못하겠는데.”

이제 실례한다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다니엘은 여주의 손을 잡고, 더 가까이서 서로의 걸음에 맞춰 푸른 빛이 도는 아쿠아리움을 천천히 걸었다.

“진짜 예쁘다..”

“그쵸? 오길 잘 했죠?”

“근데 여기 있다던 추억은 뭔지 물어봐도 되나..?”

“그건 비밀인데.”

“뭐. 어쩔 수 없죠. 나도 추억 하나 생겼으니까.

내 추억이 더 멋질걸요?”

조금은 가벼워진 대화. 조금은 편해진 대화.

서로의 사이가 달라져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가볍게, 편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이가 좁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나 배고파요. 밥먹으러 가요.

팀장님, 먹고싶은 거 없어요?”

화사가 아닌 이곳에서까지 팀장님이라니..

다니엘은 누구보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여주의 입에서 ‘팀장님’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밥이고 뭐고, 우리 호칭정리부터 해요.”

“호칭이요? 어떤...?”

“팀장님은 절대 빼구요.”

다니엘의 말에 여주는 저가 팀장님이라고 불러서 한숨을 내쉬었다는 걸 눈치채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뭐라고 부르지? 그냥 다니엘이라고 부를까..

가자, 다니엘!”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척하더니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며 갑자기 반말에 이름만 덜컥 부르는 여주에 다니엘은 한 손을 올려 이마를 짚었다.

“내가 미쳐 진짜...”

첫 눈에 반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갈 수록 실망이 쌓여간다.

첫눈에 반했다는 건, 그 사람이 그 순간 완벽해보였기 때문이니까. 완벽한 줄 알았던 사람에 대해서 알아갈 때는 허점만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 그게 정상이야..

그런데 난 왜 볼수록 좋아서 미치겠냐...

여주는 기분이 정말 좋아보였다. 옛날에는 저런 사람이었을까? 내가 여주씨를 만나고 난 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조금은 아이같기도, 여주씨가 아닌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건 모두, 좋은 의미에서였다.

“여주씨는 생각보다 활기찬 사람이네요.”

“다니엘씨는 생각보다 귀여운 사람이에요.”

‘귀엽다’라는 말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다니엘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전혀 귀여운 스타일은 아닌데..”

“맞는데. 완전 귀여운 스타일. 멍멍이 같아요!”

“멍멍이? 개요? 참나, 난 그냥 잘생긴 스타일이죠.”

“헐. 그건 너무했다.”

다니엘에게 먼저 장난을 친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다니엘은 그 사실이 감격스럽고 또 고마웠다.

“다행이에요. 여주씨가 다시 웃게 되서..”

“고마워요. 나를 다시 웃을 수 있게 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