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물의 정석
1.
여주는 10대의 끝자락을 달리고있는 고등학교 3학년. 인생의 큰 전환점인 수능을 준비하는 다른 학생들과는 비슷하고도 조금 다른 하루를 보낸다. 학원은 중학교 이후로 다 끊었고, 야자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조금 하다 그만두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주는 매주 금요일 학교가 끝나면 평범한 학생들이라면 가지 않을 곳으로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그건 다름 아닌 클럽. 서울, 그 곳에서도 가장 상권이 발달한 유흥가 한가운데에 위치한 ‘Kingdom’ 이라는 클럽으로. 그냥 밤을 즐기러 온 사람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하러 온 정·재계 유명 인사들까지 이 곳에 차고 넘치지만 하교 후 클럽 개장 전 잠깐 들리는 여주는 잘 모르는 사실.
"저 왔어요."
직원들은 모두 여주를 아는 눈치. 체육복을 입고 들어가도 감히 뭐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주는 익숙한 듯 미로 같은 실내에서 헤매지 않고 가장 안쪽 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 앉아서 과외 숙제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누군가가 문을 열고 벌컥 들어온다.
"왔어? 늦어서 미안. 퇴근길이 좀 막히네"
여주를 이곳으로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이 킹덤의 주인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름은 김석진, 금·토·일 저녁에는 이곳에서 살지만 평일 오전부터는 저녁까지는 대기업 총수의 아들로써 자리를 맡아 서류도 본다. 마지막으로 이 클럽과 기업의 뒤를 봐주는 조직 또한 책임지고 있고.
석진은 살포시 웃으며 여주의 맞은편에 앉았다. 웃는데도 그 차가운 얼굴과 분위기는 가시지 않는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그냥. 평소랑 똑같았어요."
의례적인 대화가 오고갔다. 그리고 이들은 그저 그들이 그어놓은 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 밖에 김기사님 대기 시켜놓았으니까 집에 가서 먼저 자고. 저녁도 맛있게 먹어“
"네."
여주가 집으로 돌아간 후, 석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기업 총수의 아들이 클럽을 운영하는 것은 이미 알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었고, 정·재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같은 재벌이 대표로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곳에 놀러와 다른 사람들이 놀랄 만큼의 돈을 쓰며 그들의 부를 과시하기도 했다. 또는 석진과 개인적인 친분을 다지기 위해 이 곳을 찾아온다거나, 아니면 중요한 계약이나 이야기를 하러 온 유명한 분들도 많았기에 항상 클럽의 룸들은 꽉 차있었고, 스테이지와 홀에는 밤새 혼을 불태우러온 젊은 청춘들이 새벽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손님이 많으면 피곤하기 나름인지라, 게다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손님은 사절이었다.
"김 사장!"
"안녕하세요."
"어. 여기 넓고 깨끗하고 좋네. 아주 재밌게 놀다 가."
"네. 들어가세요."
술에 취한 손님들과의 대화는 아까의 의례적인 대화보다 더욱더 권태롭고 흥미가 떨어질 뿐이었다.
***
여주는 차에서 내려 그녀와 석진이 살고 있는 저택을 눈에 담았다. 호화롭고 아름답지만 둘이 살기엔 너무나도 휑하고 넓은 저택이었다. 저녁을 먹으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괜찮다며 거절하고는 방에 들어가 침대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새벽 6시나 되어서 집에 돌아올 석진을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이런 사이가 된지 어느덧 3년째였다. 석진이 부모 잃은 여주의 앞에 나타나 후견인을 자처했을 때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