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2020. 안생. 모든 권리 보유.
※로맨스, 썸 일절 없는 휴먼 장르입니다.※
감안하고 봐주시길 바랍니다.

꿈이 없어도 괜찮다.
공부를 못해도 괜찮다.
네가 가진 것엔 그 만한 가치가 있으니.


"할 얘기 있어, 잠깐 보자."
"뭔 얘기."
"김석진 가방에 시험지 넣은 사람, 너야?"
순간 당황한 하연이 말문이 막혀 서영을 쳐다보기만 했다. 서영이 자신에 대해 뭘 알고 있는지 깨닫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어?"
"이지은하고 민윤기가 말해줬어."
··· 아, 걔네는 진짜. 조용히 입 다물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인상을 구기며 교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하연이 몇몇 학생들이 서영과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에 다시 서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리 좀 옮길까? 보는 눈 생길 것 같은데."
***
카페

"너, 나에 대해서 아는 거 다 말해 봐."
자리에 앉은 하연이 압박수사를 하듯 서영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하니, 서울병원 이사장의 딸이자 전교 2등인 하연과 내가 같이 있다니. 생각하며 의기소침해진 서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전교 2등.. 나랑 같은 반.."

"아, 그.. 서울병원 이사장님 딸."
"됐네, 그거면."
전교 2등, 서울병원 이사장 딸. 이 두 단어만으로 하연이 왜 석진에게 누명을 씌운 것인지 설명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한 거 맞아."
마치 큰 종이 댕-하며 울리듯, 서영의 머릿속도 울렸다. 같은 반 학생이 그랬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하연이 서영의 반응을 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알아줬으면 하는 건데, 나도 자발적으로 한 거 아니야."

"우리 아빠가 나한테 시켰어."
"학교한테 돈 주고 받아온 시험지 김석진 가방에 넣으라고."
우리 학교가 다른 학교들보다 징계 수위가 더 높으니까, 그거 걸리면 정학 처분 받아서 시험도 못 볼 거니까 나보고 전교 1등하라고.
"내가 한 건 맞긴 맞아, 근데 난 하기 싫었어."

"억지로 한 거야, ··· 진짜로."
2년 동안 복도를 지나가면서 본 하연의 모습은 당당하고 완벽해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지금 하연을 이리도 약하고 어리게 만든 것인지.
"네가 했다는 거 알아, 이지은한테 들었어."
"근데, 네가 그럴 애가 아니라는 것도 알 것 같긴 해."
서영의 말에 하연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영을 쳐다보았다. 서영이 화를 내기는커녕 자신의 이야기들을 다 들어주고 있으니. 하연이 그렇게 자신을 보고 있자니 서영이 말울 덧붙였다.

"네가 진범이 아니고서야 왜 이런 데에 시간을 써, 공부하기도 바쁠 텐데."
네가 한 게 사실이니까 내 입을 막으려고라도 해야할 일 뒤로 하고 여기 있는 거잖아. 서영의 말에 하연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김석진한테, 다 말할 생각이야."

"근데···."
자신 때문에 정학 처분을 받은 석진에게 사실대로 말한다는 것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더군다나 별로 친하지도 않고 학교에 나오질 않으니, 용서를 구할 방법이 없어 표정이 어두운 하연을 보고는 서영이 말했다.

"내가··· 도와줄까?"
***
토요일
토요일 점심, 어젯밤 서영의 연락으로 할 일은 잠시 미뤄두고 카페에 온 석진이 서영의 옆에 앉아있는 하연과 눈이 마주치고는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이내 다시 서영과 하연에게로 다가와 앉았다.
"··· 왜 불렀어."

"내가 서영이한테 부탁했어, 너한테 할 말 있어서."
"뭔데."
아마 석진은 시험 공부나 수행평가 등 바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자리에 오래 앉아있을 모양은 아니었다. 그래서 하연은 불안한 듯 테이블 밑으로 손가락을 산만하게 움직여대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가방에 중간고사 시험지랑 답지 넣은 사람···."

"그거.. 나야."
순간 석진의 얼굴이 굳었다. 서영도 석진의 이런 반응을 조금은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매정하게 굳어버리는 석진의 표정에 안절부절 못했다.
"··· 뭐?"
"미안해, 내가 그랬어. 변명처럼 들릴 수 있는 거 알아, 내가 한 거 맞는데."

"우리 아빠가 시켜서.. 어쩔 수가 없었어."
"진짜, 난 진짜 하기 싫었어. 전교 1등 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 난···."
하연의 말이 끝나고, 석진과 하연 사이의 흐르는 적막에 끼어 있는 서영이 조용히 석진이 대답하기를 기다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석진은 아무 말 없이 하연을 쳐다보고 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야 김석진!"
이에 당황한 서영이 급하게 석진을 불러보았지만 석진은 이미 카페를 나간 뒤였고, 하연에게 자신이 말해보겠다며 석진을 뒤따라 나선 서영이었다.
***
석진을 따라나온 서영이 자신의 부름에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버리는 석진에 걸음을 재촉하며 석진을 뒤따라갔다.
"김석진, 야! 좀 멈춰 봐!"

"그래, 화난 거 이해해. 하는데, 자기가 사실대로 다 말했잖아."
"넌 누가 사람 죽이고 나 사람 죽였다고 자수하면 되게 착해보이는 줄 아나 봐?"
··· 뭐? 서영이 석진을 부르며 따라오자, 자리에 멈춰선 석진이 서영을 향해 뒤를 돌고는 그녀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아무래도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인물에게 뒤통수를 맞았으니, 화가 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걔도 시켜서 한 거라잖아, 하기 싫었다잖아."
"그렇다고 백하연이 한 게 아닌 게 돼?"
"뭐?"

"남이 시켜서 한 건 한 게 아니냐고."
정확히 팩트만 말하는 석진의 단호한 말투와, 석진을 처음 만나 다투었을 때보다 더 날카로운 그의 눈빛에 서영이 뭐라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만 꾹 다물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시험지 도둑으로 몰리고, 애들이 학교에서 자기들끼리 내 뒷담이나 까."

"시험 얼마 안 남기고 선도위원회 가고 징계 받는다고."
"백하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는데 화가 안 날 수가 있어?"
아니, 같은 반 친구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아무리 공부와 학교에 관심이 없는 서영이라도 이런 일은 그냥 가만히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 같은 애들이 고작 0. 몇 점이나 받으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아?"
"아, 그래. 넌 모르는 게 당연하겠다."

"전교 꼴등 주제에 네가 뭘 안다고 나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가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 멕 캐봇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