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2020. 안생. 모든 권리 보유.
※로맨스, 썸 일절 없는 휴먼 장르입니다.※
감안하고 봐주시길 바랍니다.

꿈이 없어도 괜찮다.
공부를 못해도 괜찮다.
네가 가진 것엔 그 만한 가치가 있으니.


"제가 그랬어요, 제가··· 김석진 가방에 시험지 넣었어요."
***
짝-, 소리가 서재에 울려퍼지고 하연의 고개는 오른쪽으로 완전히 돌아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하연이 눈시울을 붉히며 제 볼을 감싸고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네가 미X지 아주."
"이 상태로 시험만 보면 전교 1등이 네 거였어."
"미X다고 이딴 짓을 해?"
이 일의 원인은, 학교로부터 온 하연의 선도 위원회 통지서 때문이었다. 하연의 아버지가 선도 위원회 통지서를 찢고 구겨 쓰레기통에 던지자, 하연이 소리치며 말했다.
"미X 건 내가 아니라 아빠겠지."

"적당히 좀 해, 맞춰줬잖아."
"내가 했으니까 내가 선도 가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야?"
지금까지 참고 참아왔던 하연의 분통이 터져버렸다. 생일엔 친구들과 나가 놀지도 못하고 케이크와 용돈으로 대신하고, 주말엔 수능 시간표대로 공부. 사실상 방학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도 김석진이랑 같아."

"나도 내신 1등급이고, 나도 시험 보면 올백 맞는다고."
하연이 석진보다 등수가 낮은 이유는 단순히 성적과 학교 생활때문이 아니었다. 하연도 석진만큼 관계도 좋고, 이미지도 좋고 학교 내 사람들과 두루 잘 어울려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전교 2등인 이유는.
"아, 그냥. 나보다 김석진이 좀 더 잘났을 뿐이야."

"내가 노력해도 안 되는 걸 걘 할 수 있고, 그냥 나보다 좀 더 나은 거라고."
"그래서, 그래서 내가 아니라 김석진이 1등인 거라고."
마음 놓고 현실에 만족하며 살고 싶었지만 현실은 모든 시선이 내가 좀 더 높고 위험한 자리에 오르길 바랐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는 척, 욕심있는 척을 해야만 했다.
***
그날 오후, 시험기간이라 당분간 방과후에 교무실 제외 모든 교실 문을 닫는다는 학교의 명령에 서영은 일찍 집에 돌아와 한창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폰에서 진동이 울려 화면을 보니, 하연의 번호로 전화가 오고 있는 것에 서영이 황급히 노래를 끄고는 하연의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나야."
폰 너머로 들려오는 하연의 목소리는 깊게 잠긴 듯 메인 것처럼 들렸다. 평소보다 조금 더 우울하고 낮게 들리는 하연의 목소리에 서영이 잠깐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 "아.. 어, 왜?"
- "곧 있으면 김석진 정학 풀릴 거야."

- "뭐, 선도도 안 열릴 거고."
하연의 말을 끝으로 하연과 서영 사이에는 어떠한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 석진의 정학이 풀릴 거라는 하연의 첫마디가 서영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어 버려서,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 "···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선생님한테 다 말했어."
아까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하연과 말을 나누고, 하연이 그렇게 교실을 나가고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조퇴를 해버렸다. 서영은 이 장면이 떠오르자,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교무실로 가 담임에게 사실대로 말했을 거라 예상이 갔다.

- "김석진한테 얘기 좀 전해줘, 난 도저히 못 하겠다."
- "야, 잠깐만-"
서영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전화는 끊겨버렸다. 지금 이게 뭔 상황이지. 꺼져버린 까만 폰 화면에 비치는 자신의 멍한 표정을 계속 쳐다보더니, 이내 두꺼운 옷 하나를 걸쳐 입고는 집 밖을 나서는 서영이었다.
***
추운 날씨에 서영이 숨이 차게 달려온 곳은 바로 석진의 집앞이었다. 언젠가 석진이 한 번 금요일은 학원을 늦게 가서 8시에 끝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서 석진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서영이었다.
하지만 시각은 8시를 넘었고, 계속해서 기다려도 오지 않는 석진에 집으로 가려던 서영이 첫 발걸음을 떼었을 때, 그제서야 집으로 오는 석진과 마주했다.
"김석진."
석진도 서영을 발견하고는 잠깐 걸음을 멈추더니, 이내 서영을 무시하고 들어가려 했지만 자신을 불러세우는 서영의 목소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 그동안, 고생 많았어."
석진의 눈에 보이는 서영의 표정은 복잡하고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분명 다시 한 번 하연과 얘기해 보라고 말하려고 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생 많았다니, 마치 모든 일이 다 끝난 것처럼 말하는 서영에 의구심이 생기는 석진이었다.
"백하연이 그러는데, 너 곧 정학 풀릴 거래. 선도도 최소되고."

"내가 걔를 어떻게 믿어."
"백하연이 선생님한테 자기가 한 거라고 말했대."
백하연이··· 너한테 전해달랬어. 이로써 드디어 석진의 시험지 도둑이란 누명은 벗겨졌다. 하지만 석진은 이 순간에도 생각했다. 왜 자신이 벌인 일을 자꾸 남을 통해서 전하는 건지. 가해자가 피해자 앞에서는 진실된 사람이 수는 없는 건가.
"시험 얼마 안 남았잖아."

"애들한테 보여줘야지, 네 힘으로 전교 1등했다는 거."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굳세게 밀고 나가라.
- 로잘린 카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