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2020. 안생. 모든 권리 보유.
※로맨스, 썸 일절 없는 휴먼 장르입니다.※
감안하고 봐주시길 바랍니다.

꿈이 없어도 괜찮다.
공부를 못해도 괜찮다.
네가 가진 것엔 그 만한 가치가 있으니.


"시험.. 잘 봐."
하연의 마지막 인사였다. 시험이 끝나 하연의 정학이 풀리자 학교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 일도 없었던 때로 다시 돌아갔다.
***
시험이 끝나고, 석진과 조금 친해졌다고 그의 노트를 빌려 공부한 지은이 전교 4등을 했다며 하루종일 복도를 방방 뛰어다녔다. 기분으로 학교 끝나고 떡볶이를 쏘겠다며 떡볶이집으로 서영을 끌고 왔다.

"근데 왜 애들이 백하연 얘기를 안 해? 걔 선도 간 거 애들 몰라?"
"아, 그거."
행복한 표정으로 입에 떡볶이를 집어넣던 지은이 서영의 말을 듣자 빠르게 삼키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주변의 눈치를 살살 살피더니 서영 쪽으로 몸을 기울여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애들은 애초에 백하연이 한 건지도 몰라, 선도 갔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백하연네 아빠가, 걔 정학 병결으로 처리해달라고 했대."
헐, 지은의 말을 들은 서영이 입이 떡 벌어졌다. 완전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이네. 그러니까! 자신이 더 분한 건지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치며 분노를 표하는 지은이었다.
"그 집 아빠도 대단하다 진짜, 어차피 다 남을 텐데."
"자기 딸 이미지 관리하는 거겠지, 한 번 물 튀면 세탁하기 힘드니까."

"어우, 학기 초부터 스펙타클했어 진짜."
지은이 더 이상 얘기하고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떡볶이를 입 속으로 가져갔다.
***
며칠 뒤
6월 모의고사를 보기 전까지 모의고사 공부를 하며 시간에 조금 여유가 생긴 석진은 오랜만에 음악실에 가보기로 했다. 다시 서영의 노래를 듣고 싶었던 게 그 이유였다.
복도에서는 서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최대한 숨죽이며 음악실로 들어와, 조용히 악기실의 문을 여는 석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폰을 하고 있는 모습에 안도를 하며 웃어보였다.

"너 진짜 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서영도 석진을 보고는 활짝 웃었다. 석진이 악기실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반대편에 앉자 먼저 말을 꺼내는 서영이었다. 석진은 그런 서영의 말을 듣고는 말 대신 표정으로 대신했다. 알면서.

"··· 고맙다."
분위기가 차츰 가라앉자 잠깐의 적막 후에 석진이 꺼낸 말이었다. 너 아니었으면 백하연 걔, 자백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기회 놓쳤을 거야. 이번에는 서영이 말 대신 미소로 답했다.
"아, 맞아."

"너 범인 나오면 대자보 쓴다며."
하연의 얘기가 나오자 사건이 터지기 전에 석진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 서영이 말했다. 그러자 석진도 잊고 있었던 것인지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다.
"애들은 백하연이 했다는 거 알아?"
"아니, 애들은 진짜 아무것도 몰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밝힐 거야? 백하연이 했다는 거."
솔직히 말하자면 석진은 범인을 전교생에게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하연의 얘기를 듣고 그날밤 다시 생각했다. 그렇게 한다면 내 속에 있는 분이 풀릴 것인지. 수도 없이 출발점으로 돌아와 옳은 결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 끝에 내려진 결론은.
"··· 아니."

"다 끝났으니까, 이제 신경 끄고 모의고사 준비해야지."
잊는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시작됐고,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었으니. 끝도 아무도 몰라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계속 담고 있는 것이 석진 자신에게도, 하연에게도 더 힘들 테니까 말이다.
서영은 석진의 대답에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며 그의 선택을 따랐다. 그리고 서영은 한동안 말없이 손에 들린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 나 토요일에 오디션 보러 간다."
서영이 자신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석진은 그런 서영을 잠시 바라보더니 자신이 서영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힘들 때 몸과 마음으로 자신을 위로해준 사람은 서영이었기에. 이번엔 자신이 서영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완전 긴장돼, 나 떨려서 실수하면 어떡하지?"
"왜, 난 네가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야, 네가 그런 곳을 안 가봐서 그래. 거기서 연습하는 사람들한테 기죽으면 그냥 지는 거라고."
"너 안 져, 이길 수 있어."
석진이 하는 말은 진심 같았다. 그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닌 진심으로 서영에게 힘이 되었으면 했다. 석진이 오디션을 보러 오디션장에 갔을리는 없지만, 전교 1등이 그런 소리를 하니 왠지 믿음이 가는 서영이었다.
"진짜? 무슨 이유로."

"노래는 사람을 기죽게 만드는 게 아니라 공감하게 만드는 거야."
"넌 그걸 할 줄 알고."
네가 신나는 노래를 부를 때면 나도 같이 신나지고, 슬픈 노래를 부를 때면 나도 같이 슬퍼져. 이건 네가 특별한 거야. 네가 잘하는 거고, 네가 가진 너만의 가치인 거야.
"그래도, 난 한 번도 그래본 적 없는데···."
"있어."
"적어도 나 한 명 정도는 네가 그렇게 만들었어."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불러, 넌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행복은 자기만족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적에 충실함으로써 이루어진다.
- 헬렌 켈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