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규의 모든 말이 끝났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은 상태로 두 눈에는 초점을 잃은 그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저항없이 흘렀다.
'' 투신이래요. '' ((범규
'' 아프셨겠네요. '' ((여주
여주가 주어를 빼먹고 말한 탓에 그녀가 느낀 감정의 주체가 누구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범규는 크게 숨을 들이 쉬고는 어이없다는 듯 큭큭 고개를 숙여 웃기만 했다. 마치 반쯤 미친 사람처럼.
'' 오빈이 장례식이 끝나고, 오빈이가 투신했다는 그 장소로 갔어요. '' ((범규
'' 거긴 어땠나요? '' ((여주
범규는 잠시 웃음을 멈추고 그 장면을 회상하듯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 시원하고 아름다웠어요. 펼쳐지는 야경이 마치 별 같았어요. 저만 간직하고 싶을 만큼. 그래서 슬펐어요. '' ((범규
모든 말을 끝 마친 후에 머리를 강하게 헝크리며 자신이 왜 이 말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불평을 했다.
'' 이제 어디로 가세요? 댁으로 가세요? '' ((여주
'' 가야죠. 근데 제 집은 어디있는지 모르겠어요. 오빈이가 절 떠난 전 후의 집이 다른데 제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르겠거든요. '' ((범규
'' 왜요? '' ((여주
'' 오빈이가 떠나기 전 집은 후회가 지독히 남아있고, 오빈이가 떠난 후 집은 오빈이가 남아있거든요. '' ((범규
'' 그래도, 결정하셔야죠. 오늘 하루 여기서 보내실 수는 없으니까요. 노숙이라도 하실려고요? '' ((여주
'' ...아니요. '' ((범규
범규는 앞에 있던 차를 한모금 홀짝 마시더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 아직 비가 오네요. '' ((범규
'' 소나기일까요? 가랑비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눈물일까요? '' ((여주
'' 제 눈물이라면 이 비가 그칠때까지만 제 이야기를 마저 들려주시겠어요? 오빈이가 남긴 그 집에 대해서 말이죠. '' ((범규
'' 그 비가 금방 그칠거 같진 않군요. '' ((여주
여주는 다시 자리를 고쳐앉았다. 범규는 살풋이 씁쓸한 향이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비 속에 잠겼다.
민들레 홀씨되어
별의 기억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린 범규는 그제서야 팔을 올렸다. 그러자 사람의 기척지 느껴지지 않아 꺼졌던 복도 불이 범규를 비추었다.
밖에 들리는 거센 비 소리와 함께 초인종 소리가 울려퍼졌다.
'' 오빈아, 나 왔는데. '' ((범규
그렇게 초인종 소리가 지겹게 울려퍼지고 한참 뒤에나 차가운 비밀번호 소리가 공명처럼 퍼졌다.
집은 오빈이의 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는 풍경은 동일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 듯한 그곳에 오빈이의 모습이 보였다.
[자갸, 왔어?] ((오빈
'' 자기는 무슨 자기야... 오글거리게... '' ((범규
[치이... 좋으면서 튕긴다.] ((오빈
범규는 자신의 귓가에 맴도는 오빈이의 말에 답하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자신의 심장 부근을 강하게 움켜잡는다. 눈물과 함께 바닥을 힘껏 내리친다. 울부짖으며 뭉그러진 그 이름을 부른다.
'' 맞아... 좋아... 좋아서 튕기는거야... 그러니까 제발, 제발 내 앞에 나타나줘... '' ((범규
3개월동안 지워졌다고 느낀 오빈이는 사실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범규의 모든 순간이 오빈이어서 범규의 모든 시선 끝에는 오빈이가 있어서 그녀의 부재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그 3개월의 공백과 수십년, 어쩌면 수십개월, 수십일 동안 보지 못함이 뒤섞여 그리움에 깊게 잠긴듯 했다.
그립다 그리워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립다 그 어떠한 감정도 안느껴질 정도로 그리워 그립다는 단어를 너무 많이 떠올려서인지 이 단어가 너무 어색해 그리워 널 보고싶어 사랑해 날 보러와줘 너가 너무 그리워 사무치도록 그리워 널 보고싶어 널 만지고 싶어 안아줘 안고싶어 너의 온기가 필요해 너가 너무 그리워 너에게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어 너가 어디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찾아갈 수 없음에 너가 더 보고싶고 그리워.
'' 사랑해 ''
'' 어디야? 지금 당장 달려갈게 ''
'' 보고싶어 ''
'' 그리워 ''
'' 어디갔어? ''
'' 사랑해 ''
'' 너가 보이지 않아 ''
'' 보고싶어 ''
'' 찾아가고 싶어 ''
'' 사랑해 ''
'' 아무말이나 해줘 ''
'' 지금 찾아갈게 ''
'' 사랑해 ''
'' 사랑한다고 많이 못해줘서 미안해 ''
''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겠어 ''
'' 사랑해 ''
'' 미안해 널 포기하고 싶지 않아. ''
'' 그리워 ''
'' 보고싶어 ''
'' 나의 모든 건 너였어 ''
'' 나는 너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