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홀씨되어

너는 결국 별이 되었구나 (1)





민들레 홀씨되어

너는 결국 별이 되었구나













   '' 으으... '' ((범규







 한껏 갈라진 목소리로 어젯밤의 여운을 느끼며 범규는 눈을 떴다. 이대로 더 자고싶었지만 자면 안될거 같았다.






   '' 하... 죽겠다. '' ((범규






 어제 얼마나 무식하게 먹었는지를 알려주는듯 속이 묘하게 아려오고 머리가 깨질듯 아파왔다. 범규는 손을 올려 머리를 감쌌다. 그러나 이내 팔이 아파오고 머리를 감싸고 있어도 더 나아지는건 없었기에 다시 머리에서 손을 내렸다.







   '' 으어.... '' ((범규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 좀비처럼 죽어가는 목소리를 내며 비실비실 거실로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거실을 지나쳐 주방에 도착한 범규는 잠시 멈칫했다.











   '' 아 맞다. '' ((범규










 이제 자신이 왜 무의식적으로 주방에 왔는지 생각이라도 났는지 컵을 가지고 정수기 앞에 섰다. 여전히 잠에서 덜 깼는듯 멍하니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물을 따랐다.

 물이 컵에 차오르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물컵을 보지 않았다. 결국 물이 컵에 넘쳐 자신의 손에 닿고 한참뒤에 그제서야 상황파악을 하고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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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넘쳤네. " ((범규






 아주 무심히 중얼거리며 손에 묻은 물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 물이 흐른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몰라 마르겠지. 될되로 되라고 해. 범규는 그런 무책임한 마음으로 발에 튄 물을 대충 바지 밑단에 닦았다. 다시 물 웅덩이를 밟아 소용없게 되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물을 한모금 마셨다.






   " 아, 찬물로 따를걸. " ((범규






 그러나 다시 물을 버리고 새로 따르기엔 너무 귀찮았다. 그렇게 세상만사 귀찮아진 최고의 귀차니가 된 벙규는 쇼파에 몸을 푹 기대었다.






   " 그냥 더 잘까? " ((범규






 쇼파와 한몸이 되어 나른한 기분을 느끼며 느리게 눈을 떴다 감았다 다시 뜨는 것을 반복했다. 푹 잔 기분은 없지만 어쩐지 시간은 한참 흐른듯 했다.


 이상하게 휴대폰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집에 있던 모든 시계가 멈춰버려 어쩔 수 없이 폰을 켰다.

 부재중 전화가 5통이 와있었다.






   " 얜 또 왜이리 전화를 많이 했어? " ((범규






 범규는 꿍얼꿍얼거리며 오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이 떠서가 아니야 돈을 다시 돌려줄려고 그런거야. 이 돈받고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내가 오빈이를 차는거야. 내가 차이는게 아니라. 범규는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러나 오빈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부재중이 한통, 두통, 세통. 오빈이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범규의 자기합리화는 곧 불안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 집에서 쓰러졌나? 병원인가? 과부화? 아니 과부화가 아니라 그 뭐지... 아... 괴로. '' ((범규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안할려고 노력해도 그 노력이 무상하게 부정적인 회로는 계속 톱니바퀴처럼 굴러갔다. 천천히, 그리고 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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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안받는거야? " ((범규






 어쩐지 불안했다. 이유없이 그저 불안하기만 했다. 그 불안감을 참을 수 없던 범규는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제발 받아 정오빈을 주문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물론 어제 범규처럼 화김에 받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오빈이는 어제의 자신처럼 째째하지 않다 생각한 범규였다.






   " 집으로 찾아가봐야하나? " ((범규






 혹시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들 중 하나처럼 집안에 쓰러져있을까봐 오빈이의 집으로 찾아가기 위해 옷을 입었다. 아닐거야. 또 혼자 오버한거야. 범규는 다시 쇼파로 향했고 오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연결음만 들린지 30분쯤이 지난 후, 범규는 오빈이의 폰에는 부재중이 20통은 쌓였겠지라고 생각했다. 이정도 안받으면 포기해야지하고 몇번을 전화 걸었는지 확인했다. 정확히 10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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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라 정오빈... 이따가 전화하겠지. " ((범규






 범규는 스스로 오빈이가 전화를 받지 않는 이유가 그녀가 소설을 쓰고 있거나 출판관련해서 회의에 들어갔겠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다시 범규에게 전화를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범규는 아직 오빈이가 자신을 차단하지 않았다고 믿었고 10통의 부재중 전화를 무시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빈이는 그런 아이니까.






   " 하... 갑자기 뭔 바람이 들어서 진짜. 그냥 자존심 세우지 말고 그때 받을걸... " ((범규






 범규는 마지막 말을 뭉들그려 말했다. 숨을 크게 들이 마쉬었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범규는 그리 생각하며 다시 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말을 후회 때문이었다. 참는김에 한번만 더 참을 걸하고 후회를 하던 도중 오빈이가 어젯밤에 보낸 음성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안녕 최범규. 전화 안받네.}

 
   " 정오빈? "






 범규는 고개를 휙 돌려 휴대폰에 시선을 던졌다. 그리곤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천히 휴대폰으로 손을 옮겼다.






    {많이 바빴나봐. 하긴... 너도 바쁘겠지. 내가 없던 날은 어땠어? 생각보다 살만했지? 그랬을거라 믿어.}






 가벼운 인삿말로 시작해서 오빈이는 그동안 범규가 없던 자신의 하루는 어땠는지 말을 해주었다. 분명 오빈이는 밝게 말하고 있었지만 어두웠고 추웠고 쓸쓸했다고 범규는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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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보. 그러면 잠수나 타지 말던가. " ((범규






 범규는 최대한 몸을 웅크려 눈을 감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자신이 알던 오빈이로 돌아온거 같아 자신도 모르게 피식 미소가 세어나오기만 했다.






    {민들레가 아주 이쁘게 핀거 같아. 그래서 너가 생각났어. 물론 내가 먼저 잠수를 탔지만 내가 본 이 민들레가 더 자라서 홀씨가 되어 너에게 날아갔으면 좋겠어. 너에겐 봄이 왔다는 것을 알려줬으면 해. 사랑해 최범규.}






 또또또 민들레. 그놈의 민들레. 범규는 오빈이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민들레가 자신이 마당에 내려 앉아 싹을 틔웠다고 자랑한게 마지막이었는데 또 민들레 이야기를 꺼내다니.


 향기도 없어 벌과 나비에게 선택받지 못한 고작 민들레 따위에게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 고작 민들레 따위를 더 소중히 여기다니. 이 최범규님을 나두고 말이야. 응? 정오빈 너 죽었어. '' ((범규







 범규가 쇼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걸어갔다. 거실과 방 사이 어딘가쯤까지 발길을 옮겼을 때 전화가 한통 왔다.

 오빈인가? 아, 오빈이다. 범규는 발신인을 확인도 하기 전에 오빈이라 결론지었다. 그리고 혹여 전화가 끊길까봐 황급히 자신의 폰을 잡기 위해 몸을 돌려 쇼파로 향했다.







   " 아... 쓰읍... " ((범규






 그러다 너무 다급하게 달려간 탓인지 쇼파 앞에 있던 책상에 무릎을 쾅하고 큰소리가 나게 박았다. 멍들겠다. 범규는 빨게진 무릎을 대충 비비며 폰을 확인했다.







   '' 아... 정오빈인줄. '' ((범규






 누군지 모르는 번호였지만 무릎까지 희생했는데 누가 걸었는지는 확인하고 싶어서 전화를 받았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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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시죠? " ((범규


   " 아... 저 세후 경찰서 박지훈 경위입니다. '' ((지훈







 지훈이의 말을 들은 범규는 잠시 멈칫했다. 경찰이 술 먹은 다음날 내게 전화한다? 이건 좋지 못하다. 범규는 빠르게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범법적인 행동은 그 기억 속에 없었다.






   '' 혹시 정오빈씨 남자친구 맞으신가요? " ((지훈


   " 아, 맞습니다만 무슨일이시죠? " ((범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동안 지훈이가 말을 꺼냈다. 범규를 최범규가 아닌 정오빈 남자친구로 알고있다. 범규는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경찰이 오빈이를 안다니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니였다.





   " 정오빈씨가 어제 새벽 1시 10분경에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되셨습니다. " ((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