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관계 속 딜레마

18. 뒤틀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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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뒤틀림 (4)


말랑공 씀.




*본 글은 피에 대한 묘사를 살짝 포함하고 있으니 보시는 데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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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박지민도 너처럼 사랑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애로 보여서 동정심이라도 느꼈냐?”


   정수연의 깊은 침묵 속 건조한 공기가 무겁게 상공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정곡을 태형이가 찌른 듯 보였다. ‘사랑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애.’ 정수연은 그 말에 뇌 속에 모든 회로가 정지되었다. 항상 여유롭기만 했던, 언제나 타인을 저의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갖고 놀기를 즐기며 미소 지었던 그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태형은 그 모습이 꽤 볼 만 했다. 그렇게나 역겨워하던 애가 처음으로 여유롭지 못 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얼마나 통쾌하겠는가.


   그 순간이었다. 창고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던 호석이가 나오며 태형이가 정수연의 멱살을 거칠게 쥐고 있는 것을 봤다. 앞뒤 상황을 몰랐던 호석은 너무나도 놀라며 태형에게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그 손 놓지 못 하겠냐고, 역정을 내며 그들에게 대번 다가갔다.


   무슨 일이 있든지 화를 내지 않고 다정하게 웃어 주었던 호석이가 역정을 내니 태형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태형이가 알던 정호석이란 언제나 다정한, 형같은 사람이었으니깐. 태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모든 게 정수연의 탓인 것만 같았다. 괜히 정수연이 제 속을 긁어 놔서, 그 탓에 본인이 정수연의 멱살을 틀어쥐게 되었고, 그것을 본 호석이 성을 내고 있으니… 정수연은 태형의 표정만 보고도 그가 자신을 탓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정수연에게 향하는 태형의 눈빛에는 대놓고 원망이 서려 있었기에. 정수연은 호석이가 듣지 못 할 정도로의 목소리로 태형의 귓가에 속삭였다.


   “왜, 지금 이 상황도 나 때문인 것 같니?”


   아까 여유롭지 못 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지금은 태형이가 보이고 만 틈을 비집고 들어와 여유롭게 휘젓고 있다.


   정수연과 태형이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태형이가 정수연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것을 말려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 호석은 아까보다 언성을 더 높이며 말했다.


   “김태형, 그 손 놔!!”


   태형은 호석이의 그런 언성 높인 목소리는 처음 들어 봤다. 항상 다정하게 웃어 주던 사람이 언성을 잔뜩 높이며 자신의 원수의 편을 들어 주고 있다니. 태형은 이 상황이 정말 못마땅하고 역겨워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정수연의 멱살을 놓지 않으면 호석이와의 관계가 더 틀어질 것만 같아 내팽개치듯 거칠게 놓았다. 그 탓에 정수연은 중심을 잡지 못 하고 옆에 있던 테이블을 치며 바닥 쪽으로 넘어지듯 몸이 기울어졌다. 그 무렵이었다. 정수연이 테이블을 침과 동시에 그 파동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방금 전 태형이가 지민에게 준, 그러나 지민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생딸기 주스로 전달되었다. 그 생딸기 주스는 바닥을 흥건하게 만들었고 그 내용물을 담고 있던 유리잔이 바닥과 함께 충돌하여 깨졌다.


   그 일은 정수연이 바닥에 넘어지기 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수연은 유리잔의 파편 위를 손으로 짚으며 넘어졌다. 그 탓에 정수연의 손바닥에는 파편이 잔뜩 박혔고 그녀의 무릎 또한 파편에 쓸려 상처가 나 있었다. 그 카페 안은 아주 잠시동안 침묵이 돌았다. 정수연의 손바닥과 무릎에는 자잘한 상처들과 꽤 큰 상처들 속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형은 그 피를 보자마자 온몸이 굳고 말았다. 그렇게 분노라는 감정에 엄습 당하지만 않았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자책을 했다. 아무리 정수연이 싫어도 역겨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원치 않았다. 아무리 그녀가 원수라고 해도 피를 보고 싶을 만큼의 원수는 아니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태형은 굳었던 몸을 애써 움직이며 정수연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호석이가 먼저 정수연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물은 다음 정수연의 상태를 확인한 후에 태형에게 이만 가라고 말했다.


   “저,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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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 가라고 했어, 김태형.”


   한껏 차가워진 호석의 표정과 말투. 태형은 마치 주변 공기도 차가워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 온몸에 냉기가 돌았다. 태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알겠다고 대답을 한 뒤 제 짐을 챙기고는 카페를 나갔다. 태형은 카페를 나가기 전 정수연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를 거의 중얼거리듯 남겼다. 그의 바로 옆에 있어야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이다. 그래서 정수연은 그의 사과를 당연히 듣지 못 했고, 결국 태형의 죄책감과 미안함은 정수연에게 닿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