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정수연 (1)
말랑공 씀.
*본 글은 가정폭력에 대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으니 보시는 데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그 꿈속에서 정수연은 고작 다섯 살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그저 동화밖에 모르는, 정수연은 그런 순수하고 귀여운 다섯 살이었다. 집안 분위기는 항상 냉기가 돌았지만 어렸어서 눈치가 없었던 정수연이 한 번 꺄르르 웃음을 날려 주면 금방 온기가 돌곤 했다. 언제나 차가운 미소만을 지었던 부모님이, 언제나 웃고 있지만 울고 있는 것만 같았던 친오빠가 정수연이 사랑스러운 웃음을 짓기만 하면 진심이 담긴 따스한 미소를 입에 머금곤 했다. 그렇게 정수연은 행복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제 부모님이 어떠한 사람인지도 모른 채 살았던, 다섯 살 때까지만 해도 정수연은 행복했다.
그런 정수연이 여섯 살이 되면서 부모님들은 어딘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여덟 살도 채 되지 않은 정수연을 위해 이곳저곳 초등 학원을 알아 보기 시작했고, 곧 학교에 들어가야 하니, 놀림을 받지 않아야 하니 뭐니 하면서 정수연이 몸을 관리할 수 있도록 억지로 식단을 바꾸기 시작했다. 정수연은 비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체중에 좀 더 가까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정수연에게 채소만을, 닭가슴살만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좀 더 팍팍 먹이라며 어머니께 화를 냈고,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밥 차릴 것도 아니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화를 냈다. 그럴 때마다 정수연의 친오빠는, 정호석은 그녀의 귀를 막아 주곤 했다. 아직 많이 어린 정수연이 부부싸움을 듣지 않게 해 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금방 일상이 되었다.
부모님이 싸우시는 게 일상이 되면서 정수연은 점점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아무리 웃어도 분위기가 따스하게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터 정수연은, 겨우 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던 정수연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파악하는 능력도 생겼고 눈치도 제법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그때부터 정수연의 눈에는 호석의 몸 곳곳에 있는 멍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명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여섯 살이 되고 나서, 부부싸움이 일상이 되고 나서 정수연은 호석의 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수연은 꽤나 돌직구였기에 호석에게 그 멍들은 뭐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과 쓴웃음뿐이었다.
“…정말 아무것두 아니야, 오빠? 너무 아파 보이는데?”
“응, 괜찮아. 그냥 책상 모서리에 부딪힌 것뿐이야. 걱정하지 마. 그나저나 우리 수연이, 내 걱정도 해 주고 많이 컸네.”
호석의 얼굴은 웃음꽃이 활짝 피어있었지만 어쩐지 그 꽃은 시든 꽃 같았다. 정수연은 그때, 호석이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 팔에 멍이 든 게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눈치 채고는 있었다. 그 멍 자국은 누가 봐도 회초리같은 것에 맞은 거였고, 항상 밤마다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가면 아버지의 서재 쪽에서 고통을 담은 신음과 살갗을 내리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었다. 그러나 정수연은 당장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버지의 서재를 쳐들어가서 호석을 구해 주기에는 겨우 여섯 살이었고, 무엇보다도 호석의 얼굴에는 해탈함과 신고는 하지 말라는 듯한 생각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 해탈함이, 미안함을 잠시 품고 있었던 해탈함이 정수연에게 얼마나 큰 화를 불러일으킬 줄 누가 알았겠는가.
***
순수하고 맑았던 정수연을 그렇게 변화시켜버린 건 정수연의 여섯 번째 생일 때 일어난 ‘그’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