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정수연 (3)
말랑공 씀.
*본 글은 가정폭력에 대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으니 보시는 데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그 당시 정호석, 그의 나이는 겨우 열여덟 살이었다. 그리고 십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그는 온갖 폭력을 당하고 살았다. 말로써 하는 폭력이든 물리적으로 가하는 폭력이든, 그 나이대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폭력을 당해 왔었다. 성인도 버티기 힘들었을 그 무게를, 호석은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열여덟이 되고 정수연이 여섯이 될 무렵 그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곧 있으면 수능을 봐야 할 나이가 된다는 것이, 그만큼 더 많은 압박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그를 괴롭게 했다.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호석은 생을 포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이 고통 속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었다. 호석은 그때 결심하고야 말았다. 도망치자고. 이런 지옥같은 곳에서 도망쳐버리자고. 도망치다가 잡혀서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도망치는 시도는 해 보자고.
그렇게 호석은 계획을 세웠다. 아무도 모르게 완전히 도망칠 수 있는 계획을 말이다. 정수연의 생일이 되면 부모님께서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지치셔서 일찍 잠에 드실 것이다. 그때를 노려 호석은 도망치기로 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서 문득 드는 생각에 호석은 계획을 실행할지 말지 망설였다. 그 생각은 바로 정수연, 겨우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그녀였다. 그녀까지 데리고 나올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녀는 아직 어렸고, 호석의 생각 속 정수연은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으니깐. 그러니 호석은 정수연에게 아무리 제 상황을 설명해도 모를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부모님께서는 정수연을 건드리진 않겠지, 하고 생각하며, 어쩌면 혼자 도망치는 것에 대한 자기합리화를 하며 계획을 실행시키기로 마음먹었다.
***
오밤중에 도망쳐버린 호석은 집안에 아주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아침 일찍 잠에서 깨신 어머니는 제일 먼저 호석의 방 문을 두드렸고, 아무리 두드려도 안에서 그 어떠한 인기척도 들리지 않자 어머니는 방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런 어머니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책상 위에 놓여있던 쪽지였다. 그 쪽지는 마치 노트 한 장을 급히 찢어내 쓴 것처럼 보였다. 그 쪽지 안에 있던 내용은 아주 짧고 간결했다. ‘저는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나갑니다. 찾지 마세요. 어머니, 아버지. 정호석 올림.’ 어머니는 그 글을 읽자마자 아직 코를 골며 잠에 빠진 아버지를 격하게 흔들며 깨웠다. 아버지는 방금 잠에서 깬 탓에 상황을 몰라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리곤 짜증을 냈다.
“뭐야…… 왜 그래, 여보. 아침부터 짜증 나게 하지 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것 좀 봐!!”
어머니는 잔뜩 쥐고 있던 탓에 구겨진 쪽지를 아버지의 눈앞에 내밀었다. 아버지는 눈을 찌푸리며 쪽지를 유심히 보았고 이내 말문이 막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이, 이게 무슨……”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된 아버지는 헐레벌떡 일어나 호석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옷장, 서랍을 다 열어 뒤져보았고, 역시나 남아있는 그의 물건 따위는 겨우 필기구같은 쓸모없는 것들뿐이었다. 본인의 귀중품이란 귀중품은 전부 가져간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 자신이 호석에게 했던 짓들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호석이 왜 가출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본인의 감정만이, 본인의 생각만이 우선이었다.
아버지는 치밀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어 눈에 바로 보이는 책상을 뒤집어엎었다. 그 탓에 집안은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란스러워졌다.
“여보!! 뭐 하는 거야? 이러다 수연이 깨겠어… 그리고 책상은 갑자기 왜 엎고그래?? 진정 좀 해!!”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정호석 그 놈이, 그 새끼가 지금 가출했다고 쪽지까지 남겼잖아. 밤중에 몰래 나갔잖아, 그 새끼가!!”
“아직 미성년자라 멀리까지는 못 갔을 거야. 그러니깐…”
“못 찾으면 어떡할 건데?? 어?? 당신이 책임질 거야?? 그러게 평소에 애 관리를 잘 했어야지!! 정호석 없으면 대체 누가 집안의 대를……”
그렇게 한참 분위기가 거칠어질 때즈음 잠도 덜 깬 정수연이 부모님에게로 다가오며 뭐 하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그런 정수연을 다시 방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막아세우며 무릎을 굽혀 정수연에게 눈높이를 맞추곤 입을 열었다.
“수연아, 우리 수연이는 공부 잘할 거지? 계속 엄마, 아빠랑 있을 거지?”
아버지는 정수연의 어깨를 찍어누르듯 잡으며 압박하듯 물었다. 물론 정수연은 그때 아직 어렸어서 그게 압박이었는지 협박이었는지 가스라이팅이었는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정수연은 그때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말았다.
“…웅.”
“그래. 우리 수연이는 착하니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