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정수연 (4)
말랑공 씀.
*본 글은 가정폭력에 대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으니 보시는 데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호석에 대한 관심의 불씨는 생각보다 쉽게 꺼져갔다. 아마 부모님께서는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정수연을 키우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석을 찾는다며 일을 크게 키웠다가는 본인들이 했던 만행들이 전부 들통나게 될 것을 알았다. 호석을 찾는다며 이리저리 들쑤시게 되면 분명 경찰과 부딪히게 될 테니…
***
정수연을 본격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건 그녀가 초등학생이 됐을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받아쓰기를 포함한 모든 시험들은 무조건 백 점을 맞아야만 했다. 당연히 구십구 점도 안 됐다. 부모님께 필요한 건 오직 백 점, 그뿐이었다. 아직 미숙하고 어른조차 되지 않은 정수연에게 부모님께선 항상 완벽함을 바라왔다. 그 누구에게도 뒤쳐져선 안 됐다. 백 점 아래로 맞는 날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처벌이 따르기 일쑤였다.
“겨우 이것밖에 못 맞았어? 수학이 구십 점이라니, 이게 말이 돼?”
항상 먼저 꾸짖는 건 어머니였다. 정수연이 언제 시험을 치는지 철저히 알아내고는 정수연이 학교에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성적표를 꺼내게 했다. 그 때문에 정수연은 항상 집에 들어가는 게 두려워 매번 집앞에서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곤 했다. 그러나 아직 어렸던 정수연은 호석처럼 도망갈 용기도 나지 않았고 나중에 더 크게 다가올 보복이 두려워 망설임 끝에 들어가곤 했다. 그렇게 집안에 들어선 정수연을 맞이해 주는 건 따뜻함과 수고했다는 말이 아닌 성적표나 빨리 꺼내라는 압박감이었다.
사실 정수연은 구십 점을 맞을 실력은 아니었다. 오히려 백 점을 맞을 실력이었다. 그러나 시험지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며 시험 시간 내내 집중하지 못 해 나온 결과였다. 어찌보면 그 결과가 당연했다. 그렇게나 압박을 해대는데 스트레스는 물론 긴장을 안 할 수가 있을까.
“구십 점이라니, 너 겨우 그것밖에 못 해? 전에는 백 점 잘도 가져오더만. 그때는 뭐 커닝이라도 했냐??”
“…”
“왜 말이 없어?!”
어머니께선 정수연에게 꿀 먹은 벙어리냐며 회초리를 높게 들고는 정수연의 오른팔을 세게 내리쳤다. 정수연은 너무 아파 옅게 신음을 내뱉으며 움찔거렸고 어머니께선 그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회초리로 내리쳤다. 꽤 날카로운 회초리는 정수연의 오른팔에 금방 상처를 냈고 아픔을 참을 수 없었던 정수연은 입을 꾹 다문 채 눈물을 뚝뚝 흘려보냈다. 그때서부터 정수연은 눈물을 삼킨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상처투성이가 된 정수연의 팔은 본인이 치료해야 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정수연의 상처투성이인 팔을 안쓰러워해 주지도 않았고 치료도 물론 해 주지 않았다. 그저 알아서 하라며, 빨리 방으로 가서 오답 노트나 적으라며 다그쳤다. 아무리 정수연이 팔이 아프다고, 글씨를 쓰지 못 하겠다고 해도 어머니께선 단호하게 오답 노트를 적으라고 말했다. 아니, 명령했다, 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정수연은 상처투성이인 팔를 대충 치료하고는 어머니의 감시 아래 오답 노트를 적기 시작했다. 상처 탓에 손이 덜덜 떨려와도 어금니를 꽉 물고는 아픔을 참아가며 써내려갔다.
“혹시 너네 반에 백 점 맞은 애 있어?”
정수연은 말 없이 끄덕였다.
“잘 하는 짓이다. 다른 애도 맞는 백 점을 네가 못 맞아와?”
라고 말하며 어머니께선 정수연의 뒤통수를 확 밀쳐버렸다.
“그래서, 백 점 맞은 애가 누군데??”
“…”
“너 덜 맞았니? 더 맞아야 입 좀 열 거야??”
“…—이요.”
“크게 좀 말해 봐.”
“…김태형이요.”
